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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진정한 구원이란? - 고린도전서 1: 18-25

by Peartree 2012. 12. 25.

진정한 구원이란?

고린도전서 1: 18-25

놀부가 죽어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정하는 장소에 왔습니다. 놀부가 이리저리 둘러보니까, 여기저기에 시계가 걸려있는데, 어느 시계는 천천히 가고, 어느 시계는 빨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놀부가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있는 시계들은 왜 이렇게 시간이 각각 다 틀리죠?'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이 시계들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시계인데, 죄를 많이 지으면, 지은 죄만큼 시간이 빨리 가고, 죄를 덜 지으면, 천천히 간단다.' 그 말을 들은 놀부는 자신의 시계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거예요.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제 시계는 왜 안보이나요. 그러자 베드로가, '응 자네 시계는 지금, 요한이 선풍기로 쓰고 있어.'

우리 모두는 한 명도 예외 없이 언젠가는, 놀부처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장엄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부들 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고, 구원받지 못한 백성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어제가 어떤 날이었는지 아십니까? 5월 21일, 토요일.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본부를 두고 있는 '패밀리 라디오' 라는 지역 방송국 설립자 '해롤드 캠핑' 이라는 사람이 'Judgment Day' '심판의 날' 이라고 주장했던 그날이었습니다. 이 날에 진실한2억의 신자들은 하늘로, 들려올라가게 (Rapture) 될 것이고, 나머지는 153일 동안, 지구에서 공포와 혼돈 가운데 고통을 당하다가, 10월 21일이면, 인류는 마침내 종말을 맞이한다고 주장했던 날이었습니다.

어떤 추종자는 평생 모은 재산 14만 달러를 뉴욕의 지하철과 버스정류장에, 심판의 날을 광고하는데, 모두 사용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어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역시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토록 사람들이 또 다른 세상을 동경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영적인 존재이기에, 영원히 사는 그 나라를 동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영적인 세계는,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져 있고, 천국은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이별도 없는 곳이고, 지옥은, 빛도 없고, 물고 없고, 영원히 타는 불만 있는 고통스러운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두 곳중에 한곳으로 가게 되어 있는데,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 믿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구원 얻는 믿음은 무엇이며, 구원 얻지 못하는 믿음은 무엇이지 말씀에서 찾아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구원 얻지 못하는 믿음은, 표적을 구하는 믿음입니다.

22절을 보시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은 수 많은 기적들을 행하고 다니셨습니다. 그러니까,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마지막에는 무기력하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게 되니까,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는 다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했어요. 그들이 보기에 십자가를 진 예수님은 더 이상 그들이 생각하는 구원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면,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십자가 였습니까? 우리의 죄를 대신지신 십자가 였습니다. 그런데도, 당장 눈에 보이는 표적을 보여 달라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기복신앙인' 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먼저 구원받기를 원하셨는데,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찾고 있었다는 거예요. 주님은 우리가 천국 가기를 원하셨는데, 우리는 당장 돈을 달라고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왜 믿습니까? 단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믿습니까? 아니면, 교회 나오면 마음이 편안해서 나옵니까? 이런 것들보다, 우선 해결해야 할 것은 영혼의 구원문제 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 영혼의 구원문제를 너무 등한시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문제를 스킵해버립니다. 그리고는 모두 구원 받았다 치고, 성경공부, 제자훈련, 지역봉사, 등등 하자는 거예요.…일단 구원받았다 치고.

초대 기독교가 생겨난 목적은 단 한가지 였습니다. 구원이었습니다. 초대교회때는 수입에 40%나 되는 세금을 로마에 바쳐야 했습니다. 세금을 내지 못하면,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몰라요. 그런 상황에서도 초대교인들은 생활 문제의 해결 때문에 교회로 모여들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영혼구원의 문제를 안고 왔습니다. 그러므로, 표적을 구하는 믿음, 문제의 해결만을 위한 믿음은, 영혼의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1. 두번째로, 구원 얻지 못하는 믿음은, 지혜를 찾는 믿음입니다.

22절을 보시면,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여기서 지혜는 '사상' 이나 '철학' 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가르칠 스승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덕망있는 사람, 득도한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맹자, 공자, 석자, 마호메트 같은 사람을 찾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그들이 찾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사람에게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사형수에게 우리가 무슨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주님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요. 22-23절에 사도바울이 위대한 선언을 합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그러면서 20절 보십시요.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21절에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시길 기뻐하신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25일, 수요일입니다. 미국에서 25년 동안 한결 같은 인기를 누렸던, 미국 장수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 가 마지막 방송을 합니다. 이 방송은 전세계 105개국에서 방송이 됩니다. 이 '오프라 윈프리 쇼'로 인해 오프라 윈프리는, 재산이 15억 달러로, 미국 연애인 중에 최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 그가 말하면, 그 말이 진리가 될 정도로, 말과 지혜에 능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럴 듯 하지만, 거기에는, 예수님도 없고, 구원의 길도 제시하지 못합니다. 이 여자가 자주 하는 말이,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통로는 아니다" 라는 말입니다. 또 이런 엉뚱한 말을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구원은 우리 안에 있다' 철학적인 말같이 들리지만, 정신병자 같은 말입니다.

이 여자가 말하는 영상을 보면서, 그래, 세상의 학문과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지.

그럼 성경은 어떻게 구원의 길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 지혜로, 철학으로, 사상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복음전도자들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영어 성경은 '전도의 미련한 것'을 ' Preach' 라고 번역했습니다.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2000년 전에, 주님이 하신 방법이고, 초대 교회 때, 베드로가 사용해서, 3000명씩 돌아오게한 방법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제발 , 예배를 반드시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1. 그럼 세번째로, 구원 얻는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8절 보시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십자가의 좁은 길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이란? 주님이 가신 길을 말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눈물 흘리며 갔던 길입니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해서, 앞만 보고, 가야 하는 길입니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구원을 말할 때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좁은길이라고요. 눈물로 가는 길이라고요. 그래서 어린 아이들도,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이 그러한가, 말씀을 묵상하며, 고민했었습니다. 신앙서적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인류는 경제적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인스턴트 식품이 나오게 되고, 디스포져블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볼 새도 없고, 신앙 서적을 읽을 새도 없고, 그러다 보니까, 교회도 간소화 되고, 구원에 관한 가르침도, 일회용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한번 영접 기도 한 것으로,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구원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 지는 것이라면, 사실, 교회는 필요 없을 거예요. 미국의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한번 부흥회를 하면, 기본은 10-20만명이,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이렇게 한번 주님 영접으로 구원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다시는 교회 나가지 않아도 되겠죠. 왜 시간을 들여, 일 주일에 세번씩 모이며, 왜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기도는 뭐하러 합니까? 내 마음대로, 즐기고 싶은 대로 살면 되는데요. 한번 영접으로 구원이 영원한 거라면요. 그런데, 성경은 성도가 가야할 십자가의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궁금해 하실 거예요. 내가 구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요. '진정한 그리스도인' (Real Christians) 인의 저자 촬스 프라이스 (Charles Price) 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환상중에 나타나셔서 천국에 들어온 어떤 평범한 사람의 삶을 영화필름처럼 보여주셨다고 해요.

그의 삶 을 보니까, 그렇게 반듯한 삶을 살았다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여느 사람들과 마찬 가지로, 때로는 죄를 지으며, 때로는 신앙이 나태하기도 하고, 그저 그런 그리스도인의 삶이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유심히 보았느냐' 하시더니, "그에게는 지옥에 있는 사람들과 다른 것이 있다. 그는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죄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울고 또 울었단다" "그는 사탄에게 속아 지은 죄를 밤새도록 눈물로 자복하고 통회하며 지은 죄를 회개하였단다. 그리고 그는 죽었고, 지금 천국에 와있단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십자가의 길' 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넘어지더라도, 뒤돌아 섰을 지라도, 다시 일어나, 툭툭 털고, 주님가신 길 따라가는 것 이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래서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결단하고 그 길을 걷다 혹 십자가의 길에서 벗어나면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짓눌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그의 죄를 보고 그 사람 안에 있는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그를 대신해 중보 하는 것을 그의 영이 보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으면, 하나님이 원치 않는 행동을 하고, 아무런 죄책감이 없으면, 그 안에 성령님이 안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절대로 나이트클럽에 가서 온몸을 불사르게 흔들고 와서 다음날 "아 ! 화끈하게 몸 좀 풀고 왔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번쯤은 그럴 수 있지만, 계속해서, 반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남을 속일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주일에 산으로 들로, 갈 수 없습니다. 한번쯤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반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와 짝하여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성령님이 슬퍼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 구원은 장난이 아닙니다. 구원은 놀이가 아닙니다. 구원은 단순히 몇 마디 말로 끝내버리는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 영혼의 목적지 입니다.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 지금 우리는 구원의 진리가, 흐려지고 있는 시대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우리가 좀 부족해도 되요. 그러나 내가 지금 당장 주님을 만난 다면, 과연 주님께서 두 팔을 벌려, 나를 맞아 주실지, 아니면, 나를 모른다고 하실지, 우리는 이 질문앞에 매일 매일 고민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 고민을 하며, 좁은 길로 가는 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길로, 옷깃을 여미고, 달려가다 보면, 그 길의 끝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