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신 하나님
행 17:16-34
지난주에 우리는 바울과 실라가, 두 지방,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를 살펴 보았습니다. 환경이 비슷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는 도시마다,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유대인의 회당' 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곳에 들러, 유대인 남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헬라인 (이방인)과 여자들이 복음을 받아 들임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베뢰아 를 거쳐 아덴까지 왔습니다. 아덴은 지금의 그리이스 아테네 입니다. 2004년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입니다. 이 아테네는 예술과 웅변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지혜의 본고장으로 불리우기도 하고, 헬라철학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각종 종교와 우상들이 성행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아테네 광장에 우상만 300여개 였고, 기타 신상들이 3만여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에 이런 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테네에서는 사람을 찾기보다는, 신을 찾기가 더 쉽다" 그정도로 우상이 많았다는 거예요.
보통 선교사님들이 선교를 하다보면, 선교하기 참 어려운 곳도 있고, 오히려 쉽게 선교가 잘 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아테네 같은 도시는 선교하기 정말 힘든 도시입니다. 왜냐하면, 잘 난 사람들이 정말 많은 도시가 그곳이었습니다. 이름만 대도 대단한 철학자들의 본거지가 그곳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들에겐 예수님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너무 아는게 많아서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려면, 세상 학문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도, 그것이 예수님을 만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아테네란 도시는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 정치를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경제도 발달했죠, 정치도 발전했죠, 문화도 발전했죠, 종교도 발전한 도시,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이 다 갖추어진 도시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 그 도시는 흑암의 도시였습니다.
이런 도시에 오늘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아테네에서 전도하면서, 어떠한 전략으로 복음을 전했는지, 본문에서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 첫째로, 바울은 하나님이 그들의 우상보다 더 크신 분임을 전했습니다.
1912년 영국에서 어마어마한 배 한척을 건조했습니다. 길이 400 Feets 나 되는 거대한 배였습니다. 100년 전 인데도 나무로 만들지 않고, 거대한 철판을 붙여 만들었습니다. 이 배를 당시에 사람들은 배라기 보다는 '강철로 만든 섬'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름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 '타이탄족' 의 이름을 따서, '타이타닉' 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첫 항해를 시작한지 정확하게 35분후 바다 밑으로 가라 앉았습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도, 사람들이 '하늘 끝까지 쌓자' 고 하면서 하나님께 도전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쌓지 못하게, 언어를 혼잡케 하여서, 흩어 버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고 거대한 무엇인가를 만들어 그것을 섬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금 바울이 아테네에 도착해서 보니까, 말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큰 아테네 신전이 있고, 그 신전 안에 거대한 우상들이 우뚝 우뚝 서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우상 앞에 절하고 있는 사람들을 본거예요. 그래서 18절에 보니까,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바울이 그들에게 이 신들보다 더 크신 하나님에 대해서 전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24-25절 보시면,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절에도 '사람의 손으로 만든 곳에도 계시지 않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큰 신전을 지어도, 그곳에 계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양을 만드시고, 우주를 만드신 분입니다. 건물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바울이 지금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시시한 신전 안에 있는 돌로 깍아 만든 돌 신상이 아니라, 온 우주를 발로 발고 서 계신 엄청난 분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주에도 전도의 전략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는데,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전도 전략 첫 번째는, 크신 하나님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시편에 보시면, 다윗이 이런 표현을 자주 합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 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여러분 이 고백이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해를 보고, 달과 별을 보고, 아무런 생각이 없으신 분들은, 감정이 없으시거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크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이라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 만물을 보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지금 이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전도 할 때,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을 전하십시요. 바울처럼요. 그러면,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게 되어 있습니다. 34절 보십시요.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 두번째로, 그 하나님은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시고,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인걸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우주 밖에 계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크시지만, 너무도 가까이 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27절 보시면,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당시에 신전 안에만 우상이 300개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가 300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22절 보시면,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 많도다" 이들이 얼마나 종교성 많고, 우상을 섬기기를 좋아했던지 23절 보시면,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얼마나 신을 많이 만들었든지, 신을 기껏 만들고는 신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신' 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종교성이 많은 사람들입니까?
이렇게 수많은 신들 가운에, 당시에 에피큐로스 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에피큐로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은, 하나님처럼, 크신 분이라 자기들과 같이 있지 않고, 멀리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을 잘 보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쾌락주의' 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신이 보지 않고 있으니까, 실컷 쾌락을 즐기자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바울이 신전 안에 이런 종류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크시다. 그러나 우리와 떨어져 있지 않고,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라 너무 가까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우리는 함부로, 우리의 입을 열어, 남을 헐 뜻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죄를 짓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전도할 때,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전도 전략 두번째 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면, 예수님을 믿게 되어 있습니다.
- 세번째로,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29절부터 보시면, 바울이 신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29절에, 신은 ' 신은 금이나 은이나 돌 같은 것에, 사람의 기술로, 새겨 만든 것이 신이 아니' 라는 것입니다. 31절에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 진짜 신이다. 그렇게 전하니까, 32절 보시면,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 복음을 듣고 말도 안되는 소리다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복음을 다시 듣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짜 복음을 전하게 되니까, 우상이 만연한 그 도시에도, 역시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진짜 복음을 알아보는 것도 복입니다. 이 진짜 복음은 무엇입니까? '다시 살 수 있는 것' . '부활의 복음' 이 진짜 복음이예요.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우린 이렇게 힘들게 십자가의 길을 갈 이유가 없습니다.
어제는 영락교회 입당예배에서, 저희 교회분은 아닌데, 성도 한 분을 만났습니다. 대화중에 그분이 자기는성령님이 몸에서 살아 역사하는 것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신이 성령이 충만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정말 새롭게 변화되는구나, 생각하구,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냐고 물었습니다 . 두가지를 말씀하는데, 하나는 자기가 점점 젊어지는 것 같다는 거고, 또 다른 하나는, 자녀가 잘 된다는 거예요. 아니 뭐 ! 이게 성령충만한 사람의 변화냐,
말씀을 나누면서,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목사지만, 목사들의 책임이 크구나. 바로 가르쳐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 충만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 하면, 다시 젊어지고, 자녀가 잘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신이 내안에 들어 오셔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성령 충만 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하면,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고, 복음을 전하게 되고,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품도 변화되고, 영혼을 사랑하게 되고….. 이런 것이지, 다시 젊어 지는 것 같고, 자녀가 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성도들이 언제 이 '기복신앙' 에서 벗어 날지…….
성경에서 성령 충만이란 단어가 15번 나옵니다. 세례요한이 성령이 충만 하였다고 기록하며, 광야에서 거지처럼 하고 복음을 전했어요. 베드로가 성령의 충만을 입어, 예루살렘 광장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전하다,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성령충만 했습니다. 바울이 젊어 졌습니까? 아니면 생활이 잘 풀렸습니까?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도, 몸에 생긴 간질병은 주님께 고쳐달라고, 세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이 위대한 인물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충만을 허락하시는 이유의 공통점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을 위해서 성령충만을 허락하셨다는 거예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지금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영혼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첫 열매로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 다 라고 31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꿈의 성도님들은 나가서 복음 전할 실 때, 다른 말 보다는 예수님 전하시는 됩니다. 예수님 만나야 변화되고, 예수님 만나야 소망이 생기죠. 다른 것 전하게 되고, 그것 믿고, 예수 믿으면, 그게 실현이 안되면, 떠납니다.
이분이 저에게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예전에 어느교회 다닐 때는, 하는 일마다 안되고, 잘 안풀렸다고 해요. 그래서 그 때는 교회 다닌 시간만 낭비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낭비 한 것을 아닐 거예요,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을 겁니다' 라고 했더니, 모르는 소리 말라고, 하시고, 하시며 제가 목사인줄 알면서, 자기 교회에 성령이 있으니까, 자기 교회 새벽기도 오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성령님은 어느 교회에만 계신분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믿는 신자들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만든 건물에 하나님 갖혀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은 '신들의 도시'라 불리는 아테네에 복음 전하는 바울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런 지혜와 철학으로 꽉찬 사람들에게 우리는 달리 전할 말이 없습니다. 복음 밖에요. 그런 사람들에게 크신 하나님, 그러나 우리와 너무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다시 살리시고, 천국으로 인도할 하나님이란 걸 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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