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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세례요한의 발견 - 요한복음 3:22-36

by Peartree 2012. 12. 25.

세례요한의 발견

요한복음 3:22-36

 

지난 시간에는 요한복음 3:16절을 통하여, 복음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복음은, 영원히 멸망 받아 마땅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독자 아들 예수님을 죽이시면서 까지, 사랑하시고, 그 아들의 피로, 우릴 구원한 것이 복음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말고는 다른 길은 없다고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되어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지금까지 세례요한이 사람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아 왔고, 선자중에 최고의 선지자 였습니다. 처음부터, 천국복음을 전한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고,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예수님은 혜성처럼 나타난 새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 개의 리더십이 생기는 것이죠.

사람들이 많은 혼동을 했을 것입니다. 대체, 누구를 따라야 하는가? 지금까지 세례요한을 따라왔는데,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세례요한을 따라야 하는지, 이 선택에 문제에 직면하게 되겠죠.

 

지금까지 세례요한의 삶을 보시면, 흠 잡을데가 없는 완벽한 선지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물질을 탐하기를 하니, 먹을 것을 탐하기를 하나, 의복을 탐하기를 하나, 가진 거라곤, 지팡이와, 약대털옷, 가죽신이 전부였습니다. 먹는 것이라고는, 야생 꿀이나 받아 먹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좀 흠이라도 있었으면, 예수님께로 얼른 갈텐데, 흠잡을 데가 있어야지요.

그렇다고, 예수님이라는 분이, 나타나셨는데, 이분도, 예사분이 아니었습니다. 물을포도주로 만들질 않나, 말씀하시는 것은, 생전 들어보지 못한, 하늘의 비밀의 말씀을 풀어 놓는데, 이분도 영락없는 선지자 였던 것입니다.

 

두명의 리더쉽! 처음에는 좋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사람들은, '대체,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서, 오늘 세례요한은 어떠한 결단을 내리는지, 세례요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몇가지 교훈을 찾길 원합니다.

 

  1. 첫째로, 세례요한의 결단에서, 우리가 배울것은, 자기 발견입니다.

 

28절을 보시면, 세례요한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 라고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지금 세례요한이 제자들에게 어째서 이 말을 하게 됬냐면,

그전에, 25절을 보시면,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한 유대인이, 요한이 세례 주는 문제를 가지고 변론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쉬운 한글 성경은, '말다툼이 벌어졌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세례 주는 걸 가지고, 어떤 말다툼이 벌어졌는지,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짐작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유대인들이 해왔던, 죄를 씻는 의식과, 요한의 의식이 달랐던 것을 가지고 따졌을 것입니다.

 

그전에는, 죄를 씻기 위해서, 양을 잡고, 피를 바르고 했었는데, 그런 것 없어지고, 강물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 나오기만 하면, 죄를 씻는 의식이라고 했으니, 이해가 안 갔을 거예요.

이렇게 유대인들과 이 문제로 말 다툼을 하고 있는 판인데,

 

26절에 보시면, 또 다른 문제가 또 생긴거예요. 이 '물세례' 이것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요한이 만들었죠. 특허권을 요한이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요한에게 받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이 광경을 보고는, 화가 난 것입니다. '감히, 우리 선생님의 특허를, 허락도 없이, 도용하다니, 지금 말로 하면, 우리 고객을 뺏어 가다니, 교회로 말하면, 우리 성도를 뺏어 가다니'

그러면서, 제자들이 요한에게, 선생님 정말 괴씸하지 않습니까? 저 사람은 상도의가 없습니다. 저 사람은 목회윤리가 없습니다. 왜 남의 성도를 빼앗아 갑니까?

 

그때, 세례요한이 이런 말을 합니다.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이런 말입니다. '나도 하나님께 받아서, 세례를 준 것이다. 분명, 예수님도 하나님에게서 받은 걸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나 세례를 주지 못한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나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 앞에 보내심을 받은자' 다 라고 말합니다. 영화로 말하면, '나는 엑스트라다' 라는 말입니다. 29절 보세요. '그는 신랑이고, 나는 들러리다' 라는 말을 합니다. 결혼식때, 옆에 있는 들러리들이 더 멋있고, 예쁘면, 되겠습니까? 그날은, 신랑 신부보다, 멋있거나, 예쁘면, 안되요.

이처럼, 세례요한은, 주님은 빛이나야 하고, 나는 이제 빛을 나의 빛을 꺼뜨려야 할 때이다. 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요. '세례요한이 지금처럼, 자기 발견을 하지 못하고, 끝까지 "나도 내 사역이 있다." 고 하면서, 고집 부렸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니, 저 사람이, 내 성도를 빼앗아가, 어디 한번 해보다, 끝까지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라고 했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주님은 저 뒷전으로 밀려나시는 거죠. 하나님 영광 가리우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주님이 높임 받으시고, 하나님 영광 나타내는 것입니다.

 

지금도, 목사님들이나,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주의 일 한다고 하면서, 주님 앞에 서서, 주의 길을 막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기도합니다. '주님 혹시 제가, 제 열심으로 사역한다고, 주님보다 더 앞서 가지는 않습니까?, 주님, 성도 한 사람이 아쉽지만, 목회 윤리를 지키도록, 본질에 충실하게 해 주십시요'

 

이런 일들을 주님께서는 그렇게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일들이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3:15절 보시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열심으로 주의 일 한다고 하면서,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성도를 찾아 와서는, 주의 제자 만들지 않고, 자기 제자 만들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요. 열심으로 하는 것은 좋지만, 주님 뜻대로 하고 있는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만약, 이때,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세례 받으려고 줄서 있는 성도들에게 가서, '여러분, 세례를 만든 것은, 접니다. 제가 원조입니다. 그쪽은 내 것을 카피 한 것입니다.' 라고 했다면, 열심으로 일해놓고, 책망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발견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 때 세례요한은 자기 발견을 했습니다. 아하, 이 시점에서 나는, 사라져야 하는 시점이구나, 지금은 주님이 나타나셔야 할 때구나,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선지자 중에, 요한이 최고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 두 번째로, 세례요한이 발견한 것은, 보내심을 받은 자란 것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을 보시면, 세례요한은, 자기를 '예수님 앞에 보내심을 받은자' 자고 말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처음 입학할 때 면접을 보시던 교수님들이 저에게 '언제 소명을 받았냐?' 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 질문은, 100명이면, 100명 다 반드시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보통 이렇게 되면, 언제 소명을 받았다고 말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날자는 모를 수 있지만, 소명 받은 날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때, 언제 소명을 받았는지,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불합격 될 수 도 있습니다.

 

왜 불합격이 될 수 있냐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언제든 힘들고 어려울 때, 포기하고, 떠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명이 분명한 사람, 이런 사람은요.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 이라고 하는, 확신에 처하기에, 왠만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내가 해야할 일이고, 하나님께서도, 이일 때문에 나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리 에스더가, 저에게 묻습니다. '아빠! 목회 하는거 재밌어?'.. 그럼 재밌다고 합니다. 에스더가 볼때는 별로 재미없는 일 같이 보였나 봅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합니다. 목회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이 일 하라고, 이 땅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소명 받지 않은 사람에게, 목사 해보라고 해보세요.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하지는 않을 거예요.

한때, 한국에서는, 직업 선호도 중에, 목사가 2위 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볼때에, 목사라는 직업이 괜찮게 보였었나봐요.

혹시, 세상 사람들 처럼, 직업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잘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힘든 일이 닥치면, 직업이라고 생각하기에, 언제든, 바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소명을 발견하고, 그길 가는 것이, 기쁜 마음으로 사는 지름길 입니다.

 

목사뿐 아니라,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특정한 분야에, 주의 일 하도록, 부르신 분들입니다. 목사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으로, 전도의 일로, 어떤분은 섬기는 일로, 어떤 분은, 권면하는 일로,

 

교회 개척에만 관심이 있는 성도님도 있습니다. 이것도 자기 맘대로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르신 것입니다.

저는, 선교에는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목회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용도로 부르셨는가? 아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명을 발견하라고가끔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 소명을 발견하면, 그 일이 재밌어 집니다. 잘 포기하지도 않게 됩니다. 소명을 발견하지 못하니까, 이것 조금 하다가 말고, 저것 조금 하다가 마는 거예요.

 

오늘 세례요한을 보세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소명은, '예수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 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 앞에서 사역하다가, 예수님이 나타나면, 이슬 처럼 사라지는 것이 세례요한의 사명이었습니다.

뭐 이런 사명이 다 있습니까? 자기가 데리고 있던, 제자들 마쳐, 예수님께 보내드리고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소명……

 

저 같으면, 하나님께 따져보겠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한 마디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죠. 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세례요한은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고 한다면, 이 사명을 다 마치고, 하나님께서 다시 하늘로 부르신다는 것까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욕심도 없었어요. 주어진 사명만 감당하면 된다고, 하는, 사명에만 충실했습니다.

 

사실, 맡은 사명에만 충실하다 가는 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아마도, 맡은 사명 충실하게 일하다, 가는 사람이 세상에 몇명이나 되게습니까?

거의 없을 걸요.

 

사실, 사명을 발견하기만 해도, 사명의 반은 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의 발견이 중요합니다.

 

로마서 1장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라고 말합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기까기 충성한 것입니다.

오늘 세례요한도, 부르심을 발견하고, 주님께 모든 것 드리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일을 맡겨 주시려고 부르셨는지, 사명을 발견하고, 그 길로 잘 달려가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