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격려하시는 주님 - 행 18:1-11

by Peartree 2012. 12. 25.

격려하시는 주님

행 18:1-11

 

지난주에 바울이 어느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지 기억하십니까? 2004년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 그리이스 아테네, (한글 성경은 아덴) 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신들이 하도 많아, 신상을 만들어 놓고, '알지 못하는 신' 이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신들이 많았던 도시, 여기서 '신' 이란 우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온 우주를 통 털어도 신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미국과 영국이 복 받는 이유도, 영어로 하나님을 'God' 이라고 쓰는데 'G' 를 대문자로 쓰고, 나머지 잡신들도 같은 'god'를 사용하지만, 소문자 'g' 로 씁니다. 세상의 잡신들은 많지만, 오로지 하나님만 이 '살아계신 신' 이라고 같은 단어인데도 구분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아테네에서는 '십자가의 복음'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너희 신이 진짜냐, 나의 신이 진짜냐? 이 논쟁만 하다가, 떠났습니다. 그래서, 전도하기 정말 힘든 사람은, 개똥철학으로 꽉찬 사람이란 것을 지난번 말씀을 통하여 확인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사도바울이, 그 철학의 도시,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전도하러 왔습니다. 고린도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타락의 도시,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 당시에 세상적으로 향락에 젖어 사는 사람을 일컬어 '그사람 참, 고린도 사람 같다' 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향락의 도시였습니다. 이런 도시에 오늘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바울을 이 도시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생각 같아선, 이런 도시는, 하나님께서 진노를 내리셔야 마땅한데, 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구약 성경 요나서를 읽어보시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 하였는데,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폭풍을 만나고, 배가 파선하고, 큰 물고기 뱃속까지 들어갔다가, 간신히 살아서, 결국에는 니느웨로 가게 되죠. 그리고, 니느웨에 가서 몇 마디 외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성읍 사람들이 모두가 재를 쓰고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12만명이나요. 그렇게 니느웨성이 쉽게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게 될 줄을 꿈에도 생각 못했던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왜 가지 않으려 했나면, 그런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을 다 지옥으로 가게 복음을 듣게 해서는 안된다는 거였습니다. 사람의 생각이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곳에도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시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오늘 고린도라는 도시도 니느웨 못지 않은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이도시에 오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요나가 니느웨에 가고 싶지 않은 것 처럼 말이죠. 지금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목사들도 마찬가지 예요. 같은 교회 식구들끼리는 즐겁습니다. 자주 만나고 싶어요. 그런데 불신자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왠지,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찬들이 넘어야 할 산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니느웨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셨던 하나님은, 고린도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고린도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 있는 불신자들도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고린도에 보내서, 그곳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게 만드시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은 들을 귀 있는 사람들은 남겨 놓으셨습니다.

'남은자' 영어로 하면 'Remnant' 라고 하는데, 무슨 뜻이냐면, 복음을 전하면, 그 복음을 듣고, 쉽게 돌아 올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다보면, 또는 예수 믿게된 동기를 듣다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게, 그렇게 예수를 믿지 않으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변화되었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 영혼을 찾으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죽는 순간까지, 예수님을 거절하고 그냥 죽음을 맞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은 죽음의 순간에, 이대로 죽을 순 없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 크리스찬 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세요.

오늘 본문 8절을 보십시요.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지금까지 바울이 가는 도시마다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어디입니까? 유대인의 회당이었습니다. 바울이 회당에는 익숙한 사람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는데,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회당장'이 예수를 영접하게 되죠. 고린도에서는 회당장이 '남은자' 'Remnant' 였습니다. 또 있습니다. 8절 계속해서 읽어보시면,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복음을 듣고 주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라도 끊이없이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최고의 성자라고 일컫는, 성 프란시스가 하루는 제자에게 "강 건너 마을에 설교 하러 가자" 고 하며, 아침일찍 수도원을 떠나 그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들을 길을 가던 중에 어떤 거지를 만났습니다. 프란시스는 그가 거지가 된 사연을 들어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 다음 밭에서 일하는 농부를 만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을에 도착해서 가게 주인과 한참동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어울려 함께 놀이를 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수도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행했던 제자가 크게 실망한 얼굴로, 왜 하루종일 시간만 낭비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성프란시스는 "오늘 우리가 만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람들이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복음을 듣기에 최고의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언제 사람들 모아놓고 설교합니까?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사람은 더 적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그 안에는 들을 귀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주어진 상황가운데,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두번째로,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다 보면, 제일 낙심이 되는 것이, 언젠가 하면, 신자를 한 명도 얻지 못했을 때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전도하다가 핍박을 받으면, 더욱 강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그래왔습니다. 배고 품도 달게 받습니다. 바울은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면서, 한번도 좌절 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일 낙심이 될 때는 그렇게 복음을 전했는데, 한 명도 구원하지 못했을 때는 많이 낙심이 됩니다.

지난주 바울이 아테네 선교 할 때, 몇명을 구원했습니까? Nobody 아무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철학과 종교의 도시라 그런지, 바울이 그렇게 철학, 문학, 심리학, 수사학 등등….. 모든 학문을 총 동원해,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단 한명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9-10절을 보시면, 주님께서 밤에 환상 중에 바울에게 나타나, '이 성에 내 백성이 많이 있다' 고 하시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마구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 고린도에서 수많은 사람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용기를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정말 잠잠하지 않고, 전도하게 되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되는데, 바울이 전도가 너무 신이 났던지, 11절에 "1년 6개월" 을 그들과 함께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브리스길라가 , '아 ! 이 노총각이 눈치도 없이 우리집에 1년 반이나 얹혀 살어, 처음부터 들이지 말걸' 그랬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상관하지 않고, 참, 오래 얹혀 살았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는, 얼굴에 철면피를 깔았던 거예요.

전도자들에게 최고의 순간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사역속에 주님께서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그 힘으로, 복음을 전할 때, 영혼들이 많이 돌아오면, 그 순간 만큼 가슴벅찬 시간을 없을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죠. 오랫동안, 이웃에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마침내 그 분들이 주께 돌아왔다면, 그 순간이 최고로 가슴벅찬 순간일꺼예요. 오늘 바울은 이런 순간이 자주 찾아 오니까, 고린도 떠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복음전도 한 것입니다.

  1. 세번째는, 동역자를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선교하면서,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면, 가는 도시 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사역할 동역자를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번 고린도 선교에 보내주신 동역자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였습니다. 또 바울의 직업이 천막 만드는 직업이었는데, 이 부부의 직업도 바울과 같은 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일하며, 바울은 그들의 집에 얹혀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을 Open 해서 최초의 고린도교회를 세우는데, 초석이 되게 합니다. 얼마나 헌신적인 사람들이었는지 모릅니다. 한번 로마서 16장 3-4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얼마나 헌신하는 사람들이었는지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르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사실 고린도의 결실은 이렇게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F. F. Bruce 라고 하는 복음주의 신학자는 '바울곁의 사람들' 이란 책에서 '하나님은 항상 사역자에게 도울 수 있는 손길을 허락한다' 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역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 책 마지막 부분에, Bruce는 누가 더 큰 상을 받을지 모른다고 했어요. 우리는 바울이 다른 동역자들 보다 더 큰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바울 선교사역' 이라는 한 단체에서, 저 마다 사역의 역할이 다르고, 섬김의 모습이 다를 뿐이지, 상급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바울을 바울되게 만들었던 분은, 주님이었지만, 옆에서 함께 도와준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같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늘 말씀드리는 거지만, 저 혼자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온 성도가 하나되어, 헌신해야지만, 간신히 한 영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많이 느끼는 것은, 참, 한 영혼 주께 돌아오기가 힘이 드는구나! 교회에 첫 발을 디디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 맞다. 천국과 지옥은 서로 왕래 할 수도 없고,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도 없는 곳인데, 지옥 자식에서, 천국 백성으로 옮겨지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 주께 돌아 오면, 기적입니다. 성경은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 고 했어요.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온 우주를 뛰어 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기적이 다른 것 없습니다. 여러분들 기적을 보기 원하십니까? 기적을 만들기 원하십니까? 복음 전하십시요. 그러면 기적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