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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이기는 교회 - 계 2:8-11

by Peartree 2012. 12. 25.

이기는 교회

계 2:8-11

 

2차 세계대전 중에 벨기에의 작은 마을이었지만은 여러 개의 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였던 바스통 이란 곳에 미군의 101공수 사단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압도적인 화력을 갖춘 독일군에게 완전 포위를 당하고, 날씨가 악화되어, 보급품마저 끊기게 되고 말았습니다.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사흘째 되던 날에 독일군 사령관이 미군에게 더이상 무모한 싸움을 그만두고 항복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자 101 공수사단의 사단장이었던 맥크린 준장은 딱 한 마디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독일군 사령관에게 보내었는데, 거기에는 'Nut' 이라고 적혔습니다. 경멸, 혐오, 거부, 실망을 나타내는 속어로서, 이 경우에는 '쳇, 웃기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독일군의 항복 여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뜻입니다.

 

맥클린 준장이 독일군 사령관에게 'Nut' 이라는 한마디로 한방 먹여 줬다는 소식이 101공수 부대 사이에 쫙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순식간에 사기가 충천하게 되었습니다. 탄약도 식량도 부족한 가운데, 논 밭에 참호를 파고 밤을 지새우면서, 쉴새 없이 날아드는 독일 군의 포격 앞에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나 마찬가지 였지만, 자기네 사령관의 그 자신감 넘치는 한 마디가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었던 것입니다. 결국 101 공수사단은 그 악조건 속에서 끝까지 바스통을 사수해 내었고, 그 혁혁한 공적으로 전 부대원들이 미 대통령의 표창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대장되신 예수님 역시 우리를 그렇게 격려하고 계시는데, 서머나 교회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게 편지를 쓰셨는데, 그중에 오늘 본문의 서머나 교회는 그들을 완전 포위하고 있던 온갖 사회적 박해와 환란 중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나중에는 순교자들을 내면서까지 끝내 승리함으로서 초대 교회사의 실로 찬란한 승리의 금자탑을 세운 교회였습니다. 이제 우리 꿈의교회도 끝까지 진리를 수호하며, 환란중에 승리함으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듣은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럼 오늘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를 통하여 우리를 어떻게 격려하고 계시는지 오늘 한 가지, 다음주에 한가지, 그 다음주에 한가지 이렇게 한 주에 하나씩, 3주에 걸쳐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듣고, 다음주에 결석하시면, 서머나 교회가 어떤 교회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 드라마는 놓치면, 다음에 재 방송 보시거나,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보시면 되는데, 우리교회는 재방송이 없습니다. 다운 받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주일에, 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드라마를 보실 때, 다음 방송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뭐 때문이지 아세요? 제 경험인데요. 정말 재밌어 지려고 할 때, 끝난다는 것입니다. 사람 약 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 스토리가 너무 궁금 한 거예요. 한 주가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그러나 설교는 그렇게 드라마 처럼 재밌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드라마는 우리 영혼에 도움이 안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살찌우게 만든다는 것을 아시고, 오늘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를 어떻게 격려하고 계시는지 살펴보면서, 그 주님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저와 여러분들을 격려하고 계신다는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첫째로, 주님께서는 '내가 안다' 라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8,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 앞으로 편지를 보내시면서,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안다' 그리고,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알고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안다' 라는 표현은요. 그냥 그 사실을 알고 있다라는 표현이 아닙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다, 내가 잊지 않고 있다 ' 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때가 '기억하고 있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인내하고, 수고하고, 애쓰는 모습을 보시고, 내가 기억하고 있다라고 말씀합니다. 반대로, 계시록 16:19절 보시면,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회개치 아니한 바벨론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는 바벨론에 진노의 대접을 쏟아 부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식으로 기억되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언제가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한 분도 빠짐없이 다 서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록을 펴시며, "내가 기억하고 있다"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의 대한 어떠한 기억을 갖고 있기를 원하십니까?

 

내 맘대로, 내 기분대로 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전혀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나만 위해서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기억한다' 라고 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대로, 어떻게라도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지 고민하며, 그 길로 가려고, 애쓰다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내가 너를 기억한다' 라고 하시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오늘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내가 너를 기억한다. 내가 너를 안다' 이 한마디 때문에 목숨을 걸은 것입니다.

 

서머나는 당시 아시아의 긍지라고 자랑할 만큼, 항구도시로서, 전통적으로 로마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아주 강한 애국적인 도시였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주후 25년경 당시 로마 황제였던, 디베료 가이사가 자신을 위한 신전 건축을 계획했는데, 그때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는 황제신전을 자기도시에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특권이 서머나 시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결과 서머나 시에는 즉시 황제 신전이 건립되었고, 서머나 시민들의 자부심을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서머나교회의 성도들에게는 환난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뿌듯한 긍지를 느끼는 황제의 신상앞에 찾아가 분향을 했지만, 서머나교회 성도들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람의 형상앞에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였던 것입니다. 또한 다른 시민들은 황제를 '주'라고 불렀지만,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주'라는 호칭은 오직 유일하신 예수님께만 붙일 수 있는 존칭이었던 것입니다.

 

서머나교회 성도들의 이러한 결단은 일반시민들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애국심 하나만은 자타가 공인하는 자기네 도시에 그처럼 되먹지 못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심히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기독교인들을 반역적인 도당이라고 낙인을 찍은 것은 아주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사회적인 멸시와 적대감, 이것이 곧 서머나 교회가 당하고 있던 환난이었습니다. 그런 사회적 환난은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경제적인 타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본문의 9절에 나오는 '궁핍' 이란 말을,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전체적으로 저소득층이란 뜻이 아닙니다. 일반 시민들의 이러한 적대감으로 인하여, 크리스찬들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물건을 팔아주지 않았습니다. 크리스찬들은 점점 취직하기도 어렵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문자 그대로 가난하고 패고팠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땅에서는 가진 것이 없지만, 하늘나라에 쌓아 놓은 것이 많다는 말입니다.

 

계시록에 보시면, 말세에 당할 환난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기술하고 있는데, 그중에 한가지가, 이 배고품의 환난입니다. 계 6:6절을 보시면,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값이니까, 50불로 치면, 50불에 밀 한 되 밖에 살수 없는 날이 온다는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먹을게 없어지는 흉년이 와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오늘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마음만은 부자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머나 교회 성도들을 박해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냐면, 자칭 유대인들이라고 합니다. 9절에 보시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박해를 했냐면, '훼방' 했다고 말합니다. 이 단어는 '중상모략' 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즉 기독교인들이 황제를 '주' 라고 부르지 않고, 황제의 신전에서 분향하기를 거부하는 행위는 순전히 종교적 이유 때문이었지만, 그런데 이것이 마치 정치적 반역인 것처럼 모함을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국가적인 박해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요, 옥에 갇히기도 하고, 죽기도 많이 죽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순교하는 교회] 입니다.

역사적으로 초대교회의 순교자의 절반은 서머나 교회에서 나왔습니다. 약 10년에 걸쳐 수 만명이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중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독교의 거장인, 폴리갑, 이그나티우스, 저스틴마터, 같은 분들이 서머나 교회 출신입니다.

 

그중에 사도요한의 제가 폴리캅의 순교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 안에 많은 군중들이 소리를 지르고, 굶주린 사자들이 으르렁거리고 있었습니다. 형 집행관이 서머나 교회의 담임목사인 폴리캅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리스도를 욕하고, 황제에게 절하면 살려주겠다' 라고 말합니다. 그때 폴리캅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서머나 교회 성도들의 신앙상태를 대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86년동안이나 예수를 섬겼으나 그 분은 단 한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나의 주님을 어찌 감히 모른다고 욕하라고 하느냐"

 

참, 되게 별난 교회와 성도들처럼 보입니까? 그저 국가 원수에 대한 예의 표시로, 국민의례 같이 절 한번 하라는데, '뭐 그렇게 끝까지 거부하고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 라고 생각되십니까?

 

'돌아가신 조상님의 사진 앞에 절하는 것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미풍양속인데, 왜, 그 좋은 전통을 꼭 못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느냐' 라고 생각되십니까?

 

'남들은 돌아가면서, 당직 근무를 서는데, 자기 혼자 주일에는 교회에 가야 되기 때문에, 절대로 안 된다' 고 하는 것이 너무나 몰 지각한 태도처럼 보입니까?

 

불신사회는 그런 교회와 성도를 당연히 반역자요,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겠지만, 우리 예수님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들이 바로 나 때문에 그런 환란과 궁핍과 훼방을 당하고 있는 것을, 내가 잘 안다' 라고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아무리 교회와 성도가 이 땅에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환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속마음만을 예수님께서 확실히 알아주신다면, 그런 성도는 실상은 부유한 성도입니다. 그런 교회야 말로, 실상은 부요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처럼 예수님께서 알아주시는 교회가 되기 보다는, 그저 세상이 알아주는 교회가 되려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공산 독재자가 좋아하고, 환영하고, 끌어 안아 주는 목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김정일 하고 악수 한번 하려고, 목사들이 죽을 섰던 적이 과거 10년동안 그랬습니다. 그처럼 우상 숭배자나, 불신자나, 무신론자가 알아주는 교회란, 사실은 사단에게 이미 지고 들어가는 실로, 비참하기 짝이없는 교회인 것은 똑똑히 알아야합니다.

 

참된 교회는 반드시, 세상이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이 요구하는 것 사이에서, 단 한치도 물러 설 줄 모르는 고집쟁이기 교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핍박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꿈의 교회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바른 신앙생활 하면서, 혹시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핍박을 당하게 될 지라도, '내가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 하며, 연약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별나게 예수 믿은 건 아닌가' 하며, 절대로 의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어찌하든지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세상과 결코 타협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똑똑히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알아주시고 기억하고 계시면, 우리는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먼 훗날에 주님 만나는 그날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한마디면, 우리는족한 것입니다.

그날을 소망삼아, 오늘도, 서머나 교회가 같던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 주님께 기억되는 성도님들과 우리 꿈의교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