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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성숙한 그리스도인 - 히5:12-14

by Peartree 2012. 12. 25.

성숙한 그리스도인

히5:12-14

 

오늘은 '신앙의 기초를 든든히 하자' 라는 제목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예전에 한국에 할렐루야 교회의, 김상복 목사님이, 주일 낮 설교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설교한 적이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예배가 끝난 후에, 성도들은, 우리 목사님이 왜 저러시나, 장로님들이 속을 썩이나, 아니면, 목회가 힘들어서 그런가? 하면서, 여러가지 추측을 했었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이렇게 여러 가지 추측을 하니까, 성도들에게 해명할 겸, 그 다음주에 목사님이, 왜 눈물을 흘렸는지, 말씀을 해 주셨는데, 두 가지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고 해요.

 

하나는, 자기 자신의 영적인 무능함 때문에 흘린 눈물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목회자들이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몇 년을 목회를 했는데도, 변하지 않는 성도들은 보면, 내가 너무 못나서 그런 건 아닌가, 어떤 목사님은, 내가 목사를 하지 말고, 다른 거 해야 하는 사명은 아닌가? 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의심하는 목사님도 있다고 합니다. 아마 이 고민은 하나님 앞에 갈 때가지, 평생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이 목사님이 눈물을 흘린 이유는, '몇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면서도 전혀 영적 변화가 없고, 성장하지 않는, 교인들을 쳐다보며, 그들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는 것입니다.

 

뭐 이런 말이예요. 하나님을 섬기며, 예수를 믿는 다고,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새벽마다 나와서 기도를 하고, 목사는 목이 터져라 설교도 하고, 모두가 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헌금도 하고, 하지만, 이렇게 한 만큼 영적 변화와, 신앙의 성장이 일어나야 하는데, 제자리 걸음이니, 목사인 자신도 불쌍하고, 성도들도 불쌍하고, 그래서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12절을 보시면,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너희가 그렇게 교회를 오래 다니고, 그렇게 많이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었으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 말입니다.좀 오래 다녔으면, 믿음이 약한 사람을, 말씀으로 권면하고, 사랑으로 위로하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요, 그렇구나, 이러한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구나, 하늘의 비밀을 알고, 손을 얹으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도 바울이 목회 할 때도, 이렇게 자라지 않는 성도들이 있었구나?

사도바울이 목회 하는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구나! 그래서 여러분,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요.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맡은 사명 끝까지 감당하는 그런 마음의 제세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지,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도요. 목회 하면서, 결과에 대해, 말한 적도 없고, 낙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있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내가 지금 주님 주신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고 있는가가 바울에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결과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칭찬 하시는 사람은, 2달란트 받으면, 그것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다섯 달란트 받으면, 그 받은 다섯 달란트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칭찬하시지, 왜 요것 밖에 없냐? 라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받은 한 달란트가 , 너무 적다고, 땅에 묻어두는 사람, 그런 교회는, 주님은 그들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씀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 바라 보지 말고, 사람 바라보지 말고, 맡은 사명에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충성 만 하면, 안 되요. 믿음이 자라면서, 충성해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고, 충성하면, 충성하다가, 불평하고, 원망하고, 언젠가는 주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랬습니다. 돈궤를 맡은 가룟유다. 예수님을 비롯하여 장정 12명의 살림을 책임졌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나, 요한이 일을 많이 했을 거리고 알고 있지만, 사실, 안드레나, 가룟유다 같은 제자는, 어떤 일이든지, 항상 했어야 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비서 같은 역할 이었고, 가룟유다는 총무였습니다. 얼마나 분부하고 바쁘게 일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렇게 충성했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이 자라지 않은 가룟유다는, 나중에는 사단의 꾀임에 속아 넘어 가죠.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믿음이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믿음의 장성한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지 본문에서 살펴 보며,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믿음이 자라지 않는 사람은 편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은 먹고,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은 뱉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을 보시면,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라고 말씀합니다.

 

어린 아기들의 특징을 보시면,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먹는 다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음식도, 자기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절대로 안 먹습니다. 억지로 먹이면, 다 토해 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어린 아기를 다루려면, 넘어질가, 깨질가, 아주 조심 조심 다루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혼자 버려두면, 나좀 봐 달라고 보채고 난리를 칩니다. 교회에 안에, 이런 성도가 있다고 오늘, 사도바울은 13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발 하나님의 말씀을, 골고루 섭취하라고 말씀하고 있는거예요. 저는 말씀을 준비 하면서, 누구 들으라고, 타켓을 삼아 준비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다 같이 들어야 하는데, 한 사람을 위해서 말씀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는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말씀을 '이 성도' 가 듣고, 깨달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 때는 있습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제발 듣고, 변화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죠.

 

그런데 성도들은,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 말씀은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닐꺼야, 나에게는 저 말씀이 해당이 안돼', 하면서, 어린 아기 처럼, 말씀을 뱉어내는 성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용서에 대한 말씀을 전하면, 용서 할 것이 별로 없어도, '저 말씀은 나 들으라고 하는 말씀이야,' 하고는 내가 누구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고, 생각해 보는 지혜로운 신자가 있는가 하면, '누구지?, 저 말은, 누구 들으라고 하는거지? 나는 아니고, 혹시 000권사님인가? 아니면, 000장로님, 들으라고 하나?' 이렇게 생각하는 성도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요. 평생 제자리 걸음이예요.

제발 말씀을 나에게 하는 말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을 해도, 다 나에게 해당 되는 말씀이다. 생각하고 받아 먹는 거예요. 그렇게 골고루 섭취해야 건강한 성도가 된다니까요.

 

어떤 성도는, 말씀을 듣고 스폰지 처럼, 흡수하는 성도가 있어요. 그리고 어떤 성도는, 죽은 시체처럼, 전혀 반응을 하지 않는 성도도 있어요. 교회에 다닌지, 10년 20년이 되어도, 10년 전, 20년 전과 비교하면, 그대로인 성도가 있습니다. 어쩜 이렇게, 변화가 없는지, 학교를 20년 다니면, 대학교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는데, 20년 교회를 다니고, 입학 할 때와 똑 같은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마, 너무 답답하니까, 고민 고민하다가, 앞에 할렐루야 교회 김상복 목사님이 눈물을 흘렸을 거예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시면, 사도 바울이 사역하던, 그 당시에도, 지금과 같이, 어떤 성도는 자라지 않고, 매일 그 상태인 성도가 있는가 하면, 어떤 성도는 어른처럼 건강하게 자란 성도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1. 그러면 둘째로, 장성한 성도의 특징을 보시면, 장성한 성도는 단단한 식물을 먹는 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는 선악을 분별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성한 성도는, 단단한 식물 곧, 어떤 말씀이라도, 소화시킨다는 거예요. 목사의 설교에, 상처 받지 않는 다는 거예요. 목사의 설교 뿐 만 아니라, 성도간에도, 서로 권면하고, 때로는 내가 듣지 싫은 소리 할 때도, '나를 위해서 그런 것이지!' 하고, 마음 상하지 않고, 받아 들인다는 것입니다. 사람인지라 내게 쓴 소리 하면 마음이 왜 안 상하겠습니까? 하지만,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장 할 수 있습니다. 마음 상한 다고, '나 교회 안나와!' 하면서, 말씀은 뱉어 버리면,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냥 어린 아이상태로 머무는 것입니다.

 

갓난 아이가 태어났으면, 자라야 정상입니다. 아이가 자라지 않으면, 병들었거나,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는 얼마나 속 상하겠습니까? 쑥쑥 자라야 하는데 말이죠. 성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누가 어떤 말을 해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제발, 어린아이 처럼 섭섭하게 생각하고, 보채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사도바울이 영적으로 자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냐면, …………

14절을 보시면, 선악을 분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기들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눈 앞에 칼을 갖다 대도, 이것이 위험한 것인지 알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만지면, 손을 베이게 되죠. 어른들은 알고 있는데, 아기들은 몰라요. 그래서 제발 다치지 않도록, 성장해야 한다는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분별하여, 다치지 않도록이요.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적으로 어린 아기인 성도는,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니까, 사탄 마귀가 자꾸 건드려 봅니다. 자기들 세상으로 끌고 가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의 눈으로 보면, '저건 아닌데 하며, 여러 가지 말로 권면을 합니다.' 그런데도, 영적인 어린아이는 모른다는 거예요. 자기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을 하면, 아기는 울어 버립니다. 듣기 싫다는 거예요. 사단이 얼마나 감언이설로, 달콤하게 말하겠습니까? 그래서 달콤하게 들리는 말에 의해서, 결국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것이 없습니다. 생명의 떡인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13절의 말씀대로, '의의 말씀' 을 경험해야 합니다. 사실, 목사의 설교보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째로 먹으면, 정말 건강한 성도가 되요. 그런데 우리는 삶이 바쁘다 보니까, 말씀 한구절 볼 시간이 없어요.

 

성경 말씀이야말로, 장성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단단한 음식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것들이 섞이지 않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읽다가 시험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듣다가 시험에 들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요리한 거예요. 단단한 음식을 성도들이 잘 못 먹으니까, 거기에 각종 양념을 섞어 먹기 좋게 만든 것이 설교예요. 그래서 파 싫어 하는 사람, 마늘 싫어 하는 사람은 먹고는 소화가 안돼서,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영적으로 성장 하려면, 단단 음식과도 같은, 말씀을 통째로, 읽고, 묵상하고, 쓰시기도 하시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건강한 성도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 신자가 그 신자 같고, 다 같이 앉아서 예배 드리니까, 누가 장성한 성도인지, 누가 어린아이 같은 성도인지, 눈으로 분간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어려움이 오고, 가정에 어려움이 오고, 자기 삶에, 시험이 닥치면, 그때,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 말씀을 읽지 않은 사람과 꾸준히 말씀의 영양분을 섭취한 사람과, 다릅니다. 어린아이 같은 성도는, 흔들리고 넘어지지만, 장성한 사람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하, 이것 사단의 역사구나' 오늘 15절의 말씀대로, 선악을 구별하여, 더더욱 기도하고, 굳건히 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바라옵기는, 우리 꿈의 성도님들이, 제발, 영적으로 자라가 흔들리지 않는 장성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