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의 헤어밴드와 마리아의 사모함
눅 10:38-42
오늘 이야기는 여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베다니에 엄마 아빠를 일찍 여윈, 세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오빠 이름은 나사로, 언니는 마르다, 그리고 막내 마리아 였습니다. 일전에 오빠 나사로가 죽었었는데, 예수님께서 죽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 나사로를 다시 살려 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고마웠던지,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이 동네로 다시 오시면, 예수님을 우리집에 꼭 초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과 그 일행이 베다니로 다시 왔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과 제자들 모두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적어도, 남자들만 열 네명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나사로, 그리고 열두 제자들은 거실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고, 마르다는 부얶에서 정신없이 칼로 생선 비늘을 다듬고, 밀가루 반죽을 하고, 부침개를 뒤집고, 오징어 볶음, 시금치 무침, 잡채, ………그런데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를 도와줄 사람이라곤 여동생 마리아 뿐인데, 아니 이게 왠 일입니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는거예요. 순간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40절에 보시면,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가, 혹 한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을 거예요. 적어도 '마리아야 ! 네 언니를 좀 도와주고 와서 말씀을 듣지 않으래' 이런 말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어떻게 신앙생활 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두 가지 생각으로 나뉘었을 거예요. '나는 마리아 처럼 신앙생활 해야지' 하는 사람들과, '아니야, 마리아는 너무 얌채다, 그래도 여자라면 마르다 처럼 신앙생활 해야지' 하는 사람.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은, 마리아처럼 신앙생활하기를 소망합니다. 누구도 마르다 처럼 말씀을 제대로 들을 새도 없이, 주방에서 일만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면 오늘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오해하는 몇 가지를 살펴보며,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생활은 정말 무엇인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 먼저, 마르다에 대한 오해를 먼저 풀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비쳐지는, 마르다의 모습은 믿음도 없어 보이고, 말씀과도 거리와 먼 여인처럼 비쳐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부얶에서 음식이나 만드는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성경을 찾아 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0절 보시면,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에 방문했습니다. 그때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는 아주 적극적이고, 활동적이 여성이었습니다. 반대로, 마리아는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정적인 여자 였다는 것입니다.
또 마르다는 믿음도 없고, 말씀을 잘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21절 보시면,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였겠나이다" 얼마나 믿음이 있는 말입니까? 주님과 함께 있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거라는 거예요. 22절에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이제라도 하나님께 구하면 오빠를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이 말입니다. 얼마나 믿음이 있는 여자였는지 모릅니다.
성경적인 지식도 많았습니다. 24절 보시면, "마지막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말합니다. 당시에 부활 신앙을 알고 있을 정도면, 성경을 정말 많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당시에는 아무도 부활에 관한 복음을 알지 못할 때 였습니다.
여러분 이래도 마르다가 일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아닙니다. 마르다는 믿음도 있었고, 말씀도 잘 알았고, 또한 궂은 일 마다 않고 헌신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르다에 대한 오해입니다.
- 다음엔, 마리아에 대한 오해를 풀기 원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들으니까, 상당히 믿음이 있는 여인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좀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마리아는 정적인 여자였습니다.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좀 안좋게 말하면, 게으른 여자였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부얶에서 일하는 것 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아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좀더 배우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왜 마리아가 말씀을 모르냐구요? 성경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우리가 잘 구분하지 못하는 마리아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라아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다니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귀신 들렸던 마리아이고, 오늘 본분에 나오는 마리아는 '몸을 파는 여인' 마리아입니다. 아마도 엄마, 아빠 일찍 여위고, 돈을 벌기 위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말씀을 들을 새도 없었을 거예요. 늦게 나마 예수님을 만나고, 새롭게 변화되고, 말씀을 듣게 되니까, 그 말씀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언니가 부얶에서 혼자 일하는거 알면서도 염치 무릅쓰고,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 있던 것입니다 .
어느 목사님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모님들은 나름대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모님 만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거예요. 분위기가 이상했던지, 누가 뭐라고 말한 사람도 아무도 없었는데, 도둑이 제발 절였던지, 이 사모가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나는 마르다가 아니라 마리아라서 예배드릴 준비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거예요" 하였다고 합니다.
일을 하기 싫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서 예배 준비를 했는지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마리아처럼 되려면,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일 하지 않고 앉아서 예배를 사모한다는 것은 마리아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마리아는 300데나리온, 지금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을 정도로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사모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배의 사모함 없이 예배를 기다리는 사람은 '나는 마리아 같은 사람입니다'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 세번째로, 우리는 누구를 닮아야 하겠습니까?
'마르다의 열심와 마리아의 사모함' 을 모두 닮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시험에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마르다입니다. 누구 때문에 시험에 들었습니까? 마리아 때문에요.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늘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이때 마리아가 마르다좀 도와 줬으면, 그리고 함께, 맛있는 식사를 마친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어떤 분들은 성경을 이렇게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를 꾸짖고, 마리아를 이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가 너무 분주하다고 알려주신 것 뿐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빼앗기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 듣는 좋은 편을 택하였다. 고 알려주신 것 뿐이예요. 지금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를 칭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남자입니다. 아무리 강심장의 남자라 할지라도, 지금 두 자매가 신경전을 벌리고 있는 사이에 끼었습니다. 이 때 말 한마디 잘못하면, 큰일납니다. 눈치를 잘 살피고, 적절한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본전도 못찾습니다.
여기 보시면, 마르다도 이상합니다. 마리아에게 용건이 있으면, 마리아에게 직접가서 '지금 음식을 만드는데, 손이 모자라니까, 나좀 도와 달라고 하면 되는데, 예수님께 와서는 '주여, 지금 나 혼자 주방에서 일하는데, 동생에게 나를 도와 주라고 말씀해 주십시요. 하고 두 자매의 신경전 사이에 예수님을 끼워넣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여자 성도간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성도가 담임목사에게 와서 자기가 말이 맞다고 하고, 이 말을 상대방 성도에게 전달해 달라는 거예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때 중간에서 잘못하면, 큰일 납니다. 저 같으면 말을 전달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봐도, 예수님은 누구 편 들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 예수님은 두여인의 처해진 Fact 만 말씀했습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우리 남자 성도님들, 여자분들이 다투며는, 그 곳에서 되도록이면, 멀어지십시요. 저는 여자 성도들이 다투면은 무섭습니다. 겁이 납니다.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다투는 이유는, 의견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견이 맞지 않는 다는 것은 사람마다 각자 성품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맞다고, 자기 일에만 고집하면, 오늘 마르다와 마리아 처럼 충돌이 생기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소원하기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은 마르다와 마리아 같은 충돌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마르다의 열심과 마리아의 사모함을 다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마르다라고 고집하지 않기 바랍니다. 나는 마리아라고 고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중간에 끼어서 난처한 일이 생긴 것 처럼, 제발 제가 마르다와 마리아 사이에 끼어서, 무서워 떠는 일이 , 제가 목회 하는 동안에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교회는 서로 조심하며, 서로 배려하고, 서로 존중하는 성도님들로 가득차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서로 존중하라고 하니까, 다른 사람 쳐다보는 사람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며, 나를 누가 나를 존중하지 않나 생각하지 마십시요. 마르다가 마리아 쳐다 보다가, 시험에 들었습니다. 항상 내가 먼저, 섬기고,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내가 먼저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십시요. 그러면, 이름과 같이 꿈 같은 꿈의 교회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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