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9일 수요찬양
교회 성장의 원리
행 9 : 20 - 31
비행기가 비행할 때 『마의 11분(11 minutes of crisis)』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비행 중에 가장 위험한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륙할 때의 3분, 착륙할 때의 8분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항공 사고의 74%가 마의 11분 안에 발생한다는 통계를 보아도 이 때가 가장 위험한 시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비행기가 이륙하려면 굉장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행기에 달려 있는 모든 엔진에 불을 붙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 불꽃 하나만 스파크를 일으켜도 비행기가 폭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데에도 이런 비슷한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집중해야하고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갈 때까지 그 조건을 어느정도는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죠.
오늘 본문 31절을 보시면, 이제 초대교회도 바울을 비롯하여, 바나바, 그리고 제자들이 힘을 집중해서, 복음을 전하게 되니까, '수가 더 많아 졌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이와 같이 성장하기 위해서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기를 원하며, 그 안에서 몇 가지 교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첫째로, 초대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나바와 같이 위로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전에는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살기가 등등했던 사울이,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쟁이로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제일 먼저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어떠한 분이셨는지, 또 무슨 말을 하셨는지, 성품은 어떠하셨는지, 바울은 너무 궁금했을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도 잘아는 제자들은 만나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물어보고 싶었을 겁니다. 26절을 보시면,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제자들을 만나서 사귀고 싶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울 만나기를 꺼려하고 두려워 했다는 것입니다. 21절 보시면, 다른 사람들도 믿지 않고 두려워했습니다. '가짜로 그리스도인인 것 처럼 속여서,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낸 다음에 대제사장에게 끌어 가고자 하는 속셈이 아닌가' 라고 사람들이 바울을 의심했습니다.
이때 27절을 보시면, 바나바가 나옵니다. 바나바는 당시에 꾀나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바울이 더 유명해 지지만, 지금은 바울정도야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성도들을 핍박했던 바울은 바나바와는 하늘과 땅차이로 완전 초신자였습니다. 그런 바울을 바나바는 사도들에게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지금 당신들 앞에 서 있는 이 바울은 예전의 바울이 아니라고, 바울을 변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을 바울되게 했던 것은 물론 예수님이지만, 또 다른 숨은 공로자를 말한 다면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이름처럼 위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로, 감동을 주고 격려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나바의 도움으로 사울은 예루살렘을 출입하며 한 교인으로서 떳떳하고 담대한 교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29절을 보시면, 예수의 이름으로 복을 담대히 전하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바나바가 아니었다면, 기독교 역사상 예수님 다음으로 가장 위대했던 인물 바울을 우리는 잃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는 바나바처럼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람은 잃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교회에 위로하는 사람이 많으면, 한번 왔던 방문자는 다시올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위로자가 없고, 냉냉한 바람만 분다면, 다시는 오고싶지 않을 거예요.
우리 모두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아름다운 격려자가 됩시다. 한 사람을 격려하며 세우니까, 그 한 사람이 세상을 뒤집어 엎는 주의 큰 일꾼이 된 것 처럼, 많이도 말고 단 한 사람을 세우십시요. 그러면, 위로를 받은 그 한사람은 , 또 한 사람을 위로하고, 위로 받은 그 한사람은 또 한사람을 세우고, 그렇게 할 때 교회는 성장된다는 것입니다.
- 두번째로, 초대 교회가 성장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안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31절 보시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교회는 핍박을 당하면서도 평안하였다라는 것입니다. 23절 보시면,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니" 바울을 죽이려고 모의를 꾸몄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의 담임목사를 불신자들이 죽이려고 작당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4절에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9절에도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당시의 교회가 얼마나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갔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어지러운데, 교회는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안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발견할 수 있는 진리는, 교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음으로 해서 평안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다 할 때 평안해 지는 것입니다. 핍박 중에서도 바울이 담대히 복음을 전할 때 평안해 졌다는 것입니다. 30절에 보시면, 목숨이 위태한 바울을 누가 보호해 줍니까?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하도 바울을 죽이려고 하니까, 교회 성도들이 바울은 숨겼는데, 다소라는 지역으로 피난시킨 것입니다. 교회성도님들은 목사를 이렇게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목사도 역시 늑대가 와서 양들을 잡아가지나 않을까, 호시탐탐 노리는 사단으로부터 성도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성도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주일날, 저와 제 아내는 마지막 성도를 배웅하고,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가스통을 풀르고 있었고, 제 아내는 교회 안을 정리하려고 들어갔는데, 제 아내가 심상치 않은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것이예요. 그래서 교회 안으로 막 뛰어 들어왔더니, 온 몸에 문신을 하고, 눈에도 귀걸이를 하고, 바지는 반쯤 내려와 있는 한 사람이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도 않습니다. 결국 밖으로 보냈는데, 제 핸드폰을 가지고 간 것 같아요. 아무리 전화를 찾아도 없길래, 전화를 걸어 봤더니, 전화기가 꺼져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꼭 성도들이 없을 때, 이런 일이 생겨요. 그래서 가능하면, 우리 성도들과 같은 시간에 나갈려고 합니다. 저를 여기에 버려두지 마시고, 5분만 기다려 주셔서 저를 보호 주십시요.
교회가 평안해지려면, 목회자는 목회자의 의무를 다하고, 성도는 성도의 의무를 다 할 때, 큰소리나지 않고 평안해 지는 것 같습니다. 교회안에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지는 장소입니다. 각자가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그래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이유는 각자가 있어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멘트로만 건물이 설 수 없습니다. 벽돌로만으로 불가능합니다. 철근 목재 등등 여러가지들이 재료들이 어우러져 든든히 건물이 세워지듯이, 목회자와 성도들 모두가 하나가 될 때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1장 17절에 예수님께서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라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꿈의교회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 세번째로, 초대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본문 31절에 "...주를 경외함과...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영어 버전으로는 "Living in the fear of the Lord" 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움 안에서 살았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노예가 자기 주인에게 대한 공포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감격하여 사랑과 헌신이 담긴 경외심을 말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쓸모 없는 나를 구원하신 그 십자가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낄 때마다 구원의 감격으로 오는 경외심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취미로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모임은 사교적인 모임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어떤 교양 강좌를 들으러 오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섬기도록 하는 영적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출발합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이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신앙은 아름답게 꽃필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의 특징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섬기며 봉사하고 헌신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섬길 때 교회는 성장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징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곧 순종의 생활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은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의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육체적 쾌락을 위해서 유혹하는 유부녀 앞에서 청년 요셉은 코람데요 '하나님 앞에서'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
성도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교회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그 교회는 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세상을 향한 교회의 힘도 강해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투명한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제가 늘 바라는 것이 우리 교회는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교회 성장이 이루어 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단 한사람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큰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조금 더딜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교회가 바르게 성장할 때, 결국에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힘차게 날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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