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받을 만한 사람들
행 17:1-15
지난주에 바울과실라가 감옥에 들어간 사건을 나누었습니다. 빌립보 지방에 귀신들인 여종, 그러니까, 점치는 무당이 있었는데, 바울의 그 여종에게서 귀신을 내쫓아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여종의 주인들이 그 복채로 수입을 올렸는데, 더 이상 이 여자가 점을 치지 못하게 되니까, 바울과 실라를 심히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과 신라는, 그 안에서 기도하고, 찬송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간섭하심으로 인해, 옥문이 열리고, 수갑도 벗겨지고, 잠이 들었던 간수는, 일어나 죄수들이 도망간줄 알고, 자결하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자결하지 못하게 말리고는, 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 복음이 핵심이 무엇입니까? 유명한 말씀이죠. 16:31절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래서 그 간수와 그의 온 집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고, 침례를 받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바울은 빌립보 지방을 떠나, 본문 1절을 보시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습니다.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는 거리로는 100 마일 떨어진 거리입니다. 상당히 멀었습니다. 장정이 하루에 25마일 걷는다고 한다면, 4흘동안을 걸어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지금, 바울과 실라는 그 전에 빌립보에 많이 고난을 당한 상태라, 심신이 피로했을 거예요. 데살로니가전서 2:2절을 보시면,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고, 연약한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그 힘으로복음을 전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오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라는 두 도시를 전도하게 되는데, 바울의 전도 방법은 무엇이었으며, 그 사역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말씀속에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 첫째로, 바울은 자기와 환경이 비슷한 사람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의 접촉점)
한국에도 요즘, 동호회가 생겨서,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 많은 모임을 갖습니다. 골프 동호회, 낚시 동호회, 이런 모임은 구식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요즘은 수염동호회 (수염을 어떻게 하면 멋있게 잘 기를수 있을까 해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1년에 한번씩 수염 대회도 한다고 그래요) , 마라톤 동호회도 있는데, 이 마라톤 동호회는 평범한 마라톤 동호회가 아닙니다. 괴상한 복장을 하고 달리는 모임입니다. 한번도 마리톤에서 1등을 해본 적이 없어,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싶어서, 괴상한 복장을 하고 달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1등처럼 박수를 쳐준다고 합니다. 이게 너무 재밌어서, 마약처럼 중독된다고 해요. 그래서 주말만 되면, 괴상한 복장하고 달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취미가 같고,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인곳에서 전도하면,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거부감 없이요.
본문 1절을 보시면,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자마자 어디로 향했습니까? 유대인의 회당으로 갔습니다. 10절에도 보시면, 바울이 베뢰아에 도착하자마자 어디로 향했습니까? 유대인의 회당으로 갔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유대인중의 유대인입니다. 그는 유대인 회당에서 살다시피 한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이 무엇을 믿는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면, 아마도 같은 동호회 사람들을 만나는 기분이었을 거예요.
복음은 이렇게 자기와 환경이 비슷한 사람에게 먼저 접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도 쉽게 이해해 주면서 들어주기도 하고, 하며 전도하는 거예요. 이것이 바울의 전도 전략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려면,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있을 때, 그들과 동질의식을 가질 때, 복음은 쉽게 받아들여 지는 것입니다. 고전 9:20-22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 같이, 율법자들에게는 율법자 같이, 약한 사람에게는 약한자 같이. 내가 여럽모양으로 된 것은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카멜리온처럼 바꾸었던 바울,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환경도 적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기 위해서는 '나의 모습' 을 가지고 하면, 거부 반응이 일어나요. 그들의 모습을 하고 접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 두번재로, 바울은 말씀을 강론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2절 하반절 보시면,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강론하다' 라는 말은 헬라어로 '자세하게 설명하다' 또는 '논리적으로 밝히 말하다'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 전도를 하려면, 복음을 밝히 말할 정도로, 어느 정도 성경적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은 누구시며,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예수님께서 왜 죽으셨나, 믿는 사람들의 종말을 어떠하며, 이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것이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핵심은 빼버리고, 그냥 교회 나오면 사람들도 볼 수 있고, 하나님께서 복도 주시고, 자식들이 잘 되고, …. 이렇게 복음을 설명하면, 그러면, 첫 단추부터 잘 못 꿰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해서, 교인 하나를 얻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요. 이 사람에게 복이 오지 않고, 다니는 교회에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자식들도 별로 잘 되는 것 같지 않으면, 언제든지 교회를 떠납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교회에 올 때, 복음이 그냥 복인지 알았고, 복음이 사람들과 교회에서 재미있게 만나는 것인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3절을 보시면, 그리스도 왜 죽으셨는지, 어떻게 살아나셨는지,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네이버 질문 답변 사이트 보시면, 이런 질문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싶습니다. 어떤교회에 출석해야 할까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이 답변한 것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장로교는 장로 때문에 안되고, 감리교는 너무 감독을 해서 안되고, 침례는 침침해서 안되고, … 여러분 이런 것이 복음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교단을 다르지만, 바른 복음을 전하는 곳에 출석하면 됩니다 라고 답하시면, 정답이예요.
그래서 우리 꿈의교회 성도님들은, 전도하실 때, 말씀을 가지고 전도하시기 부탁을 드립니다. 어떤 때는, 저도 저 자신을 보고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불신자들과 대화 할 때, '교회 나오세요' 라는 말은 잘해도,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이 말이 나오지 않는거예요. 상처 받을 까봐. 그래서 더 부드러운 말이 행 16:31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오십시요" 이런 말로 복음을 전하십시요.
- 세번째로, 바울은 열심히 전도하였지만, 듣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도대상은 유대인회당에 있는, 유대인들이었고, 남자들이었습니다. 당시에 회당에는 남자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가면, 우리 여자분들이 차별을 받는 곳이 이 회당이라고 합니다. 순례객들이 회당에 입장하려면, '키파'라고 하는 찐빵모자 같은 것이 입구에 비치되어 있어, 그것을 써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여자분들은 절대 금지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분들 남자들을 우습게 보지 마십시요. 우리 남자들이 이스라엘에 태어났으면, 어디 감히 같이 앉아서 예배를 드립니까,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가지 감사한다고 합니다.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난 것, 종으로 태어나지 않고, 자유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 바울은 회당의 유대인 남자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들도 바울처럼 전도하지는 않습니까? 이왕이면, 사회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교회에 와야하는데, 이왕이면, 잘 사는 사람이 교회 와야 하는데, 이왕이면, 많이 배운사람, 의사, 박사, 교수가 교회에 오면 좋겠는데, 하면서, 그들은 더 선호하는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요.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들을 찾으십니까?
4절 보십시요.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유대인 남자를 전도하려고 했는데, 이 귀한 복음을 누가 받아들입니까? 유대인이 아니라, '헬라인' 우리말로 '이방인' 입니다. 남자를 전도하려고 했는데, '적지 않은 귀부인' 여자분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또 바울이 뵈레아에서도 여전히, 유대인 남자들에게 전도했는데, 12절에 보시면, 헬라의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전도대상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거지도, 감옥에 있는 사람도, 사형수도, 길거리 방황하는 흑인 아저씨 들도 모두 전도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제한 할 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을 저래서 안되고, 이 사람은 이래서 안되고, 하나님은 누구나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한국의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한국에 오기 19년전, 1866년 8월 16일 대동강변으로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언더우드 선교사보다 먼저 조선에 들어왔던 선교사님이 있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입니다. 최초의 선교사지만, 배에서 내리자 마자,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그때, 토마스 선교사님을 참수 했던, 박춘권이란 사람이 '예수 믿으십시요' 라고 서투른 한국말로 외쳤던, 토마스 선교사님의 마지막 이 한마디가, 집에 왔는데도, 귓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선교사님이 죽어가며 던졌던, 성경을 집에 가져와 읽기 시작하며,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투르게 '예수 믿어야 해' 라고 한 그 한마디가, 그 사람을 구원 할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애타게 찾으시는데, 우리가 이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교회 나오면, 잘되, 복받아, 자식들이 잘되, 이런 비본질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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