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생수의 강물, 성령 - 요한복음 7:37-39

by Peartree 2012. 12. 26.

생수의 강물, 성령

요한복음 7:37-39

 

제 작년에, 국내선을 탈 일이 있어서, 피닉스 공항을 이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피닉스를 내려다 보니까, 물을 어디에서부터 끌어 오는지,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수로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피닉스에 도착해서, 투산을 오는데, 흐르는 강물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하! 저 강물이, 자연적인 강물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끌어오는 물이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콜로라도에서 끌어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사는 이 투산은, 강에 물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도시든지, 물이 많은 도시를 가면, 축복 받은 도시라고 말을 합니다. 그럼 그냥 물이 많기 때문에 축복 받은 도시입니까? 다른 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물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물이 많다는 것은, 그 많큼, 생명이 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말입니다.

요한 복음 3장에서도,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를 볼 수 없다' 고 말씀하셨듯이, 물은 생명이 사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실제 예로, 아기가 태어날 때에, 어머니 뱃속의, 양수 속에 들어있다가 태어납니다. 그래서 물속에서,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태어난 다음에는 어떻습니까? 물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음식은 40일 금식, 100일 금식도 하는데, 물은 1주일 먹지 않으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물이 많은 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물을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프랑스입니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에비앙' 이라는 물이 있습니다. 또 costco에 가시면, '페리어' 라는 탄산음료가 있습니다. 이것도 프랑스산인데, 프랑스가 물 수출을 해서 버는 돈이, 중동의 웬만한 나가가, 오일을 수출해서 버는 돈보다 더 많이 벌어 들인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330ml 에비앙 한병이 한국에서는, 1300원입니다. 그런데, 330ml 휘발유 는, 700원 정도 되죠. 물이 거의 두 배나 비싼 편입니다.

그러니, 물이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 37절을 보시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라고 말씀합니다. 가만히 보면, 예수님께서는 물을 가지고 다니시지도 않으면서, '내게도 와서 마시라' 라고 말씀합니다. 혹시 감춰둔 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 모르겠습니다. 요한 복음 4장에서도, 우물가의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니라"

 

도 오늘 38절을 보세요. 이제는 우물물 정도가 아닙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강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영원히 갈증을 느끼지 않을 것 같은 이 강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생수를 주신다고, 말씀하시는데, 또 물을 가지고 다니셨다는 성경의 기록이 없는데, 그럼 이 물을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허풍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닐텐데요.

 

39절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러니까, 물이 뭐라고요?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안에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은 육체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데 비해,

성령은,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갈증과, 영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은 내게로 나오라는 거에요, 그러면, 시원하게 될 것이다. 영혼이 목말라 죽는 일을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거예요.

'목사님, 저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은 받았는데, 여전히 영적인 갈증이 해소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 메말라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배를 드려도, 기도를 해도, 말씀을 들어도, 봉사를 해도, 점점 갈증 나고, 메말라 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미국의 성령론의 권위자이신, R. A. 토레이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을 받는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이 성령충만한 것은 아니다"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충만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하며, 성령 충만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성령 충만하면, 지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적인 변화란? 하나님에 대하여 알려고 하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내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알고 싶어지고, 그래서, 성경을 읽기 시작하고, 그래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으면,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성경 공부를 참석하고, 그래도 갈증이 해소가 되지 않으면, 기독교 서적을 사서 읽고, 그래도, 않되면, 하나님께 무릎꿇어 기도해 보기도 한다는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지, 영적인 것을 사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요.

 

그래서, 다윗의 고백처럼, 성령이 충만하면, "주의 말씀이 꿀과 꿀송이 보다 더 다나이다" 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세상의 모든 지식을 주를 위하여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하면, 세상의 것은 시시하게 여깁니다.

세상의 것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성령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것을 사모하고, 더 알고 싶어하는, 지적변화가 일어난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의 첫번째 증거입니다.

 

  1. 두번째로, 성령충만한 사람은, 감정이 변화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많은 감정의 변화를 동반합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쁨"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50-52절을 보시면,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를 하는데, 유대인들이, 귀부인들과 권력자들을 선동해서, 이 두사람을 핍박을 합니다. 그리고는 그 동네에서, 쫓아내버리죠. 그래서 이 두사람이,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52절을 보시면, 핍박을 받아 쫓겨 가면서,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뻐할 일도 전혀 아닌데,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충만했으니까, 핍박중에도, 기뻐한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면, 가장 두드러지는 감정의 변화는,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쁨에는, 주안에서의 기쁨이 있고, 세상이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은 조건적입니다. 그리고 시각적입니다. 무슨 소리냐면, 세상에서 기뻐하는 것은 어떠한 조건이 만족되어져야 기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눈에 보여져야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가 맞아 떨어져야 기쁨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이, 백만불 Lottery 에 당첨 되었습니다. 첫번째, 조건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100만불이, 내 손에 쥐어 져야 합니다. 이것이 두번째, 시각적 조건입니다. 그런데, 첫번째 조건은 맞았는데, 두번째 조건이 맞지 않았다면 어떻게 됩니까? 기쁠리가 없습니다.

100만불 Lottery 는 맞았는데, 돈이 내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러면, 기쁠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조건적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습니다.

 

찬양 중에 이런 찬양가사가 있습니다. '나의 가는길 주님 인도하시네 큰 보이지 않아도 날위해 일하시네 주나의 인도자 항상 함께 하시네 사랑과 힘 베푸시며 인도하시네 인도하시네'

 

여러분, 성령 충만한 자의 변화가운데 가장 중요한 변화는 기뻐하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 어려움도 없고, 근심걱정도 없다, 그래서 기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벧전 1: 6 절의 말씀처럼,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벧전 1:8절의 말씀에도,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성령은 고난 가운데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신다."

 

보이지 않으나, 잡히지 않으나, 분명한 건, 기쁨이 넘치는 감정의 변화가, 성령 충만하면, 일어난 다는 것입니다.

 

  1. 세번째로, 성령충만한 사람은, 의지가 변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여기서 의지란, '의지 한다, 기댄다'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결단'을 말합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의지를 말합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4복음서의 제자들과 전혀 다른 제자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서로 자기가 높다고 자리싸움 만하고, 기도하지 않고 졸기만 하던 제자들이 "서로 떡을 떼며 교제하며,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제자들이 성령충만하지 않았을 때 자기 의지가 강했던 것입니다. 내 고집이 강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받고, 내 의지를 꺽고, 고집을 꺽고,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지가 변화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도 결단합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성령충만하면, 내가 변하는 것은 물론, 나로 인하여, 주변의 사람들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을, 간단하게 말하면, 물컵에 물이 가득해서, 물이 흘러 넘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옆에 있으면, 같이 물에 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젖은 사람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이, 우리 주님의 소망이셨던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생수의 강에 젖기를 주님은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물이 우리의 갈증을 해소하듯이, 성령 충만은 우리의 영혼을 풍성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물이 많은 곳을 복 받은 땅이라고 하듯이, 성령 충만한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이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 성령 충만한 삶으로, 하루 하루 기쁨으로 이겨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