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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어느 편에 서겠습니까? - 왕상 1:1-14

by Peartree 2012. 12. 26.

어느 편에 서겠습니까?

왕상 1:1-14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한 구절에,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마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다윗도, 이제는, 식었다는 것입니다.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듯이, 그의 힘과 권력도 시들해 졌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윗왕이 이렇게 힘이 없는 틈을 타서, 오늘 또, 반역을 일으키는 아들이 있었는데, 누구입니까? 5절에 보시면, '아도니아' 라는 아들입니다. 예전에도, 한번, 다윗의 아들 중에 반역을 일으킨 아들이 있었는데, 압살롬이었죠. 이 압살롬의 동생이, 아도니아입니다. 두 형제가, 아버지를 반역한 것입니다.

 

아도니아의 형 압살롬의 특징이 있다면, 잘 생겼다는 것입니다. 오늘 6절을 보시면,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자라" 라고 말합니다. 형도 잘생겼고, 동생도, 잘 생겼다는 것입니다. 얼굴 뿐만 아니라, 체격도 좋고, 지금으로 말하면, 장군감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반역을 일삼을 때, 사람들이 그들의 외모를 보고 따랐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겉만 보고 평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은, 사람의 속이 훨씬 중요한데 말이죠.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보고, 낙타의 가죽옷을 걸치고, 지팡이 하나 잡고, 광야에서 외치고 있으니까, 겉만 보고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예수님은 안 그렇겠습니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냐고, 하면, 예수님께서 시골 마을 에서 태어난 것 까지, 따지고 들며, 보잘 것 없이 취급해버렸습니다.

 

몇 년전에, 기독교 영상 '팔복' 이라는 짧은 다큐멘터리를 보았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분이 할아버지인데, 그 할아버지를 '맨 발의 최춘선 할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그 분은 목사였습니다. 동경 유학까지 갔다 왔고, 독립운동까지 한 독립유공자였습니다. 집안이 얼마나 부자였든지, 김포공항 일대가, 다 조상 땅이었는데, 다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부자겠습니까? 게다가 유학까지 같다왔으니, 얼마든지, 번듯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통일이 올때까지 맨말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며, 평생을 눈이오나, 비가오니 맨발로 다녔습니다. 한 겨울에도, 맨발로 다녔습니다. 그러니 발이, 거의 발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완전히 집도 절도, 없는 미친 노인네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집도 있고, 아내도 있었습니다. 기자가 인터뷰를 하는데, 얼마나, 똑똑하고, 겸손하게, 말씀을 잘하시는지, 전혀 미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많던 땅도, 북한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에게 다 떼어주고, 그렇게 복음만 전한다는데,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분의 겉모양만 보고는, 광인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람을 바로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시면, '아도니아'의 겉모습만 보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7절을 보시면, "아도니아가 스류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늙었고, 이 잘생긴고, 체격좋은 사람이 분명, 왕이 될 것을 짐작하고, 그에게 붙은 것입니다.

여기서 요압과 아비아달은 다윗의 신복들이었습니다. 주인을 배신하고, '아도니아' 를 따라간 것입니다.

 

그런데, 8절에 보시면,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다윗 곁에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겉모습만 보고, '아도니아' 를 좇았던 사람들은, 다 쫓겨납니다. '아도니아' 도 왕이 되지 못하고, 겨우 목숨만 건지죠.

 

그래서, 우리는, 겉모양 보다는, 속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속이 잘 보입니까? 보이지 않죠. 그러면, 어떻게 속을 볼 수 있습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진리에 서는 것입니다.

내가 진리에 서 있으면, '진리에 서있는 사람들' 만 모여듭니다.

 

10절을 보시면, '아도니아'가 구테타를 일으키기 위해서, 사전에 모의를 합니다. 9절에,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자기와 손을 잡고, 구테타를 일으킬 사람들을 청하는데,

 

10절에,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보세요. 진리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예, 제켜 놨습니다.

 

그래서, 제가 원하는 것도, 우리 꿈의 교회 속한 성도들은, 세상이 좋아하지 않는 성도들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술 좋아하면, 술 좋아하는 사람들만, 내 주변에 꼬이게 되어 있습니다. 겜블링 좋아하면, 그런 사람들만 내 주변에 많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진리에 서 있으면, 진리에 서 있는 사람들만 모여듭니다. 좀 외롭고, 재미 없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그 길이 생명의 길 인 것을 잊지 마시고,

오늘도, 진리에 길로, 흔들림 없이 잘 달려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