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교회란?
행 7:37-50
아리조나 투산에 와서, 이제 서서히 두번째 여름을 맞을려고 합니다. 지난 여름엔, 더위를 무서워 했는데, 사실 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을 맞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이 있는데, 전갈이 집안에 까지 들어온다는 거예요. 아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전갈이 옷장에 까지 들어오냐고요. 저희 교회에 함모 집사님은 지금까지 집안에서 전갈을 열 몇마리를 잡았다나……뭐라나. 그날 저는 집에 오자마자, 집안 구석 구설 살폈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전갈이 들어올 만한 틈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그런데 엇그제, 밤중에 잠을 청할려고 하는데, 저희 아들이 괴성을 지르는 거예요. 나가봤더니, 전갈은 아닌데, 바퀴벌레가 그렇게 큰 바퀴벌레는 처음봅니다.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저 바퀴벌레가 들어 올 수 있는 틈새면, 분명 전갈도 들어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지금 저와 제 아내의 고민은 이 전갈의 공포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유할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하나님은 참 자상하신 분입니다. 제가 이런 일들을 작년 여름에 한꺼번에 겪었다면, 도망갈 것 같으니까, 한 해에 한 가씩만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내년엔 또 어떤 사실을 알려주실지 기대가 되면서, 내심 걱정이 됩니다.
그러기에 분명 투산은 광야입니다. 물은 없고, 태양은 강하고, 광야에 서식하는 들 짐승들이 많은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오늘 본문 38절을 보시면, 이렇게 투산과 같은 광야에 교회가 있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이름이 '광야교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출애굽 한 다음에, 광야 사막으로 나왔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서,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그져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바라보고, 사는 그들을 향하여, 오늘 성경은 '광야교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광야교회는 어떠한 교회였는지, 그리고 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역사는 무엇인지, 본문에서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 첫째로, 광야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 곧 신자들의 모임이였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도 있을지 몰라요. 목사님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니요. 저는 지금까지 교회가 건물인지 알았습니다. 혹시 그렇게 알고 계셨다면, 이시간 이후부터 바꾸시면 됩니다.
지금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예배드릴 건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예배드릴 천막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오늘은 우리 꿈의교회가 예배장소를 옮긴 후에, 처음으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건물이 팔렸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걱정이 되었습니다. 교회건물을 무리를 해서라도 구입해야 되는 것 아닌지, 아니면, 가까운Park 이라도 물색해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마지막 보루로, 교회 성도들 중에, 거실이 큰 집이라도, 미리 알아봐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도전이 생기는 거예요. '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인간들이 지은 건물에 갇혀 계시지 않으시며, 믿음의 공동체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좋은 기회일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냥, 비를 피하고,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장소만 주십시요. 그리고 그곳에서 모이면, 그 장소가 교회인 것을 저희로 알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장로님과 함께, 남침례교 디렉터를 만나, 교회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 다음에, 인터넷으로는 남침례단에 속한 교회만 빼고, 큰 교회일 것 같은 교회전화번호 3개를 뽑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제일 처음에 담임목사님과 통화해서, 오게된 교회가 바로 이교회 입니다.
그 후에, 아! 예배 장소 찾기 쉽구나, 하고 더 나은 장소를 찾으려고, 몇군데, 찾아 봤지만,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번에, 찾아주신 장소가 최고였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에겐 예전보다 불편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친교 할 때도 번거롭고, 고추장 된장도 피해야 하고, 그러나, 광야교회도 있었는데요. 우린 행복한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김용문 집사님께서, 사진을 멋있게 찍어 신문에 전면 광고를 해서 그런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더 좋은 곳으로 가게되서, 축하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아니, 전세에서 사글세로 가는데, 축하 한다니요. 남의 사정 알지도 못하면서,…그렇게 생각하다가도,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건물이 팔려 다른곳으로 이주하는데도, '축하한다' 라는 말을 들 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초라해지면, 하나님의 영광도 가리워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말 축하할 노릇입니다. 이기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글세면 어떻습니까?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 예수 모신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저는 이번에 이사하며서, 크고 화려한 건물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교회가 아니라,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가면서,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장소에서 예배하는 교회가 진정한 축복을 받은 교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교회에 속한 여러분들 또한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거지만, 우리의 마음만 변치 않는 다면, 하나님은 우릴 통해서 더 큰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 둘째로, 광야교회는 불 완전하지만 배워가는 공동체였습니다.
39절을 보시면,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여" 참으로, 광야교회는, 담임목사인 모세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 41절을 보시면,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도 않는 교회였습니다.
출애굽기 32:5절을 보시면, 이때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찾아보시겠습니다.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라고 공포를 하고, 6절을 보시면,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머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이 광야교회의 아론이라는 부목사님이, '내일은 주일이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고 하면서, 아침일찍 일어나 예배를 드리긴 드렸는데, 그다음에 예배의 감동은 어디론가 간데없고, 먹고 마시고 실컷 놀았습니다. 주일이라 예배 드리지 않자니, 하늘에서 뭔가 날라와 때릴 것 같고, 드리자니, 시간이 아깝고, 그래서 그들은 간단하게 예배드리는 척 하고, 그 다음에는 신나게 놀아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 속지 않으시죠.
7절보시면, "내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의 신앙생활이 썩어서 냄새가 풀풀난다 이소리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42절 하반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재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느냐?" 하나님께서 묻고 계시는 거예요. 너희들 ! 나에게 예배 하다고 하면서, 제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린적이 있느냐? 너희들이 40년동안 한 것은 예배가 아니었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한주에 세번 예배를 드립니다. 일년이면, 150번이고, 10년이면, 1500번을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먼 훗날에, 우리가, 수천번 예배를 드리고 그분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네가 드린 예배가 진짜 예배였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얼마나 억울하겠냐구요 ! 그래서 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내가 이 예배에 은혜를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다. 멋있는 건물에서, 아름다운 찬양과, 감동적인 설교, 그리고, 웅장한 성가대, 예배를 마치고, 깔끔한 식당에서,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 교회문을 나와,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분명 옆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 할겁니다. '오늘 예배는 정말 은혜로왔어, 오늘 예배는 정말 감동적이었어' 스스로 만족하면서 말이예요. 우리교회 찬양단 괜찮지? 목사님 설교 괜찮지? 이건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를 관람한 거예요. 구경한 거예요. 예배는 내 심령을 드려야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린 후에,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을까? 은혜롭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화려한 건물이 아니더라도, 세련된 찬양이 아니더라도, 매끄러운 설교가 아니더라도, 분명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교회에 이런 예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형식만 예배였지, 하나님께서 받으신 예배를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그들을 향하여 여전히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예배에 실패할 때도 있지만, 예배를 구경할 때도 있지만,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배워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불완전 하지만, 배워가는 곳입니다.
- 세번째로, 광야교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신명기 29:5절을 보시면,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교회 성도들의 옷이 떨어지지 않게, 신발이 헤어지지 않게, 기적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40년을 매일 같이 하늘에서 '만나' 를 공급하셔서, 배불리 먹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루라도 인도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불과 몇주전이죠. 지금 이 건물을 들어오려고, 성도님들과 교회를 둘러보는 날이, 팔린 교회 건물의 물건들을 다, 가져가는 날이었습니다. 물건을 가져가려고, 여러대의 트럭이 왔습니다. 건물을 산 사람도 왔고, 판사람도 왔고, 우린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원래 세입자가 마음만은 편한 법인데, 그날은 세입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스미스 목사님은 우리 성도님들이 불쌍하게 보였는지, 위로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역히 보였습니다. 그날 따라 오지 않던 비는 왜그렇게 주룩주룩 많이 오는지…. 그때, 만약, 우리가 갈 건물도 없었더라면, 정말 많이 낙심되고 실망했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맞추어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앞으로 우리 꿈의교회에 이런 광야 같은 일들이 우리 앞에 또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너무 두려워 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너무나 성실하셔서,우리의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 우리를 인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이번 기회에 우리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건물에 계시지 않고, 믿는 신자들의 모임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본문 47절을 보시면,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하여 엄청나고 화려한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48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나는 너희들이 만든 집에 들어가 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49절에 '하늘은 나의 보좌요,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짖겠느냐' 하늘은 나의 의자 밖에 되지 않는다, 땅은 나의 발판이다. 그런데 나를 위하여 너희가 무슨 수로 집을 지을 수 있느냐? 하지만 너희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면, 내가 거기에는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시면, 바다 한가운데 알카트레즈 (Alcatraz) 섬이 있습니다. 예전엔 감옥으로 사용되었었지만,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그 섬에 가면, 옛날 감옥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뜻밖에 것은 가장 중죄수의 감방이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지하골방인줄로 아는데, 샌프란시스코의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는, 그 감옥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밤마다 화려한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을 보면서 그곳으로 가지 못해 발버둥치는 것이, 어떤 고통이나 고문보다, 더 잔인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크고 화려한 건물만 찾지 마십시요. 어쩌면 그곳에 하나님이 안 계실 수도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다가, 광야에서 비로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여러분의 삶이 광야같이 힘든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지는 않았습니까?
혹시 지금 이순간이 광야 같은 삶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지금 이순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순간에 만나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저는 지금 우리 교회가 광야교회라고 믿습니다. 우리 소유로 된 건물이 없어서 광야교회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 니다. 광야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공동체가 광야교회입니다. 불완전 하지만 배워가는 공동체이기에 우리는 광야교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바라보시며, 인도하고, 우리는 그분의 인도함을 받기에 광야교회인 것입니다.
이 광야교회에서, 믿음이 자라고, 행복이 넘치며, 승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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