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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기적의 조건 - 요한복음 6:1-15

by Peartree 2012. 12. 25.

기적의 조건

요한복음 6:1-15

 

오늘 본문은 우리가 여러 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것이 12바구니나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반이라는, 공생애 기간동안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바다위를 걷기도 하시고, 죽을 나사로를 살리기도 하시고, 각종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실, 아주 소박한 기적이었습니다.

다른 기적들은, 절실할 때, 간절히 원할 때, 기적을 베풀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가운데서, 일어났었는데, 이번 기적은 그렇게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허기진 배를 채워 주신 기적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한끼 굶는다고, 죽지 않습니다. 오늘 기적을 보시면, 전혀 기적을 베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굳이,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면, 기적은 절박한 가운데서만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도 기적은 얼마든지 일어 난다는 것입니다.

 

한 노인이 대학가에서 대학생들에게 전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노인을 피하여 지나갔는데, 한 학생이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러면서 묻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아직도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다는 말도 안되는 기적을 믿으시나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학생이 원한다면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대신 포도주를 물로 변화시키신 기적을 당장에 라도 보여줄수 있겠네?" 라고 하자 "그럼, 보여 주시지요" 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젊은 청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먼저 이 길 건너 마을에 가서 '짚시 스미쓰'를 알고 있느냐고 물어 보게나. 온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던 악명 높은 알콜중독자임을 모두가 자네에게 증거할 것이네. 그는 단 하루도 아니 단 한시간도 술 없이는 인생을 살수 없었던 사람이었다네. 그런데 지금은 술대신 물을 마시고 살고 있다네. 그가 바로 당신 앞에 서있는 바로 나일세.

라고 했다고 합니다.

짚시 스미쓰라는 전도자의 이야기입니다.

 

기적은 꼭 절박한 상황가운데, 일어나는 것이 꼭 기적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순간적으로 변화시켜, 술을 딱 끊게 만드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적 중에 기적이지요.

그러나, 술을 조금씩 조금씩 줄여가며, 살을 깍는 각고의 노력끝에, 결국에 끊었다면, 그것도 기적입니다. 술을 끊기 위해서, 집안에 있는 술을, 다 버리고, 월마트 가면, 술 코너에는 가지도 않고, 술자리 같은 모임에는 일부러 가지 않고, 그래서 끊었다면, 그것도 기적입니다.

 

어느 두 사람이 차를 몰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타고 있던 사람은 하나도 안 다치고, 운전자는 중태에 빠졌다고 해 보세요. 그런데, 다행이도, 중태에 빠진 사람이, 의식이 돌아오고, 말을 하고, 다시 살아난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기적이 일어났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더 큰 기적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고날 때, 같은 차에 타고 있으면서, 아무곳도 다치지 않은 사람이, 더 큰 기적의 사나이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와 여러분' 들은 하루 하루 기적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오늘 이 '오병이어의 기적' 전혀 절박한 상황이 아니고, 그저 평범한 일상 가운데 베푸신 이 기적을, 주님께서 왜 일으키시게 되었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굳이 일으키지도 않아도 되는 이 기적을 주님은 왜 일으키셔야만 했냐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보시면,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어느 날 이었습니다. 그날도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군중들을 보니까, 너무 불쌍해 보이는 거예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허기진 모습으로, 말씀을 사모하고, 들을려고 오는 그들이 너무 안타까운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즉, '떡을 사다가 저들을 좀 먹여야 겠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이 마음이 기적을 가져온 것입니다.

 

'87일의 기적' 이라는 실제로 있었던 실화가 있습니다.

잘 생기고 똑똑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대로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우등생이었고 명문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다 군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뜻밖의 불행이 그 가족에게 찾아왔습니다. 첫 휴가를 나온 아들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고 만 것입니다. 앞날이 창창하던 아들이 허망하게 쓰러져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아버지도 그만 삶의 의욕을 잃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그 아버지에게 오늘 이본문의 말씀을 전해 주면서, '사랑하는 마음이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들은 식물인간 일지라도, 귀로는 아버지의 소리을 듣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매일 매일 아들의 귓전에,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넌 일어날 거예야" 라고 매일 매일 아들의 귓게에다 대로 말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버지는 아들의 귓전에 매일매일 '아들아 ! 내가 너를 사랑한다' 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렇게 87일째 되는 날, 그 아들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첫 마디가 "아버지! 저도 아버지 사랑해요"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기적을 낳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가장 큰 기적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가장 큰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신 것, 이것보다, 큰 사랑이 있습니까? 그리고 가장 큰 기적은,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이,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기적이 있습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달나라에 가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우주 공간을 뚫고, 이 지구에 태어나시고, 죽으신 것이 기적인 것입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도 기적이지만, 이미 소생 불가, 지옥자식이었던 내가, 구원 받은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모두, 기적의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드렸었던 적이 있습니다.

 

  1. 두번째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감사였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시면, 기적이 언제 일어났습니가?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문제가 해결 된 다음에야, 그제서야,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감사기도 먼저 드리는 사람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감사기도부터 드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살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었다" 란 말과 같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당장 먹어야 하는 식사분이 5000명 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고작 예수님께서 들고 계신 것은, 초라한 '오병이어' 였습니다. 당시, 갈릴리 바닷가 마을의 서민들이, 즐겨 먹던, 보리떡과 구운 생선 두마리였습니다. 감사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5000끼의 식사가 필요한데, 적어도, 물고기 1000마리는 있어야 되는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주님은, 이 소년의 한끼 식사를 가지고,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여러분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고 계십니까?

한끼 식사 가지고,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까?

 

여러분 ! 기독교는 감사하는 종교입니다. 주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거기에다가 감사를 첨부해서,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감사, 이 네가지는 항상 있어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한끼 식사를 놓고 감사 할 수도 있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불평하면, 남는게 없습니다. 더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고, 더 배고픔을 느끼죠. 그때 마다 오히려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감사 가운데,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불평하면, 있던 감사마저 달아납니다.

 

사복음서 보시면, 예수님께서 감사 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감사 기도드린 곳이 여러군데 나오는데,

마 11:21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벳새다에서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셨습니다. 그런데,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셨는데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 온 사람은, 극히 적었습니다. 화가날 일이죠.

가장 많이 은혜를 주었는데, 가장 많이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25절에, 이렇게 기도하시죠.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기도합니다.

 

즉 이런 내용입니다. 정말 열심히, 복음 전하고, 사역을 했는데, 결실이 없지만, 그래도 그중에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사람들 몇명이라도, 복음을 듣고, 돌아왔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몇 명 때문에, 감사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심히 전도했는데, 결실이 없습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요.

열심히 인생을 살았는데, 벌은 것이 없습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요.

지금 숨쉬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 감사의 기도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오늘 주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이유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영혼은 사랑하면, 언제가는, 그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 가운데, 아주 작은 것 까지도,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