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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아벨의 믿음 - 히 11:1-4

by Peartree 2012. 12. 25.

아벨의 믿음

히 11:1-4

 

지난주까지 우리는, 히브리서 6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7,8,9,10장을 스킵하고, 11장으로 넘어 왔습니다. 왜 그냥 넘어 왔냐면요, 우리 성도님들이 이해하기에 좀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너무 지루할 것 같아, 건너 뛰었습니다.

저번에 우리 장로님께서, 레위기를 쓰고 계시는데, '너무 지루하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 히브리서7,8,9,10장을 이해 하려면, 레위기도 좀 알아야 하고, 요즘 우리가 새벽에, 출애굽기의 성막에 대해서, 강해를 하고 있는데, 성막을 좀 알아야 합니다.

 

대신 제가 간략하게, 히브리서, 7,8,9,10장을 말씀을 드리고, 말씀을 전하기 원합니다. 구약 시대에는요,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서, 제사장이 양과 염소와 송아지를 잡아, 그 피로 죄인들의 죄를 대신 씻었습니다. 그러니까, 죄인들이 죽어야 하는데, 대신 짐승이 죽고, 죄인들은 살려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짐승을 잡아, 피를 바르고, 하는 장소가 어디었냐면, 성막이라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으시던 날에, 그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서 갈라져 버렸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냐면, 예전에는 그 휘장 뒤로,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일을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대 제사장이 되시고, '자기 피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혼자서, 다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는 짐승의 피가 더 이상 필요가 없고 예수님의 피로 우리가 죄를 씻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 예수의 피가, 우리 죄를 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건, 로마서 3:25절에, 믿음으로 만 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성경에 '믿음장' 이라 할 수 있는, 히브리서 11장을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통하여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유대인들은요, 아브라함을 가장 존경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의 최초의 조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어떻게 시작합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라고 시작하듯이, 아브라함을 최고로 칩니다. 그리고 이제, 그 다음에 다윗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습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에서 누구를 가장 존경합니까? 저는 노아를 존경하고, 바울을 존경합니다. 천국에 가면, 예수님 다음으로, 노아 할아버지를 가장 먼저, 만나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120년 동안이나, 미친 늙은이 소리를 들어가면서, 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을 수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어떤 비결이라도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분명히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오늘 본무의 6절을 보십시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라고 말씀하며, 바로 다음 7절에 누구를 소개하고 있습니까? 노아 할아버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 오랜 세월, 12년도 아니고, 120년 동안이나, 멸시와 조롱을 당하면서, 방주를 예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멸시와 조롱을 한 달 이라도 견딜 수 있습니까? 한 달이 아니라, 한 번도 그런 조롱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누가 내 비위를 건드리기만 하면, 그 땐, 예수님이건, 믿음이건, 없습니다. 그날로, 교회 안 나오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가지는 않는지요?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을 지키며,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지, 이렇게, 다짐하며 살아도, 사단 마귀에게 미혹되어 떠나는 판국인데, 나를 건드리기만 해봐라, 그땐 교회는 안 나간다' 이런 마음을 먹고 신앙 생활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세상의 로타리 클럽이나, 라이온스 클럽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요? 누구를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영원한 삶을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 나오지 말라고, 등 떠밀어도, 죽어라고 나와야 한다는 거예요. 왜 입니까? 영혼이 살기 위해서요.

그래서 초대 교회 때, 베드로가 이 복음을 전하니까,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찾아와 '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 방법을 알려 주십시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말씀하죠. 그후로 그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엄청난 핍박의 현장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며, 죽어가죠.

 

천국에 가는 길은 이렇게 고난의 길입니다. 다른 거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누가 나를 멸시하고, 조롱하고, 마음에 상처를 준다 할지라도,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그런 것들이 사치였습니다. 그런 것들은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천국에 가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다 넘어 갔습니다. 그들이 사자 굴에 들어가서, 사자에게, '내가 무슨 잘 못을 했냐? 왜 나를 무냐' 라고 따졌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목베임을 당하면서도, '내가 무슨 잘 못을 했냐? 내가 사람을 죽였냐? 도둑질을 했냐?'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인데요.

 

여러분 지금도요. 사자굴에, 안들어가고, 목베임을 당하지 않는 것 뿐이지, 이 영적 전쟁이 더 하다는 거 아십니까? 그런거 따질 시간이 없어요. 그냥 앞만 보고, 좁은 길로 걸러가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막고, 가는 거예요.

 

저는 요즘에, 과연 믿음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저 스스로 에게 많이 던집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시대에, 이렇게 믿는 것이, 과연 예수 믿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눅 18:8절의 말씀대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주님의 말씀이 현실화 되어 가는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의 길은, 그렇게 간단한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구원자로 동의 하는 것만으로,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나를 죽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의 말씀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께서 살아계셔서, 나를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 예수님이 없는 것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내가 진짜,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자신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면, 내 맘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내 맘대로, 먹지도 않고, 내 맘대로 아무데나 가지 않습니다.

 

내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시면, 노아처럼 살게 되는 거예요. 바울 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과 똑 같은 삶을 아닐 지라도, 최소한, 누가 나에게 시험 들을 만한, 말 한마디 하면, 그 정도는 믿음으로 인내하며, 넘어가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인 거예요. 누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도, 믿음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멸시 조롱 당했습니다. 그런데 1주일도 아니고, 그 한번을 가지고, 시험에 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예요.

 

우리는 지금부터, 그런 인내하는 연습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때에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유도 없이, 핍박하고, 멸시하고, 죽이기도 할 텐데, 그땐 어떻게 하시겠습니다. 이 믿음이란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4절부터 보시면, 믿음의 선진들이 나오는데, 그들의 믿음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몇 주동안, 이 16명의 믿음의 경주자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는지,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이 소개하는 믿음의 선진들 중에 처음으로 언급된, 아벨에 대해서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아벨이 하나님께 믿음의 사람이라고 증거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 이라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는지,

 

  1. 첫째로, 아벨의 제사는, 말씀을 들음으로 해서, 생겨난 제사였습니다.

 

창세기 4:3절을 보시면, 가인과 아벨, 이 두 형제가 하나님께 어떻게 제사 드렸는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가인은 농사 하는 자여서,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치는 자이어서, 양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5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은 받으시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셨을 까요?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양을 좋아하시니까, 양을 통하여 피의 제사를 받으신 거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도, 그렇게 틀린 말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의 제사를 받기를 즐겨하십니다. 그러나, 100% 맞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1:11절에보시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하나님께서는 항상 수송아지나, 어린양 같은 짐승의 제사를 즐겨하지는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벨의 제사는,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에 관하여, 자세히 듣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필요로 하시는지를 알고, 그 직업을 택한 데 있습니다.

 

창세기 3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 아담과 엄마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알게 되죠, 그리고 자기들이 벗을 줄 알고, 나뭇잎으로 수치를 가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십니다. 그 가족옷이 양의 가죽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 때부터, 아담과 하와는,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서는 이 양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녀인 가인과 아벨에게 일러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그 말씀을 듣지 않은 거예요. 그러나 아벨을 그래 그렇다면, 누군가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양을 쳐야 하는데, 내가 그 일을 해야지, 하고 양을 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듣고, 흘려 버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듣고, 내것으로 삼아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벨을 전해지는 말씀을 통하여, 최고의 제사를 준비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1. 두번째로, 아벨의 제사는, 마음 중심에서, 드려진 제사였습니다.

 

창세기 4:3절에는 가인의 드린 제물이 나오고, 4절에는 아벨이 드린 제물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제물에 어떤 차이가 있냐면, 드리는 사람의 마음 중심에 차이가 있습니다. 가인은요. 가인의 농사하는 자라, 그냥 땅의 소산으로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양중에 아무거나, 드린 것이 아니라,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습니다. 처음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 드렸습니다. 구별해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따로 떼어 놓은 다음에 드렸다는 거예요.

 

만약에 가인이 땅의 '첫 소산' 으로 제물을 드렸다면, 얘기를 달라졌을 거예요. 그런데 가인은, 구별하지도 않고, 그가 농사한 것 중에, 아무거나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을 하나님께 헌금 할 때, 따로 구별하여 드리라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의미는, 제사입니다.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시간은, 따로 구별해 놓는 거예요. 누구나 바쁘죠, 다들 얼마나 바쁘게 살아갑니까? 그러나, 주일은 구별해 놓아야 합니다. 이 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시간 만큼은, 다른 것이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중심의 예배를 드린다면,4 절에,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열납하시는 것입니다. 열납하신다는 의미는, '히브리말로, 지켜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따로 떼어, 구별하여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요. 여러분이 예배처로 출발 할 때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 보십니다. 그리고 기뻐하세요. 그러나, 건성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은 관심을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가인의 제사처럼요.

 

그러므로 우리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마다, 아벨의 산 제사를 드리는 복있는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1.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삼고 살아가는지, 고백하겠습니다.

     

    아무리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이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것으로 삶속에서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2.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진정,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예배인가, 아니면, 마지 못해 , 시간이 되어서, 드려지는 예배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하셨는데, 그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