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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재난이 닥칠 때 - 행27:1-26

by Peartree 2012. 12. 25.

재난이 닥칠 때

행27:1-26

 

지난주에 바울이 아그립바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 재판에서 바울은 전혀 두려워 하지 않고, 오히려 황제를 전도하는 담대한 모습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재판이 끝났는데, 판결이 무엇이었냐면, 26:30-31절 보시면,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무죄를 선고 받은 것입니다. 여기 보시면, 왕과 총독을 알겠는데, 버니게란 사람, 이 사람이 누구냐면, 바울을 고소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원고였습니다. 이 원고가 바울을 고소해 놓고, 결국에는 사건의 여러 정황을 다 들어보니까, 죄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도 무죄를 선고해버립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바울을 이탈리아 로마로 보내려고 합니다. 무죄를 선고한 다음에 풀어주지 않고, 바울을 로마의 감옥으로 이송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까지 저질러온 범죄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크리스찬들이 가장 많이 무고하게 죽었을 때가 중세시대 입니다.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신실한 크리스찬들이 죽임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였어요. 말씀대로 사는 크리스찬들이, 교황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실한 크리스찬들을 마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카톨릭 교회 안에 마녀 사냥꾼들을 두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얼마나 가혹하게 고문을 하고, 죽였는지 모릅니다. 이들은요. 이 신실한 크리스찬들이 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굴 죽인 것도 아닙니다. 그냥 말씀대로 살려고 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핍박하고 죽였던 거예요.

왜냐하면, 혹시 자기들에게 불 이익이라도 생길 까봐, 그런 것입니다. 혹시 이 크리스찬들을 그냥 두어서, 나중에 카톨릭에 해라도 될까봐, 말살 하려고 했던거예요. 물론 그 배후에는 사단의 세력이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이 무죄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절을 보시면,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배에 태워 로마로 보내려고 합니다. 여기서 '다른 죄수 몇 사람' 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 다른 죄수가 어떤 죄수들 이였냐면, 역사학자 '람세이' 라는 분이 말하길, '이 사람들은 중 죄인으로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맹수와 싸움을 하거나, 사형에 처해질 죄인들' 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이런 사형수들과 함께 로마로 압송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로마로 가는 것이 바울의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네가 로마에도 가야 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가야만 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역사가 그랬고, 믿음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가는 길은 '금의환향' 하는길이 아닙니다. 어렵게 어렵게 가는 길이 그 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백성들이 호산나 찬양하면서, 환영은 해주었지만, 나귀를 타고 가는 초라한 입성이었습니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에 갈 것을 약속해 주셨지만, 바울은 지금 '중 죄인들과' 함께 죄수의 몸으로 입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을 해주시지만,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주시지는 않는 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최고로 좋은 길만이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길이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사님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큰 교회로 쉽게 부임해서 가는 분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고생하는 목사님들은, '하나님께 뭔가 찍혀서 그렇다' 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되는 일마다 잘 되면, '저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야 !' 라고 생각하고, 하는 일이 잘 안되면, '하나님께 뭐 잘못한 것이 있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은 잘 못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 말이 맞다면, 지금 바울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됩니다. 여러분 ! 잘 되는 것 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보시면, 이런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더 견고하게 하시고, 죄수들과 로마로 압송되면서,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로마로 압송되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하고 계신지 본문에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중요성을 알려 주십니다.

 

본문 1절을 보시면, 율리오라는 백부장이 다른 죄수 몇사람과 바울의 호송 책임을 맡고 로마로 출항했습니다. 때는 추운 겨울이었어요. 지중해의 겨울도 무척 추웠나 봅니다. 그래서 8절에 보시면,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 이라는 곳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바울이 10절에 백부장에게 귄고를 합니다. '주님께서 그러시는데,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다' 고 합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좀 더 쉬었다 가는게 좋겠습니다. 라고 권유를 합니다.

그러니까, 11절에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최종 결정권자인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입니다. '죄수인 주제에 말이 많다' 하고 말을 잘라 버린것입니다. 그리고 항해를 무리해서 강행합니다. 한번쯤이라도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면 참으로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우리는 참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 물건을 살까, 저 물건을 살까, 오늘은 집에서 쉴까, 피곤해도 교회를 갈까, 나의 이런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아니면, 기뻐하지 않으실까,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 많은 선택 중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살아 간다면, 인생에 실패는 한번도 없을 것입니다.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번주에 친교하면서, 이규식 집사님의 건강 강의를 들었는데, 우리가 먹는 음식물로도 암을 예방할 수 있고, 고칠 수 있다고, 열강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만약에 하루 하루 식단을, 하나님께서, 짜 주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에 해로운 것은 권하지 않으시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먹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말씀하고 계신지 그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신비적으로 귀에 들리는 거 말고요. 지금 백부장은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말씀은 무엇이라 말하는지, 목사는 무엇이라 말하는지,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은 무엇이라 말씀하는지, 사람들의 말에 기를 기울여야 합니다. 같은 성도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이 나에게 하는 말이면, 감동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 맞아 그 말이 맞아. 그렇게 살아야지, 그런데도 자꾸, 들여오는 말을 거부하고, 듣기 싫어하고, 그러면, 오늘 백부장 율리오처럼, 풍랑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를 72년 동안 다스린 유별난 독재자 루이 14세는, 백성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죽였습니다. 그런 이 루이 14세가 죽으면서, 유언을 합니다. 시체는 황금관에 안치하고, 대성당의 모든 등은 소등하고, 관 앞에 한 자루의 촟불만 관을 비추게 하라고, 유럽 전역에서 왕과 귀족들이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집례를 맡은 사제가 관위에 켜 놓은 촛불을 꺼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리는 죽은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귀를 넓게 여시고, 나에게 하는 말씀을, 성경을 통해서,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듣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두번째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시면,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 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바울은요. 미항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출항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남풍이 순하게 불고 있는 거예요. 남쪽에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항해하기 좋겠습니까, 로마는 지중해 북쪽에 있습니다. 돛만 펴면,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로마에 도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돛을 펴고, 조심조심 해변을 끼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4절 보세요.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태풍을 만나 것입니다. 18절을 보시면,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다 던져버립니다. 20절에도,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출항했다가, 그 뒤에 숨어 있는 태풍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어떤분과 하나님의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의 대해서는 사실, 우주의 먼지 만큼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염려 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모습이 너무 왜곡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몇주전부터 계속 이 말을 하는 것 같은데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냥, 사랑 많으신 하나님, 복만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화 중에, 사랑의 하나님인데, 왜 지옥가게 내버려 두느냐? 이 말을 하는 거예요. 제가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몰라도 너무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분이 그러면서, 그렇게 지옥에 보내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렇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으시려면, 예수님 믿으면 됩니다. 독자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시면서, 천국의 문을 열어놓으셨는데, 그럼 그건 사랑이 아니고, 뭡니까? 라고 하니까, 자꾸 지옥에 왜 보내냐는 거예요. 그래서 본인이 예수 믿고 안 가면 되지 않느냐, 하니까, 옹졸한 하나님이니, 사랑이 없느니,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의 사람들은 두 가지 상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이었고, 하나는 로마의 황제 동상이었습니다. 이 동상 앞에 절하고, 그를 숭배하면 출세길이 열리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면, 체포되거나, 추방당하고, 생명을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결국, 로마는 망하고, 기독교는 2000년을 건재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남풍에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겉으로 포장한 것만 보지 마시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진리를 발견하시고 그 숨어있는 길이 구원의 길인 것을 깨달아 알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어제는 워싱턴 D.C 에 강도 5.9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백악관, 펜타곤 다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뉴스를 보니까, 슈퍼에 물건이 떨여져, 아수라장이 되고, 벽돌도 무너지고, 그랬습니다.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래도 동부에서는 몇십년만의 큰 지진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자연재해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을 의지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어제 지진 사진을 보니까, 지진이 막 진동하고 있어나 봅니다. 그때, 강아지 주인이 강아지를 찍은 거예요. 그런데 그 강아지기 네 발을 하늘을 향하고, 벌렁 누워 있더라구요. 사진이 참 우스웠습니다. 동물들은 위험을 느끼면, 저러는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동물들도 아는 거예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인간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대비는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대비해야 하는 것은, 지금 죽어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믿음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이 없도록 매일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삶 속에서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바울이 탄 배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재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때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요. 25절에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을 믿노라' 이것이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바울은 하늘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전에 겨울 지난 다음에 떠나자고 제안도 했습니다. 실제로 재난이 닥치자, 가지고 있는 물건도 버렸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재난이 점점 심해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피부로 실감할 정도로, 격변이 일어날 수도 있는 시대입니다. 그때를 대비해, 등불을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