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 하리라
행 2:8-11
최근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어느 한 '집사님의 간증' 이 인터넷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잠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나는,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온 시기에 그것을 받아들여서 4대째 이어오고 있는, 신앙의 연조가 깊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4대째' 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 집안은 기독교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는 교회를 다니며, 수많은 설교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알지도 못했고 확신도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다.
'오직 예수를 만나고 그 예수를 구주로 확실히 믿고 고백하는 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고 그대로 따르는 자야 구원을 받는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나는 1999년에, 요즘에는 병도 아닌 병, 결핵에 걸려 병원에 들어가던 중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병원 응급실에서는 다 죽은 시체이니 돌아가 장례 준비나 하라며 내보내려 했으나,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더라도 병원에서 해야겠다고 간곡히 사정하여 입원 허락을 받아냈다. 살아날 가망성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 가족들은 의논을 거쳐 안락사 쪽으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이 아들은 내가 몸만 낳았다" '그 영혼, 그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라고 하면서, '안락사는 안된다' 라고 하시며 반대를 하셨다고 한다.
가족들이 이런 의논을 하고 있을 때, 나의 영혼은 이미 영적 세계를 보고 다니고 있었다. 누워 있는 내 몸에서 갑자가 무언가가 뭉턱 하고 밖으로 쑥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는 벌써 어딘가에 가서, 줄을 섰는데, 수 만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내 오른쪽 귀에 어떤 소리가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그 소리는 듣기에도 무시무시하고 소름이 끼치는, 각 나라의 언어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으로 신음하며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에 기가 질렸고 너무나 무서웠다. 내 몸은 움직일 수 없었고, 꼼짝 없이 그곳으로 향하여 가고 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 눈동자만 굴려서 그곳을 바라보니, 불 구덩이에 떨어진 자들이 달구어진 후라이판 위에서 콩이 튀듯, 펄쩍 펄쩍 튀어 오르며 경악하는 얼굴로, 양팔과 양 다리를 하늘로 향하고 고통스러워했다. 그곳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조차 없는 곳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너무 떨리고 두려웠지만, 도망갈 수도 없었고, 꼼짝할 수도 없었다. 나는 빨리 회개 하고 싶었다. 그러나 육신을 떠난 영은 회개 할 수도, 과거를 다시 돌이킬 수도 없었다.
나는 천국으로 가고 싶었다. 앞을 보니, 어느새 몇 백명 만 남아 있었는데, 그때 한 명이 천국으로 춤을 추며 들어갔다. 순식간에 내 차례가 왔고, 내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니 보잘 것 없는 나는 그 위엄에 놀라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그 분이 내게 무엇인가를 질문하셨고 난 아주 큰 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그 순간 식물인간이었던 내 몸이 펄쩍 뛰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의식이 돌아왔다. 두렵고 떨림으로 나는 깨어난 후 10개월 동안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수만 명 중에 단 두 사람만 천국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내가 본 이모든 것이 몇 십 년을 들고만 다녔던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지금 내 폐는 10% 밖에 남아있지 않고, 목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나는 목숨을 걸고 이 사실을 간증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지금 이분은 둘째 사망을 경험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성경과 상충되는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입니다. 그곳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사람을 불로 소금 치듯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소금을 후라이팬에 복으면, 어떻게 됩니까? 계란 후라이 해 보셨죠. 그때 소금을 치면, 소금이 탁탁 튀깁니다. 그러한 고통이 바로 둘째 사망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서머나 교회를 어떻게 격려하시는지, 세번째 격려에 대해서 살펴보는 날입니다.
첫번째, 격려는요, 예수를 믿는 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의 물건을 팔아주지 않거나, 고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궁핍했습니다. 그런 서머나 성도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내가 다 안다' 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이 말 한마디 듣는 다면, 세상에서 당한 모든 고난은 눈 녹듯이 사라질 거예요. 여러분 ! 주님으로부터 이 말 한마디 듣고 싶으시죠. 마태복음 7:23절은 예수님께서 "도무지 내가 너를 모른다" 라고 말씀하세요. 절대로 이 말을 듣지 않으시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두번째, 격려는요,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격려였습니다. 이 격려에 힘입어, 서머나 성도들은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서머나 교회에서 순교자들이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별명은 '순교하는 교회' 였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교회는 어떤 별명이 붙었으면 좋겠습니까? 제 바램인데, '진리에 목숨건 교회'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저번에 소개를 드린적이 있는데, 인천의 방주교회 목사님, 이분이 대학병원의 잘 나가는 의사였다가, 서른 아홉살에, 이혼하고, 죽을 병에 걸려, 하나님 만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60세가 갓 넘으신 것 같은데, 지금까지 사도바울처럼 혼자 사시는 것 같습니다. 이분이 39세 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해요. 할아버지도 목사고, 아버지, 엄마도 목사고,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 할 것 없이, 집안의 모든 남자는 다 목산데, 이분만 안 믿었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뭐였냐면,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는데,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매일 같이 아버지하고 싸움을 했다고 해요, 평일에도 사택에 찾아와서 삿대질을 해가며, 싸웠다고 해요. 이분이 어렸을 때부터 이런 모습을 보면서, 참, 이상하더라는 거예요. 분명, 이분들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 텐데,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교회가 아니고, 그냥 자기들끼리 모이는 단체다. 하나님 같은 건 없다' 라고 결론 짓고, 방황하다가, 하나님을 만나,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교회에 굳이, 별명을 붙히자면, '싸움하는 교회' 라고 붙일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교회도 아니고, 이분 말씀대로 단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은 서머나 교회를 격려하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세번째 격려에 대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세번째 격려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 할 것을 약속해 주시는 격려였습니다. 격려 중에 최고의 격려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영원한 지옥 불못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한번 죽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번 태어났기 때문에, 한번 죽는 날만 기다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소망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삶.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이 땅에서 하고 싶은대로, 맘대로 사는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어떤 분과 대화를 하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죽음이 한번 더 있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그런게 어디 있냐' 고 하시며, 아예, 믿으려 하지도 않더라구요.
여러분 ! 사망은 두 종류가 있는데, 첫번째 사망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이 죽음은 세상사람 누구에게나 다 찾아옵니다.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누구나 한번은 맞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째 사망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격려처럼,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그냥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들은, 첫째 사망 후에 영원한 형벌을 받아 불과 유황으로 타는 구덩이에 들어가는 둘째 사망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첫째 사망은 피할 수 없지만요, 둘째 사망 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거예요. 피해도 되고 안피해도 되는 옵션이 아닙니다. 영원이 달린 문제입니다. 기회가 두번 온다면, 다행이겠지만, 기회는 이 땅에 있을 때고, 회개도 이땅에 있을 때고, 돌이키는 것도 이땅에 있을 때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면 둘째 사망을 피하게 위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 첫째로, 둘째 사망을 면하려면,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11절에 보시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시록에 보시면, 7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각각이 색깔이 다른 교회였습니다. 처해진 환경도 다르고, 각각의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다 달랐습니다. 어떤 교회는 책망을 하시고, 어떤 교회는 칭찬을 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 같은 경우는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각 다르게 하시는 그 말씀을 교회들은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성령님이 뭐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 우리는 이 질문에 심각하게 한번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교회가 칭찬 받을 만한 것이 한가지라도 있는지? 아마도, 서머나 교회는 성도들이 다 순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중에 순교한 몇몇 사람 보시고, 주님께서 칭찬해 주신 것입니다. 10절에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라고 기록하고 있듯이, 몇사람만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사람들을 보고 계셨어요.
그리고 서머나 교회 성도들 모두가, 다 배고프고, 가난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았을 거예요. 게 중에는 그래도 넉넉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눈여겨 보신곳은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배고픔을 당하고 있는 몇몇 성도들을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 때문에 교회가 칭찬을 받는 거예요. 혹시 지금 말씀을 들으시며, '제가 그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라고 마음에 감동이 오지 않습니까? 아니면, 혹시 '나 말고, 누군가가 그 한 사람이 되겠지,' 라고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이 생각하셨습니까?
여러분 ! 주님은 순교하는 단체를 찾고 계시지 않습니다. 이슬람처럼, 자살특공대를 찾고 계시는 주님이 아닙니다. 주님은,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경건한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충성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거예요. 교회에 그런 한 사람만 있으면, 주님은 그 사람 때문에 칭찬해 주십니다. 교회에 그런 한 사람마저 없다면, 그건 교회가 아니고, 그냥 단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기도제목이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게 해달라' 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몇 명만 있어도, 교회는 절대 약해지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계시록에 보시면,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라고 여러 번 말씀하세요. '제발, 나의 말을 무시하지 말라' 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루를 사시면서,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몇 번 말씀하시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수도 없을 걸요. 정말 수도 없습니다. 한번 내일부터 테스트해보세요. 하루종일 떠오르는 생각 속에,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많습니다. 하라고도, 하지 말라고도 하시고, 기다리라고도 하시고, 참으라고도 하시고, 주라고도 하시고, 아끼라고도 하시고, 기도하라고도 하시고,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님의 말씀을 철저히 무시하고 살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성령을 근심케 말라, 지,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이 세상이나, 오는 세상에도 사함을 얻지 못하리라" 무서운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성령의 음성을 듣기를 거부하고, 귀를 막고 있으면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제발 말씀을 듣는 삶을 사기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 두번째로, 둘째 사망의 해를 면하려면,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2절을 보시면,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기는 자' 라고 하니까,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같지 않습니까? 한국의 이단 사이비 교주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자신들 만이 '이긴자' 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예전에, 박태선, 정명석, 조희성, 씨가 그랬는데, 요즘 대표적으로, 아예 드러내 놓고 자신이 '이긴자' 라고 하는 80세 노인이 있습니다.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라는 할아버지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요, 초등학생이 들어도, 거짓 진리인 것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지금 교세가 수십만이라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거짓 진리에 눈이 가리워, 둘째 사망으로 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긴자' 가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요, '이기는 자' 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과거에 한번 이겼었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이기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이기는 자' 입니다.
그럼 '이기는 자' 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요한일서 5:4절을 보시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이기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누구와 싸워 이겨야 합니까? 세상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 가야지 만이 둘째 사망의 해를 면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좁은 길로 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좁은길의 끝은 천국문입니다. 이기는 자의 끝은, 둘째 사망을 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고 싶지 않습니까? 마가복음 7: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그러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 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길로 가고 싶으십니까? 어떤 문으로 가고 싶으십니까? 이기는 자가 되고 싶으세요, 아니면 지는 자가 되고 싶습니까?
이기는 자가 되고 싶으시면, 좁은길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 넓은 길과 좁은길의 차이점 무엇인지 아십니까? 넓은 길에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는 거예요. 반대로 좁은 길은, 지나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넓은 길로 가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그냥, 나도 그렇게 하면서, 같이 묻어 가면 됩니다. 아, 저 사람, 어느 교회 다니는 사람인데, 내가 알기로 참 신앙이 좋은 분으로 알고 있는데, 술집에 앉아 있네, 에이, 그럼 나도 그렇게 해도 되겠네, 하며 '죽어가는 사람을 기준으로 삼고, 같이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옆사람 기준으로 삼으면 안됩니다. 장로님도 기준이 안되고, 목사도 기준이 될 수가 없습니다. 말씀이 기준이 되야 합니다. 그러므로, 넓은 길로 가게 되면, 신앙의 기준이 말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넓은 길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좁은 길을 가게되면, 사람이 없고, 위험하기 때문에,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옳게 가고 있는 것인지, 두려우니까,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말씀을 보며 고민하게 되요. 혹시나, 옆으로 떨어질까봐, 조심 조심 하며, 한눈 팔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좁은 길입니다.
그러므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누가 알아주지 않고, 고난도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이 좁은길이구나, 생각하시며, 소망을 품고 그길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이 9.11테러 10주년 되는 날입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으로 기억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10주년을 맞아, 교회성장에 대한 리서치 기관인, 바나 그룹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는, 뉴욕 시민들의 신앙의 변화를 분석했습니다.
9.11테러가 발생한 직후에, 교회 출석 인구는 꾸준히 늘었으며,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는 사람도, 5%-10%늘었다고 합니다. '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다' 라고 스스로 밝히는 사람이 9.11전에는 20% 였는데, 지금은 32% 라고 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안좋은 변화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인생을 맘대로 즐기며, 살아가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이지 않습니까? 마지막 때에는, 양과 염소를 완전히 구별하시는 말씀이 현실화 되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환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으시는데, 먼저 믿은 우리가, 넓은 길을, 고집한다면, 지금까지 신앙 생활 한 것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억울해서라도 끝까지 좁은 길로 가 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이 좁은 길을 가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의 세번째 격려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첫번째는, '내가 다 안다' 라고 말씀해 주시고, 두번째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 는 격려였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해 주겠다'는 약속의 격려였습니다. 이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좁은문, 좁은 길로 달려가, 한번 만 이기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천국에 들어 갈 때까지 ,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잊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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