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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해 아래서의 수고 - 전 1:1-3

by Peartree 2012. 12. 26.

해 아래서의 수고

전 1:1-3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자주 웃습니까? 또 얼마나 많이 걱정을 하며 살아가십니까?

한국의 SK 브랜드에서 최근 재미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20세~50세의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웃음에 관한 라이프 스타일' 을 조사했는데, 사람들은, 하루 평균 열번 정도 웃고, 한번 웃을 때 8.6초 동안 웃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 평균 웃는 시간은 '90초' 정도가 됩니다. 이 90초를 80평생으로 환산하면, 평생 동안 30일 동안만 웃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생 동안 웃고 산 것이, 시간으로 따지면, 고작 30일입니다.

 

반면 걱정하고 근심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6분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80년으로 환산하면 일생 동안 10년 정도를 걱정, 근심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밖에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은 평균 6.7시간(80년일 경우 22년을 잠을 잡니다.), 일하는 시간은 8시간(80년일 경우 27년 동안 일을 합니다. ) 먹고 마시는 시간은 하루 평균 2.6시간(80년일 경우 9년을 먹고 마시는 시간에 소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니까, 인생 별거 아니지요.

그러면, 이 80-90년 평생 동안, 얼마 만큼, 주님과 동행하며, 예배를 드리며, 찬양하며,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신적 있으십니까?

 

인생은, 시위를 떠난 활과 같습니다. 화살은 한번 시위에서 떠나면, 되 돌릴 수도 없고, 과녁을 향하여, 일정한 속도로, 날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이라,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에 와서는, 생명공학이라고 해서, 어떻게 하면, 인간의 수명을 좀 늘려 볼까, 연구하는 학문이 활발하게 진행중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 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가면서, 어디에 많은 투자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시간이라는 인생 열차에 수 많은 근심 걱정을 싣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 소유욕을 가득 싣고 달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받은 상처를 싣고 '평생 아파하며 분노하며 복수심' 을 가지고 살다가 죽습니다.

그런가 하면 죄만 짓다가 죽는 인생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시간의 흐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이 땅에서, 우리에게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별의 별 일을 다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만들어, 그 안에 미라로 보관하면, 그 영혼이 죽었다가, 다시 그 육체로 돌아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떠난 영혼이 다시 돌아와서, 살아난 미라는 한번도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한번 죽게 되어 있습니다. 두번 죽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단 한번, One Chance 입니다. 그리고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엘코어라는 아주 독특한 회사가 있습니다.1964년 미국의 에팅거 교수가 인간을 냉동 보존 했다가 해동시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생긴 회사입니다. 그에 따르면, 암이나 불치병에 걸린 사람도 영하 196도의 액체 질소 속에 냉동 보존시켰다가 과학이 발달된 미래의 어느 날, 해동시키면 병도 고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현재까지,100명 이상의 사람이 벌써 냉동인간이 되어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백 명의 회원이 지금도 냉동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냉동 되는데 드는 비용은, 미화 10만 불 정도의 돈이 들어 간다고 해요. 이렇게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인간의 힘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성경 시편 90: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기자는, 우리의 인생을, 날아간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표로 보면, 우리의 80평생이 날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눈 깜짝 할 사이입니다. 하나님은,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80평생은, 한나절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인생이 아주 짧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 아십니까? 그래 정말 이렇게 짧은 인생이라면, 내 마음껏 자유롭게 살다 가는거지! 후회없이 살다 가는거야! 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은, 그래 어차피 이렇게 짧은 인생이라면, 정말 값지게 살다 가야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인생을 다 산 다음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때서야, 이렇게 살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하며, 후회하는 사람이 대 부분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섰을 때, 하나님께서 '너, 어떻게 살았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정말 인생을 잘 살았습니다.' 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본문은, 솔로몬이, 그의 인생 말년에, 그의 지나온 삶을 회상하며 쓴 글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를 보시면, '해 아래' 라는 단어가 27번 나옵니다. 그리고 '헛되다' 라는 단어는 37번이나 나와요. 그래서 전도서를 요약하면, '해아래'의 인생은 '헛되다' 라는 것입니다. '해아래' 가 어디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말하는 것이죠.

 

해 아래서의 삶은 언제가는, 허무하게 끝나고 만나는 것입니다. 100년 200년 살 것 처럼, 악척같이 살았는데, 그것도 쉽게 끝나버리더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나만을 위해서 살았는데, 그것도 쉽게 끝나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누구입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당시 솔로몬이 통치하던, 이스라엘은 이웃나라들이 조공을 바칠 정도로 강대국이었습니다. 또 솔로몬은, 그 막강한 권력에, 지혜까지 겸비한 왕이었습니다. 지금도, '지혜' 하면 '솔로몬' 이 떠오를 정도로, 지혜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엄청난 지혜를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똑똑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천문학, 변증학, 수사학, 등등, 당시에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지식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웃나라의 왕들이, 재물을 싸들고 와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배워갈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후궁을 1000명이나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권력, 지혜, 여자,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인생말년에 고백하는 것이, '해 아래' 의 것은 '헛되다' 라고 정리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솔로몬이, '해 아래'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을까요? 그냥 '이 세상' 이라고 하던지 아니면, '이 땅' 이라고 하던지, 굳이 '해 아래' 라는 말을 27번씩이나, 연속해서, 강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해 아래' 의 삶이 있다면, '해 위에' 삶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해 아래'의 삶은, 언젠가는 끝나는 것이고, 고난과 슬픔 뿐이고, 다 살고 나니까, 나같이 엘리트로 인생을 산 사람도, 살아보니까, '헛 되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 위에' 삶도 있다, 그 '해 위에' 삶은, 끝나지도 않는다, 영원한 것이다. 거기는 고난도 슬픔도 없고, 죽음도 없는 곳이다. 그 '해 위에' 삶을 위해서 산다면, 절대로, 인생은 '헛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해 아래' 와 '해 위에' 의 삶을 나누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 아래의 삶' 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1. 두번째로, 이 땅에서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유익한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쉬운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사람이 평생동안 수고하여 얻는 것이 무엇인가?"

 

여러분은, 평생 수고하여, 무엇을 얻을 것 같습니까? 평생 수고하여, 집 한채 남기고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평생 수고하여, 은행에, 돈 몇 푼 남기고 가시겠습니까?

 

어떤 분이, 중국의 북경 관광을 갔었다고 해요. 왕들이 살았던, 왕궁을 구경하는데, 안내원이, 궁궐안의 어떤 한 방을 가리키면서, 저 방이야말로 청조 말기에 가장 사치하고 호화롭게 살았던 서태후의 방이라고 소개하더랍니다. 가서 보니까, 그 방에는 아무것도 없고 낡은 침대와 베개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안내자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 그렇게 호화롭고 그렇게 사치하고 그렇게 권세를 부렸던 서태후도, 마지막에 남기고 간 것은 그 베개 하나밖에 없다는 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평생동안 수고하여 무엇을 남기고 가길 원하십니까? 혹시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할지, 고민 한 적이 있으십니까?

저의 아버지는, 평생을 밭에서 일만 하셨습니다. 가는 곳이라곤, 밭과 교회와 집이 전부였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데, 신발을 사시면, 항상 흰색 신발을 사셨습니다. 금방 밭에 들어가면, 빨간색으로 변하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항상, 저희 아버지는 신발이 두 켤레였습니다. 교회갈 때, 싣는 신발과, 밭에서 싣는 신발 이렇게 두 켤레였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사시면서, 자식들에게 자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해서, 벌어놔야, 너희들이 편하게 살 수 있다" 세상 모든 부모님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오래가지 못 하더라구요.

 

오늘,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은요. '나는 아무 것도 남기고 가는 게 없다.' 라고 탄식하고 있는 거예요. "평생동안 수고하여, 내가 무엇을 얻었는가?" 생각해 보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라고 하며, 탄식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설교를 하면,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도대체 그럼 어떻게 살란 말인가?' 솔로몬 같은 사람도, '내가 무엇을 얻었는가?' 라고 인생을 후회하며 탄식했는데, '우리는 어쩌란 말입니까?' 라고 하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갈증을 느끼셔야 합니다. 타는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고민이 없으면, 변화도 없습니다. 그런 고민이 없으면, 주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제발, 그런 고민 좀 하며 사시실 바랍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신 분들은, 이런 고민을 하다가,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으로부터, '너 인생 헛되게 살았다' 라는 책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 고민 고민 하다가, 주님을 택한 사람들이죠.'

 

혹시 이런 고민을 해보지 않으셨다면, 오늘이라도,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고민은 늦으면, 늦을수록, 위험해 집니다.

 

솔로몬은, 부귀영화 누리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술에 취해도 보고, 열왕기상 10장을 보시면, 솔로몬은 술을 맡은 전문가 들을 두고 술을 먹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안되니까, 여자에게서 만족을 누리려고, 첩들을 1000명이나 얻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서야, 그제서야, 이렇게 산 인생이 헛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이 지금 우리에게 뭐라고 충고하냐면, 전도서 12:1절을 보시면,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이 말씀은 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하는 탄식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전, 아직 젊었을 때에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여라."

 

한마디로, 이런 말입니다. 거의 죽을 때가 되서야, 고민하지 말고, 아직 젊었을 때에, 아직 하나님을 섬길 힘이 있을 때, 고민해보라는 거예요.

솔로몬이, 살아보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 잘 사는 것이라고 뒤 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뒤 늦게라도, 깨달았으니까, 다행이죠. 그것도 몰랐으면, 인생 헛되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너 인생 헛되게 살았다" 라고 하나님으로부터 책망 받는 것입니다. 그런 위험에 처할 까봐, 솔로몬은, 일찍 일찍 고민해 봐라, 좀 생각 좀 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 한번 사는 인생입니다. 이 인생은, 뒤 물릴 수도 없고, 멈출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영원히 살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 아래' 것을 바라보기 보다는 '해 위에' 것,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 삶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소망을 발견한 사람은, 어마어마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발견만 하고, 주저 앉아 있으면 안되죠,

"평생 동안 수고하고, 남은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을 남기시겠습니까?

침대와 베게를 남기시겠습니까? 아니면, 집 한채 남기시겠습니까?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남기시길 원하는 몫이 있을 거예요. 어떤 사람에게는, 제발 예수만 믿어다오 라고 할 수도 있으시겠고, 어떤 사람에게는, 교회를 잘 섬기길 원한다 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나에게 예배하는 것을 내가 기뻐 한다 라고 하실 수도 있으시겠고, 어떤 분에게는, 전도하는 몫을 주실 수도 있겠죠.

 

그러므로, 평생동안 수고하여, 무엇을 남길 것인가? 고민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