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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변화된 삶 - 마태복음 21:28-32

by Peartree 2012. 12. 25.

변화된 삶

마태복음 21:28-32

 

사람이 변화된다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변화된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과, 생각과, 습관의 변화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Horace Mann 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습관은 밧줄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매일 습관이란 밧줄을 짜고 있고, 이 밧줄은 너무도 질겨 잘 끊어지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습관은,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고, 평생 동안 조금씩, 조금씩, 엮어 만든 것이라, 왠만해서는,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교인들의 교회 생활습관도 잘 고쳐지지 않은다는 것이,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교인들 유형을 유머있게 표현한 글들이 있습니다.

평생 꽈배기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장로님의 기도가 너무 길다, 목사님의 설교가 너

무 지루하다고 몸을 비비꼬면서 안절부절하는 교인을 말합니다. 이것도 습관화된 경우입니다.

평생 나팔꽃 교인도 있다고 합니다. 기분이 좋으면, 주일예배에 반짝 나오는 교

인을 말한다고 합니다.

또 전투형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싸우는 교인

유람선 교인도 있습니다. 이 교회 저 교회 등록도 안 하고 관광하는 교인.

국회의원 스타일의 교인도 있습니다. 항상 가족대표로 혼자만 나오는 교인을 말합니

다.

이런 것들이, 다 습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습관이, 라이프 스타일이 되어서, 신앙생활의 패턴까지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두 아들의 비유' 입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큰 아들이 '예, 아버지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은 철석하기 하고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가서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 둘째 아들은 '싫습니다' 라고, 매정하게 거절을 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 '내가 너무 한 것은 아닌가, 아버지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성경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두 아들의 비유' 를 말씀 하시고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그러자 사람들이 '둘째 아들입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안타까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세 번째 아들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고 했을 때 , '예 가겠습니다' 하고, 그 즉시 '포도원에 가서 일을 했다' 고 한다면,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셋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뇨?' 하고 물으면, 당연히 세번째 아들이죠.

 

그런데, 오늘 보시면, 두 명의 아들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두명의 아들들은, 그렇게 훌륭한 아들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큰 아들은, 처음에는 순종하고, 그 다음에 불순종 한 사람이고, 둘째 아들은, 처음엔 불순종했지만, 나중에는 순종한 경우이기에, 두명 다, 완벽하게 순종한 아들들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세번째, 아들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세상에는, 세번째, 아들처럼,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요. 첫째 아들이거나, 둘째 아들만 있습니다. 둘다 다 부족한 아들인 것처럼, 부족한 사람들 뿐입니다. 성경은 이런 부족한 사람들을 '죄인들' 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죄인들 가운데, 이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변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이 둘째 아들은 큰 아들보다, 더 악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면, '싫습니다' 하고는 '포도원 근처에도 오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살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아들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라이프 스타일 이었습니다. 큰아들은 대답이라도 시원시원하게 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누구에게 충고를 들었는지, 갑자기 심경에 변화를 일으켜, 포도원으로 가서 일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둘째 아들 같은 사람, '이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 라고 3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이 둘째 아들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변화되어, 천국 백성이 되는 사람 말입니다.

서두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변화 된다는 것은 참 힘들 일입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이 아닙니다. 변화는 Chose 가 아니고, Mandatory 입니다. 꼭 변화되어야,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변화되지 않은 큰아들과 변화된 둘째 아들을 통하여,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며, 변화된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먼저 큰 아들이 왜 변화되지 않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큰 아들은 참, 대답은 시원시원하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 시원시원한 대답의 내면에는, '어차피 순종하지 않을 꺼, 대답이라도 잘 하자.' 라는 속내가 들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정말 포도원에 가서 일할 작정으로, '예' 라고 대답했는데, 갑자기 Emergency 가 생겨서, 포도원에 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 대답은 철석같이 해놓고, 포도원에 가지 않았는지,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지만, 오늘 본문 23절을 보시면, 큰아들이 누구냐면, 제사장과 장로들을 가리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제사장과 장로들이, 얼마나, 말뿐이며,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그들은 형식적이었습니다. 예절 바르게, 겉으로 보기에는 순종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예배도 드리고, 금식도 하고, 구제 헌금도 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Yes men'들이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라고 물으면, 네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 하나는 시원시원하게 했던 사람들이, 당시 제사장과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아니오' 의 인생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변해야 한다고 말씀하면, '아니오' 이대로가 좋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아니요' 지금까지 우리가 믿었던 방식이 좋습니다. 자꾸 이래라 저래라 강요하지 마십시요. 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것으로는, 믿는 사람처럼, 포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입신해서 천국에 갔는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있는 교회의 실상들을 보여 주셨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어떤 교회의 예배 드리는 모습을 보여 주셨는데, 다리가 부러진 교인들,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교인들, 목사님도, 마를 때로, 말라 있었고, 성가대가 보이는데, 성가대를 지휘하는 분의 온 몸에 커다란 뱀이 감고 있고, 성가대원들 또한 뱀들에게 묶여 있었다고 해요.

물론, 이것은 영적인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그리스도인들 같지만, 영의 눈으로 보면, 속은, 썩어 있는, 큰아들 같은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겉만 멀쩡한 성도가 아니라, 겉과 속이, 한결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 그럼 두 번째로, 둘째 아들이 변화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보기 원합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둘째 아들은, 처음엔 불순종했던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부탁에, 매몰차게 'No' 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31절에 보시면, 이 둘째 아들 같은 사람들을, 세리와 창기라고 말씀합니다. 당시의 사회에서, 천대와 멸시를 받고,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세리 같은 경우는, 매국노였습니다. 로마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전혀 구원 받지 못 할 것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크리스찬 같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 나오세요.' 라고 하면, '나는 안가요.' 라고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는데도, 아버지의 말은 안중에도 없고, '싫습니다' 라고, 단칼에 잘라 말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그의 행동으로 보아, 어쩌면, 사회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지 모릅니다. 포도원에 가고는 싶은데, 그곳에 가면, 평소 보기 싫었던 사람들도 만나고, 그들이 힐끗 힐끗 자기를 보는 것도 싫고,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가지 않기로 결심한지 도 모릅니다.

 

어쩜 그렇게, 이 둘째 아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비슷합니까? 우리는 다, 이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주님의 세상으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에, 싫다고, 거절도 했었습니다. 교회가면, 보기 싫은 얼굴도 볼 것 같구, 평소에 공부하고는 담쌓고 살았는데, 성경공부 하자고 할 것 같구, 목사는 설교시간에, '이래라, 저래라' 에이, 차라리 혼자 집에서 지내는 것이 속 편하지, 하며, 고집부리고 있었던 사람들이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이렇게 있으면, 안되지, 아버지가 날 기다리고 계시는데, 아버지의 그 음성이 자구 귀에 맴도는 거예요. 그래서 포도원에 가기를 정말 싫지만, 억지로 순종한 것입니다. 변화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 간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어떻해서 나오시게 되었어요? 라고 물으면, '몰라, 내가 그때, 귀신에 씌였었나봐!" 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보았습니다. 귀신에 씐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마음에 감동 주셔서, 하나님의 집을 찾게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아 이번주에, 교회나 한번 나가볼까!' 라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넣어 주시는 생각입니다. 그 생각에 나의 마음이, 'Yes' 라도 '동의' 를 하시면, 그때부터 변화가 시작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는 내가 어떻게 결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맘을 고쳐 먹는 것입니다. 맘을 고쳐먹지 않으면, 변화는 없습니다.

 

옛날 영국에, 양 도둑이 한창이었을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 도둑을 잡으면, 다시는 양 도둑질을 하지 못하도록, 이마에 (Sheep Thief) 의 약자인, S. T. 라는 낙인 찍어 주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두 사람의 양도둑이 잡혀, 이마에 S.T. 라는 글자를 받았습니다. 그 후에, 한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 먼 곳으로 도망 다니며, 더 못된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도망가지 않고, 마을에 사면서, 마을에 일이 생기면, 가서 도와주기도 하고, 슬픔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며칠이고 같이 있어 주기도 하고, 동네의 굳은 일을 다 도맡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에서는 그 사람이 없으면, 살 맛이 없어질 정도로, 그는 그 동네의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보다도, 더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들고, 예전에 그의 이마에 S.T 라는 글자를 찍었던 사람들도 다 죽었습니다.

한번은 이 할아버지가 초등학교에, 일일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습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하는데, 한 아이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마에 어째서 S.T. 라는 글자가 붙어 있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뭐라고 할까, '나는 양도둑이었다' 라고 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옆에 앉아 있던, 아이가 '저건, Saint 의 약자이 St. 야! 할아버지는 우리 마을에 성자거든.'

 

여러분 변화는, 마음먹기 달려 있습니다.

 

예전엔, 양도둑이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 먹은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예요.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마음을 고쳐먹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간단합니다. 마음을 바꿔 변화 받은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고, 변화되는 것이 싫어서, 고집 부리고 살았던 사람들은, 멸망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고쳐먹지 않아,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의 대표는, 가룟유다입니다. 여러분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아서, 지옥에 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팔았더라도, 얼마든지, 회개하고, 돌이키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돌이키면, 마음 고쳐먹으면, 주님께서는 자녀 삼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돌이킬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고집대로 자살해서 죽었습니다.

 

사도행전 1:25절을 보시면,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 곳으로 가면 멸망입니다. 제곳으로 갔다는 것은, 자기 식대로, 결정했다는 거예요. 자기 식대로 믿었다는 거예요. 자기 식대로 살았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주님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해 주었습니다.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라" 말씀합니다.

28절을 보시면, 언제요? "오늘" 당장 가라고 말씀합니다.

 

언젠가, 기회 있을 때, 변화 되겠지요?

이렇게 하지 마시고, 지금 당장, 고쳐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 아들이, 갔던 그 길로, 저와 여러분들이 갈 수 있습니다. 축복 받은 아들은, 대답만 거창하게 하고, 변하지 않은 아들이 아니라, 처음엔, 싫다고, 고집 부렸지만, 그 길이, 천국 가는 길이 아니 것을 깨닫고, 돌이켜, 마음을 고쳐먹은, 둘째 아들입니다.

 

우리 모두, 이 둘째 아들처럼, 변화된 사람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