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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1년 신년 특별새벽기도 여섯째날 - 사사기 7:1-12

by Peartree 2012. 12. 25.

기드온의 용사처럼

사사기 7:1-12

 

여러분 '피타고라스의 정의' 이런말 들어 보셨죠? 이 피타고라스는 고대의 수학자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앞으로 오는 시대의 지배적인 신은 숫자의 신이 될 것이다. 더 많은 숫자의 군대, 더 많은 숫자의 무기, 더 많은 숫자의 돈을 준비한 나라만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당시에는 괜찮은 철학적인 말처럼 들렸을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시면 상식을

벗어난 분이 계시는데,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미디안이라는 나라의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 위기상황이 생긴것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의병을 모집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원한 군사가 3만 2천명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숫자가 너무 많다 좀 돌려보내라' 말씀하신거예요. 아니,

하나님, ! 미디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나 하시는 말씀입니까? 12절 보시면,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말을 타고 쳐들어 온 것이 아니라, 사막땅이라, 낙타를 타고 쳐들어 왔는데, 해변의 모래처럼 셀수없이 많은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3만2천명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

하는자 2만2천명을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나머지 1만명이 남았는데, 그것도 하나님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돌려보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남은 사람이 얼마입니까? 300명이었습니다. 일종의 테스트를 거쳐 최후까지 남게 된 사람이 300명인데,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쓰셔서 이스라엘 구하고, 하나님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테스트를 통해서 마지막까지 남겨두신 300명은 어떠한 사람들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셨는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그들은 자긍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긍하지 않다라는 말은 교만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3만2천의 숫자로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면은요, 당연히 그들은 생각하기를 '피타고라스' 처럼 이 많은 숫자가 우릴 구원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300명 이것은 어림도 없는 숫자거든요,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승리의 원인을 누구에게서 찾게 됩니까? 하나님에게 찾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것,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겠다고 말씀하죠.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연약한 부분을 그대로 남겨 두시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를

교만치 않게 하시려고 하는 까닭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사도바울입니다. 교통이 부편했던 그 당시에 세계를 네바퀴를 돌면서 전 세계를 복음으로 완전히 두바꾸었던 사람, 그에게 치료받은 사람도 많고, 그가 들어가는 도시마다 복음을 듣고 삶이 바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육체의 질병하나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병낫기를 구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린도후서 12장 7절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너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을 쓰시는 답이 나옵니다. 겸손한 사람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1. 두번째로, 300명의 용사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먼저 우리는 이 사람들이 겸손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겸손만 가지고는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는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왜 겸손할 까요?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겸손하죠.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반대로

교만한 사람이죠.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것 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연약함 부족함을 알기에 강하고 능력 많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9절 보십시요.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300명 밖에 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내려가 적진을 치라 명하시죠. 나가 싸워라 이말이 아닙니다. 적진을 치라, 나가서 승리를 얻어라 이말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연약함을 깨닫고 엎드려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간, 그 때 만큼은 가장 강해지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런 말이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게 되는 것은 연약함 때문에 연약해 지는 것이 아니라 연약함을 모르기 때문에 연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고린도후서 12:10절에 이렇게 고백하잖아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1. 세번째는, 그들은 준비에 힘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5, 6절을 보시면, 기드온이 마지막 300명을 추려내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두종류의 사람으로 갈라지게 되죠. 한 그룹은 무릎을 꿇고 편안히 물을 마시고 있었고, 다른 한 그룹, 300명은 무릎은 꿇지 않고 손으로 물을 움켜지고 개처럼 핥아 마셨습니다. 참고로 지금은 전시 상황입니다. 적이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300명은 긴장을 풀지 않고 준비태세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78:70-72절 찾아보겠습니다. (860)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종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 하였도다" 다윗이 본래 뭐하는 사람입니까? 목동이었습니다. 양을 치는 목동, 하나님이 다윗이 양무리를 치는 것을 보니까 양 한 마리와 놀아주고 그들을 돌보고 먹이는 일을 너무 성실하게 잘 하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워셨다는 거에요.

 

오늘 우리의 삶의 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상관이 없어요. 그 작은 일을 주의 일로 알고 주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로 알고 신실하게 긴장의 띠를 풀지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드라마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