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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이기는 교회 - 계 2:8-11

by Peartree 2012. 12. 25.

이기는 교회

계 2:8-11

 

지난주에 우리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당한 환난을 살펴 보았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순교하는 교회였습니다. 예수이름 때문에, 환난을 당하고, 장사도 되지 않고, 취직도 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배고팠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켰던 교회였습니다.

그렇게 삶의 희망을 끈을 놓고 심은,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이 교회 성도들이 변치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한마디 격려의 말씀이었는데, '내가 안다' 라는 격려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한마디에, 그 동안에 겪었던, 설움과 배고픔은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라고 하는 이 시대가운데, 되는 일도 안되고, 속상한 일만 생기고, 세상사람들로부터는,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이 복도 가져다 주지 않니, 하면서, 멸시를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처럼, 주님으로부터 '내가 다 안다' 이 한마디에 소망을 삼고 오늘도, 좁은 길로 걸어가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참 모습입니다.

 

그럼 오늘은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를 어떻게 격려하고 계시는지, 두번째 격려에 대해서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2) 두번째 격려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고 격려하십니다.

 

10절을 다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지난주에 우리 예수님께서는 "내가 안다" 는 말씀으로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현재 당하고 있던 환난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들의 앞으로 당할 일에 대하여 격려를 해 주시는데, 이 격려는 보통의 격려와는 색다른 아주 특이한 격려였습니다. 격려의 첫마디는 바로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청천 벽력 같은 말씀입니까? 사실 이 시점에 와서는 '너희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그 사면초과의 환난 중에도 신앙을 지킨다고 지금까지 이토록 고생했으니, 정말 수고 많았다. 이제부터는 너희에게 평화시대와 물질 축복으로 내가 보답해 주겠다' 라는 말씀이 나와야 할 법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슨 상급은 고사하고 오히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이 있다' 라고 하시니, 우리가 만약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었다면, 정말 야속하게 들리지 않았겠습니까? 안 그래도 온 서머나 시민들로 들로부터 왕따와 멸시와 핍박을 당하는 것만 해도 서럽고 힘들기 한이 없는데, 예수님께서는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할 것이다' 고 하시니,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거기에서 한 술 더 뜨셨습니다.

 

그저 옥에 갇히기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죽도록 충성하라"고 아예 마지막 코너에까지 밀어붙이신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충성하기 위해서는 너희들 모두가 다 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영어로 하자면 'Be faithful until death' 즉 '죽을 때까지라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을 각오까지 단단히 하고 충성하라.' 는 단호한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환난과 궁핍과 원수의 훼방에 시달리면서도 자랑스럽게 이겨온 서머나 교회 성도들 앞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투옥'과 '순교' 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영락없이 서머나 교회가 망하는 것 같이 보였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서머나 교회가 '완전한 최후승리'를 거두는 길이었습니다. 여러분 순교 당하면, 우리는 '실패했다' 라고 생각하시는데, 그건 세상사람들이나 하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에서, 마귀들은 박장대소하고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피로 인하여,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토록 순교의 피는 실패가 아니라, 승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순교는 사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아무 교회한테나, '죽기까지 충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서머나 교회나 되니까, 요구하신 것입니다. 작은 일 맡겨 주었을 때, 충성하면, 나중에는 큰일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작은 시험부터 제대로 잘 이겨내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죽기까지 충성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교회로서는 이것이 복입니다. 순교하는 것은 못나서 순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감당할 수 있기에, 아무 교회한테 주지 않고, 할 수 있는 교회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스위스의 한 순교자가 장작 더미 위에 맨발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막 불을 질러 화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자기의 화형집행을 감독하던 치안판사를 가까이 오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하오나 판사님의 손을 내 가슴에 얹어 보십시오. 저는 이제 곧 화형을 당할 몸입니다. 만약 저의 심장이 평상시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뛴다면 저의 종교를 믿지 마시고 저의 하나님을 부인하셔도 좋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순교자의 표정이 너무 담담하여서 의아했었는데,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순교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러자 그 순교자의 가슴은 화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침대에 잠자러 가는 사람처럼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치안판사는 너무나 놀라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비범한 힘이 어디서 왔단 말인가. 불신자들에게는 죽음이 불안한 것이요. 두려운 것이며 고통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으나. 이들에게는 고향으로 가는 길이니, 어찌 불안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순교는 성도에게는 영광스러운 길입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에게 이러한 영광스러운 일이 닥치면, 감히 하늘을 바라보고, 순교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아마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순교하면 되지요 뭐!' 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그렇게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서머나 교회 성도처럼, 가난과 핍박과 중상모략을 당해도, 변치 않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순교인 것입니다.

 

작은일부터, 감당할 때, 나중에 큰일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충 예수 믿다가 순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분은, 성도로서 기본적인 것도 하지 않고, 큰일을 맡겨 달라고 기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분에게 일 안 맡겨 주십니다. 기본적인 공 예배 조차 드리지 못하면서, 우리에게 큰일을 맡겨 주십시요. 하면,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기본적인 것부터 잘하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주일성수와 같은 지극히 기본적인 문제를 두고서도 세상과 타협하고 신자의 색깔을 지킬 줄 모르는 교회라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투옥이나 순교와 같이 진짜로 치열한 전투에 내보내실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회적, 경제적 시험 속에서도 '영적 부요함' 을 누릴 줄 아는 서머나교회 이니만큼, 그런 교회의 성도들은 비록 죽음의 시험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충성하고 끝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기대하셨기에 그들을 격려해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이처럼 마귀를 대항하여 싸우는 '전투하는교회' 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향하여 '각자 예수 잘 믿고 골방에서 개인적으로 신앙생활 하다가 나중에 천국에서 다 함께 만나자.' 하시면서 '점조직'으로 성도를 분산시켜 놓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우리는 그의 지체가 되도록 '신앙공동체' 인 교회를 형성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운 목적입니다. 함께 모여서, 군대를 형성하라고요. 서로 싸우지 말고, 도와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라고 모아놓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모이는 교회' 가 되어야만 개인적으로도 신앙에서 탈선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혼자 돌아다니는 병사는 적군의 저격을 받거나 포로가 될 수 있지만, 같이 모여서 부대를 조직하면 군사의 생존율이 높아질 뿐 아니라 적군에 대한 공격력까지 발휘할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한국의 38선에 가시면, GOP 란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38선에서 남쪽으로 2km정도의 철책선 안쪽입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 길로만 다녀야지, 길에서 이탈하면, 언제 지뢰를 밟아 폭발할지 모릅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성도가 교회에서 떨어져 혼자 있으면, 마귀의 공격대상이 됩니다. 언제 채갈지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항하는 '영적 전투 의식'이 완전히 결여된 교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는 그저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기 위한' 친목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슨 '덕스러운 인격'과 '선한 행동'을 배우고 실천하게 해 주는, 차원 높은 교육 단체 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그정도로 알고 있기에, 오늘날의 많은 지상교회들이 '전투태세' 는커녕 아예 '전투의식' 자체부터가 전무한 가운데 오로지 '사랑', '화목', '평안'의 말로 덕지덕지 싸구려 분칠을 하고서 '세상이 예뻐해 주는 교회'가 되겠다고 세상을 향하여 '애교' 를 부리며 '아양'을 떨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교회는 정말이지 '꼴불견의 교회'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치열한 영적전투 현장입니다. 영적전투의 최전선입니다. 사단마귀는 어떻게 해서라도, 한 영혼 실족 시키려고, 가진 꽤를 다 써가며, 훼방할 것입니다. 그보다 더 쉬운 것은 교회를 통째로 넘겨 뜨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수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그저 '사랑 사랑' 외치게 만들기나 하고 말이죠. 보십시요. 교회를 훼방하는 사람들의 자주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사랑이 없다, 교제가 없다, 말합니다. 그저 '사랑이나, 친교' 나 찾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빨 빠진 교회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이 교회는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지 않는다'. 말합니까?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 교회는 목사가 십자가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 교회에 안 나오겠습니다.' 하는 성도는 없습니다. '아니, 우리 목사님은, 왜 회개를 외치지 않지, 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지' 그렇게 말하는 성도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인가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동시에 교회의 힘도 잃어 버리고 권위도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과 잘 어울리는 교회'가 되라고 단 한 번이라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만 해도 그 '일곱 교회' 를 향하여 때로는 칭찬, 때로는 꾸중을 하셨지만 제일 마지막에는 항상 '이기는 자, 이기는 교회'가 되라고 하나같이 명령하셨습니다.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님께서는 그저 '자기네들끼리만 사랑한다고 속닥거리는 교인' 이 아니라 '죽도록 충성하는 군사' 를 찾고 계십니다. '세상에 빌붙어서 겨우 생존하는 찌질한 교회'가 아니라 '원수 마귀를 대적하며 싸워 이기는 멋진 전투교회'가 되라고 명령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너희에게 줄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주에는 서머나 교회의 담임목사의 폴리캅의 순교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2000년 전 사건으로만 여기지 마십시요. 지금도 세계 곳곳에 이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환난의 시대가 오면, 전세계의 하나가 정부가 되고, 종교도 하나의 종교로 통합하고, 하나의 신을 믿으라고 강요할 때가 올것입니다. 그때가 되며는, 폴리캅의 순교이야기가 피부로 와 닫게 될 것입니다.

현재, 북한에는 수십개의 수용소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요덕 수용소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곳' 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정치범과 예수쟁이들을 주로 갇아 두는데, 다른 정치범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는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을 보면, 그 자리에서 총을 쏴 죽인다고 합니다. 하늘을 못보게 하는 이유는, '하늘을 믿는 미친 사람들' 로 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이 죽으면, 죽어서도 하늘을 못 보게 해야 한다면서 죽은 시체도 목을 꺽어 거적에 말아서 산골짜기 나무 밑에 파묻게 하는 규정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수용소의 신자들이, 군사처럼 보이십니까? 우리의 눈으로 전혀 군사처럼 보이지 않죠, 그저 힘없는 죄수들로 보여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탈북자 이순옥씨 증언을 들어보면, 이 분이 김일성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영문도 모른채 이 요덕 수용소에 끌어 간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학력이 좋다보니, 수용소안에서, 생산 지휘와 재정업무를 맡아서 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재정부장 교도관이 이분을 불러 놓고 단단히 교육을 시키는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오늘부터 매일 어떤 공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공장에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만 모여있다. 그 미친 정신병자 놈들은 당과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자들이니, 너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곳에 가야 된다. 그리고 미친 자들에게 절대 눈 길 한 번 마주치지 말아라, 그렇지 않고 네가 그 자들이 믿는 하늘을 믿게 되면, 네 목숨은 여기서 끝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이 수용소에 갇혀 있는 '하늘을 믿는 미친 사람들' 이 사람들, 그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파리목숨이지만, 이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교도관들 보십시요. 물론 그들의 목숨은 이 교도관의 손에 달려 있지만, 영적으로 전혀 굴하지 않는, 이 사람들이야 말로, 주의 군사입니다.

 

지금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그렇습니다. 가난하죠, 먹을거 없죠, 옥에도 갇히고, 그냥 비참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참된 군사다. 끝까지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라고 격려하십니다.

 

제 소원은 우리 꿈의교회가 세상에 묻혀 있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미워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으며, 멸시를 당하며, 예수이름 하나면 족한 교회.

 

요 15:19장의 말씀대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렇게 세상이 미워하면, 손해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7절에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겠다' 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앞에서는 공짜가 없습니다. 반드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갚으시는 하나님인 것을 믿으시고, 오늘도 주의 군사로서, 영적 전투의 최전방에서, 서머나 교회 성도들 처럼, 죽도록 충성하여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