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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다시 살지 못하였으면 - 고린도전서 15:12-20

by Peartree 2012. 12. 25.

다시 살지 못하였으면

고린도전서 15:12-20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일 거예요. 과거에 생각 좀 한다는, 수 많은 철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다 하다, 머리가 너무 아프니까,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와서, 무덤으로 가는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정말 무덤까지 만 가면 끝이겠습니까? 생각을 좀 더 깊이 하는, 철학자들은 '아니다. 무덤이 인생의 종착역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죽은 후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이 죽음과 영혼에 대한, 숙제를 풀려고 했지만, 해답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오랜 동안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자 같은 사람들은 제자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 에 대해서 물었을 때, '살아있는 이 세상의 것도 모르는데, 죽은 후의 것을 어떻게 알겠느냐? 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솔직하게 대답한 거예요. 아무리 공자라도, 죽음에 대해서, 분명한 해답을 줄 수 는 없었을 것입니다.

 

불교는 윤회설을 주장하며, '죽으면, 이 세상에, 개나 소나, 심지어는 벼룩으로 다시 태어난다' 고 했어요. 그래서 혹시 이 짐승들이나, 곤충들이, 예전에,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살아있는 짐승을 먹지 말자, 기어 다니는 개미도 사람이었을지 모르니까, 죽이지 말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요. '사람이 죽으면, 혼이 육체에서 빠져 나와 돌아 다니다가, 죽은 육체로 다시 들어오게 된다.' 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언제고 다시 돌아 올 수 있도록, 죽은 시체를 썩지 않게, 미라를 만들어 보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수 천년 전 미라가 발견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죽음이 끝은 아니라고, 희미하게 믿고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물로 환생한다고 하고, 영혼이 다시 돌아온다고 막연하게 믿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제외한, 세상의 어떤 종교라도, 이 죽음에 관해서, 확실하게 답변 할 수 있는 종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확실하게, '죽음이 이런 것이고, 죽음 이후에는 이런 것이다.' 라고 답변을 해 주려면,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본바 되고, 손으로 만진바 되도록, 보여주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요.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신 다음에, 도마에게, 나를 만져 봐라, 라고 했습니다. 이 정도는 되야,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00년전, 주님은, 말로만 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 주셨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기절하셨다가, 깨어나신 것이 아니고,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받으시고, 머리에 가시관 쓰시고, 물과 피를 다 쏫으시고, 의학적으로, 도저히 살아날래야 살아 날 수 없는, 참혹한 죽음 당하시고, 3일을 무덤에, 계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부활의 사건은, '절대 모방 할 수 없는 사건' 입니다. 그냥, 'Heart attack' 으로 쓰러 졌다가, 3일 만에 깨어나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깨어난다고 해도, 피가 없기 때문에 살 가망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절대 일어 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이 부활의 사건을 '기적의 사건' 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적이라는 것은, 절대 일어 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을 '기적' 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은, 사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기적' 이 전혀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다시 사시기로 마음 먹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간신히, 어렵게 가까스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의해서, 그냥 다시 사신 것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사셨다는 것에, 초점을 마추기 보다는, 주님께서, 다시 사시기로 마음 먹으신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우리의 눈으로 보면, 절대 모방 할 수 없는 이 기적의 사건이, 만약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만약에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14,15절 보시면,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된다' 고 말씀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말입니다. '너희가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한다고 말하는데, 너희가 믿는 예수도, 다시 살지 못하고, 죽었잖느냐?' 라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면서, 조롱한다는 거예요. 만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말이죠.

 

1500년대에, 프랑스에 아주 유명한 영웅이 있었다고 해요. 그는 전세계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수억이 되는 것을 알고 심히 놀랐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예수님처럼, 종교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 마을에 아주 유명한 성직자를 찾아가서, "나도 예수처럼, 종교를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요" 라고 했다고 해요. 그러자, 그 성직자가 "예 한가지 좋은 방법이 있긴 합니다." 라고 하자, "그게 뭔데요. 가르쳐 주세요." 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십시요. 그리고, 3일만에 다시 살아 나시면 됩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우연히 생겨난 종교가 아닙니다. 적어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실이, 바탕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실이 없는 종교는, 오늘 말씀처럼, 다 거짓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도 거짓말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부활 하신 사건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안티 크리스천들이, 자꾸 주장하는 것이, 예수는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다 거짓말 하는 자들로 만들어 기독교 전체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런데요. 성경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수 십군데,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니예요.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역사학자, 조세프스라는 사람도, 그의 역사책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 사람은 크리스찬이 아니고, 그냥 역사학자입니다. "예수라는 한 지혜로운 자가 있다. 그를 사람으로 보는 것이 위법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는 놀랄만한 공적을 세웠다 …그는 다름아닌 그리스도였다. 그는 삼일 째 부활해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예언가들이 예언한 대로 말이다."

 

마태복음 28:12절을 보시면, 당시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무덤을 지켰던 군병들을 돈으로 매수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예수의 제자들이 몰래, 예수의 시체를 가져간 다음에, 그가 다시 살았다고 주장한다.' 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거짓 소문을 퍼뜨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살아 나셔서, 12제자들도 만나고, 500명의 성도들도 만나고, 다니고 계셨는데요. 실제로 살아나, 사람들과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로와 제사장들이, 마지막엔 어떤 소문을 퍼뜨렸냐면,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그의 제자들이 정교하게 다 지어낸 이야기다.' 라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에, 목숨 거는 사람 보셨습니까?

 

예를들어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이야기를 지어낸다음, 그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사자의 밥이 되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고, 단두대에 목이 잘려 죽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자기들이 지어낸 이야기에, 목숨을 걸 수 있냐는 거예요.

 

다시 살아난, 예수님을 직접 만지고, 보고, 대화를 나누고, 요한 복음 21장에 보시면, 같이 둘러 앉아 생선을 구어 먹고 했으니까,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다시 사셨다는 것은, 제자들의 소망이었지만, 지금 우리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이 소망이 아니면, 우리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진리를 믿거나, 거짓말 하거나, 여러분, 절대 저와 여러분들은 거짓말쟁이 아니고, 진리를 따를 사람들인 걸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두번째로, 예수님의 다시 사심이 없었다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7절을 보시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차를 운전하며, 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리고, 그 도로를 한참 달리다 보면, 낭떨어지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운전자는, 차 안에서, 열심히, 미래를 설계하며, 어떻게 세상에서 출세를 하고, 누구와 결혼하고, 노년은 이렇게 보내야지, 하며, 꿈을 꾸며 달리고 있다고 해 보십시요.

그런데, 그 운전자는 희망을 갖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으면,

'너희들이 아무리, 믿음 생활하고, 기도생활하고, 거룩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결국엔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요, 차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가가 중요하듯이, 우리의 믿음도, 부활의 신앙을 따라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세상에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들은, 부활 신앙이 없습니다. 마호메트가, 다시 살아났습니까?, 부처가 다시 살아났습니까? 그들은, 그들이 믿는 그들의 신처럼, 영원히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20절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첫 열매는, 그 다음 열매도, 첫 열매와 같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다시 사셨기에, 주님께 붙어 있는 성도는, 그 가지에서 열매가 됩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에서 사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이러한 소망이 없으면, 우리 만큼 세상에서, 불쌍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19절 보세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 만약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최고로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죠. 가고 싶은데, 맘대로 가기를 하나, 맘대로 먹기를 하나, 맘대로, 살기를 하나.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죠.

 

그래도 지금은 좀, 괜찮은 시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글을 쓰던 당시는, 정말, 예수 믿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부활신앙만 아니면,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당시의 크리스천들이었을 거예요.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지 아십니까? '부활신앙' 에서 나옵니다. 부활신앙이란? 죽어도 다시 사는 신앙을 말합니다.

 

예수님께 마르다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으면, 죽어도 다시 살것이다, 네가 믿느냐?"

마르다가 뭐라도 대답한지 아십니까?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인 줄 내가 믿나이다"

 

오늘도, 마르다처럼, 부활신앙으로, 이 마지막 시대를 이겨 승리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저들이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다.' 라는 말을 할지 모르지만, 마지막 결승점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 되시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