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이방인
행 10:1-8
앤소니 멜로우 라고 하는 신부님이 쓴 '종교박람회'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 믿은지 얼마 안되는 그리스도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그 사람이 믿지 않는 친구와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가 처음 예수 믿은 그 친구에게 "그래, 자네 요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며?"라고 묻습니다. "그렇게 됐네"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이 배우서, 잘알겠구만." "글세.. 뭐 아는게 별로 없네."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내가 몇 가지만 묻겠네, "그리스도께서 어디서 태어났나?" "모르겠네.." "그러면 몇 살 때 죽었지?" "그것도 모르겠네.." "제자는 몇명이었는가?" "그것도 모르겠네..." 대화가 이쯤 되니까 그 믿지 않는 친구가 예수 믿는다는 친구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그리스도에 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구만. 그래도 예수 믿는 건가? 한심하게 보이누만." 그때에 예수 믿는 친구가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네, 나는 별로 아는 게 없고 배운 것도 없는 것 같으네. 그러나 내가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서 달라진게 있다면,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그걸 알기 시작했고,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에게 변화가 왔네. 내 자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보니, 나 스스로 놀라고 있네. 자네도 알다시피 3년전 까지는 나는 주정뱅이요 빚도 많았고, 가정은 산산조각이 나고, 내가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는 아이와 아내 할 것 없이 온 집안 식구가 나를 무서워했네. 그리고 모두가 나를 반가와 하지 않았네, 그런데 내가 예수 믿고 달라니지까, 모든 사람이 나를 반가와 하네. 그리고 예전엔 몰랐는데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 그 한가지를 배웠네. 그러고 보니까 감사하고, 내가 사는 하루하루의 생이 얼마나 소중한 지 삶 자체가 소중해졌네." 이 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 믿지 않는 친구는 아무 할 말이 없이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의 고백처럼, 이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다운 경건한 삶입니다. 다른 뭐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는 정말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점령하고 있는 그 나라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선교의 원리 중 하나는 부자인 나라이거나 강한 나라에서 가난하고 약한 나라에 선교하는 것이 하나의 원리입니다. 미국 같은 강대한 나라에서 아프리카에 선교를 하면 먹히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선교했기 때문에 먹혔던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아주 못사는 저 아프리카 케냐나, 수단 같은 나라에서, 지금 일본이 잘 살지만, 기독교인구가 거의 전무한 상태인데, 일본에 와서 선교를 한다고 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되겠지만, 사람의 선입견 때문에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로마와 이스라엘이 이런 관계였습니다. 로마가 이스라엘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고넬료는 자기들이 지배하는 나라의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기뜩하지 않습니까? 너무 기뜩하니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환상을 보게 하시고, 결국에는 베드로까지 이 집에 초청해서 온 가족과 친구들까지 불러 부흥회를 하게 만드시죠. 그러면 오늘은 이 고넬료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의 위치로 보나, 출신으로나 보나, 고넬료는 예수 믿기에 악조건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시면, 부자 청년이 재물이 많은 고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근심하여 돌아간 것 처럼, 이사람은 부자였습니다. 당시에 자신들의 가지고 있는 권력을 빼앗기지는 않을까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들보다, 이 사람은 위치로 따지면 더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믿을 만한 여건이 전혀 갖추어 지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벽을 넘어선 것입니다. 위대한 결정을 한 것이죠. 제가 다녔던 모교회에 어떤 남자성도분이 계셨는데, 이분을 전도하려고 저희 어머니가 많이 애를 쓰셨는데, 교회 나가고 싶지 않은 이유중 하나가, 부인이 집사라 기분 나빠서 안 나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유여곡절 끝에 별로 믿음도 없고, 교회에서 하는일도 없고, 교회도 자주 빠지는데, 집사직분을 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에 나와 구원받게 하려고, 그래서 성도님들도 '이 사람이 어떻게 해서 집사냐' 이렇게 따지는 사람 없이 많이 이해를 했습니다. 구원받아야 하니까요. 그러더니 또 교회를 안 나오는 거예요. 이유는 그분 어머니가 권사님이 되셨는데, 우리 엄마가 어떻게 해서 권사냐 될 수 있냐고 기분 나빠서 안 나온다는 거예요. 이런 분은 장로직분을 주어도, 성이 차지 않습니다. 직분은 단지 일하라고 주신 'Title' 이다라는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계급으로 생각하면, 이 분은 끝까지 예수 믿기 힘들것입니다. 그 이후에 목사님이 이분 때문에 힘들어 했습니다. 이 'Position'의 장벽을 넘어선다는 것, 쉽지 않지만, 고넬료는 이 장벽을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Title' 도 버리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 간다는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벽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정복자로서 그 약소민족에 속한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았어요. 비참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이었어요. 대단히 귀한 일을 한 것입니다. 본문의 2절을 보시면,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라고 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4절 보시겠습니다. 4절 중간에 보시면,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 되었으니" 우리가 구제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한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도와주는 것 참, 중요합니다. 야고보서에서도 참 경건은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것' 이라고 말씀합니다. 새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우리가 이웃을 구제한다면, 고넬료를 보시듯,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보고 계실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보시면, '상달했다' 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에 딱 한번 나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출애굽기 2장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심한 고역으로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 한지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에 보시면, 하나님께 상달했으면, 반드시 응답이 온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지 않으면, 응답이 올까요? 안 올까요? 하나님께 상달이 되지 않았으니까, 안오겠죠. 그래서 여러분 기도할 때, '하나님, 저의 기도가 응답되기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는 것 보다 먼저는 '저의 기도가 상달 되기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방법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보시면, 고넬료는 기도만 하지 않고, '기도와 구제'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뭔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비밀을 발견한 것 같지 않습니까? 기도제목에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이 들어 있으면, 상달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교회에 성도들이 많아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 한다면, 왜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가 많으면, 더 힘있게, 사람들을 구제하고, 선교도 하고, 등등등 ……아무 이유없이 기도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나 돈을 많이 벌고 싶을 거예요. 하나님 물질의 복을 주세요 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내가 왜 너에게 물질을 주어야 하는데, 라고 물으시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 이유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합당한 이유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달되는 것입니다. 오늘 고넬료는 기도와 구제를 하면서, 아마 이렇게 기도 하였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이 식민지 땅에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이들을 구제하는데,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물질이 필요합니다.' 라고 기도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부자로 만들어 주셨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5절 보시면, 천사가 고넬료에게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라'고 말하자, 7절에 천사가 떠나자 마자, 고넬료가 집안 하인들 가운데 경건한 사람을 사람을 불러 베드로를 불러오려고 욥바로 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까?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성경에서 가장 최초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이 누구냐면, 노아입니다. 창세기 6:8절 보시면,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겠다라는 그말씀을 믿고, 그 날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방주를 준비했기에 은혜의 날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를 불러오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큰 일을 하실 것 같은 기대감이 있어서, 베드로를 청하니, 24절에 온 가족은 물론, 일가 친척, 친구들까지 은혜를 체험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며,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은 로마로 돌아가서, 로마에 가서 교회를 세우는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일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귀족 의식이나 계급 의식이나 자존심이나 자기 명예를 다 포기하고, 특별히 그는 하나님의 사람, 베드로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이 말씀에서 사마리아는 이방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사도행전 10장에 최초의 이방인인 고넬료와 그 온 가족이 구원받고, 이방인 선교의 문이 열렸습니다. 주님의 예언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넬료은 이방인이었지만,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 믿는데 있어서 장벽들을 넘어서는사람입니다. 자존심의 장벽, 명예의 장벽, 계급의식의 장벽. 그리고 구제하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도와주는 사람. 마지막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이 이런 성공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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