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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1년 3월 13일 주일예배설교: 신앙을 점검합시다 - 고후 13:5-7

by Peartree 2012. 12. 25.

신앙을 점검합시다.

고후 13:5-7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걸린 총 메달수가 931개 였습니다. 그 중에서 금메달이 302개 였다고 합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저마다 피나는 노력으로 메달을 목에 걸지만, 그 훈련이나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경기의 규칙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 경기의 규칙을 어겨 실격을 당하거나, 퇴장을 당해서 메달권 안에 진입했다가, 메달의 색깔이 바뀌거나, 메달을 따지 못한 사람이 몇 명이었냐면, 378명이었다고 합니다. 무려 1/3 이상의 선수들이 경기의 규칙을 어겼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있어서 훈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엄격한 경기 규칙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영광스런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누구나 학교를 다닙니다. 그러나 누구나 졸업을 하는 것은 아니예요. 학교에서 원하는 학칙대로 공부하고 생활을 한 사람만 졸업이 가능합니다. 누구나 다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을 하는 데에도, 사업윤리가 있고, 규범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이 성공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교회를 다닐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구원받고 성공하는 신앙 인이 되는 아닙니다. 신앙 생활에도 규칙이 있고, 규범이 있고, 윤리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목사님이 기도 하는 중에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이와 똑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내 종아,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아느냐?" 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어요. 주님 가르쳐 주세요" 하자,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데, '신앙생활은 교리가 아니다, 전통이 아니다, 제도가 아니다, 굉장히 화려한 교회의 건물도 아니다, 거창한 박사 가운을 입은 목사의 거룩한 설교도 아니다, 수 천명, 수 만명 모이는 교회도 아니다. 신앙생활은 네 자신이 깨어져서 네 속에 내가 왕이 되서 나와 함께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주님께서 귀가 아플정도로 여러 번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고로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을 교회에 모셔두고, 시간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늘 동행하는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이란 단어는? '신앙' 이란 말과 '생활' 이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신앙은 요한복음 1장 12절의 말씀 그대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주님을 믿고 영접하면,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습니다. 그냥 믿으면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는 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나 후부터는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훨씬 힘들고 어렵습니다.

요즘 한국은 '기독교인들의 수난시대'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독교 리서치 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생활' 모습이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또 분석해 보니까, 우리 한국 사람들의 오래된 유교문화와 토속신앙이 기독교와 접목되면서 '생활면'이 약해 졌다는 것입니다 . 귀신은 바르게 살아라, 거룩하게 살아라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귀신은 정신나간 귀신입니다. 무당한테 가서 물어봐도,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토속신앙과 무속신앙입니다. 거룩을 말하지 않습니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기독교가 겉으로는 믿음 믿음 하지만, 생활이 따라주지 않는 이유가 이런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 사도바울도 우리에게 무시무시한 말을 하면서, 너희가 진짜 신앙인인지, 아니면, 가짜 신앙인인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신앙생활을 진단 할 수 있는지, 몇 가지 팁을 말씀해 주시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는,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점검하기 위해서는, 너희 믿음을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을 보시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말씀합니다. 영어 버전으로 보시면, 'Exam' 이란 단어와 'Test'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네 믿음이 진짜인지, 시험도 쳐보고, 테스트도 해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나의 신앙생활은 이정도면 충분하지 !'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가는 '버리운 자' 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말씀앞에 두렵지 않습니까? 저만 두려운건가요? 아니면,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야, 아마 다른 의미일거야! 라고 스스로 성경을 해석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이 말씀에 다른 뜻은 없습니다. '버리운 자' 에 대해서 성경중에 가장 권위 있는 'King James Bible'을 찾아보니까, 'Reprobate' 라고 번역했습니다. '신에게 버림받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성경을 자기 편리한 대로 외곡하려고 합니다. 성경 말씀은 쓰여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말씀 그대로 내 안에 주님이 없으면, 그러니까,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버리운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씀 앞에 얼마나 두려운지 몰라요. 내가 목사라고 해서 구원 받는다, 라는 말을 성경 어디에도 없잖아요. 지옥에 다녀온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들을 때마다 '목사들도 지옥에 많더라' 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합니다. 들을 때 마다 정신이 바짝 듭니다. 목사라고, 선교사라고 해서 절대로 그냥 봐 주는 법이 없습니다. 주님과 같이 동행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버리운바 됩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너희 안에 계신지, 안 계신지, 시험해보고, 확증해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데, 동행 한 것으로 오해해서 신앙생활 하면 큰일 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유머 시리즈 중에 탤런트 최불암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최불암씨와, 유인촌 두 사람이 미국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각 자동차를 빌려 타고 미국 각 도시를 여행하고 있었는데, 이 미국은 고속도로마다 번호가 붙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10번, 105번, 405번, 605번.. 어느날 최불암씨가 105번 고속도로를 시속 100마일로 달리다가 교통 경찰에게 걸렸습니다. 미국의 고속도로는 65마일 크게는 75마일이 제한 속도입니다. 교통경찰이 "제한속도를 위반했습니다. 면허증을 보여 주세요" 하니까 , 최불암씨가 대꾸를 합니다. "속도위반 이라니요 저는 표시대로 운전했는데요" 하니까, 경찰이 "이 도로는 제한 속도가 65마일입니다." 그 말에 "저는 105마일이 제한 속도인줄 알았는데요" 하니까, "아닙니다. 그건 도로 이름입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최불암씨가 잠깐 망설이더니 하는말 "허허 큰일났네 유인촌 그 친구405번 도로로 들어갔는데..." 웃기느라 만든 유모어입니다만 그러나 뜻하는 바가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바로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지, 바로 점검해 보십시요. 시험해보십시요. 그래야 나중에 버림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두번째로,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점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6절 보시면, 사도바울이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 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즉, 우리가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버리운 자가 아니라는 확신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속하였나, 마귀에게 속하였나, 위치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에게는요, 중간이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 아니면 어둠임니다. 중간은 없어요.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 미지근 하면 토해 내치리라. 마지막에 양과 염소를 가르듯, 천국에 갈자와 지옥의 갈자를 나눌 것입니다. 중간이 없어요. 그래서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레 목사님은, 이 땅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께 속한자가 있고, 마귀에게 속한자가 있을 뿐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마틴로이드 존스 목사님도 이와 유사한 말을 했습니다. '이 땅에는 버림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두 종류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제임스 말라치 제닝스 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기도" 라는 글을 쓰셨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도바울 시대에 지금의 교회를 본다면 통곡할 것입니다. 아무도 진정한 복음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죄의 굴레에서 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는다고 굳게 믿습니다. 어둠속에 살면서도 몇 년전 올린 한 번의 구원의 기도에 의지하여 산다면 당신은 분명히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론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버리운 자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는 당신이 더 이상 죄의 속박에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 위치가 지금 주님과 얼마나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모르면요, 뇌우침도, 깨달음도 없어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어느 지점에 와 있나, 바로 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세번째로,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점검하기 위해서는, 악을 조금도 행치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7절보시면, 사도바울이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악을 조금도 행치 않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이고, 사도바울의 소망이었습니다.

요한3서 1:11절을 보시면,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리라" 고 말합니다. 골로새서 1:21절에도 "악을 행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악을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는 것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할 때,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죄를 적용합니다. 여호수아 7장 21절에 아간이 '시날산의 외투 한벌과 은 이백 세겔 금덩이 하나' 를 훔쳤습니다. 엄청난 전리품 중에 아주 조금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비롯하여 온 가족을 돌로쳐서 불살라 버립니다. 절도죄 인가요. 아니면, 거짓말 한 죄인가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악행입니다.

말라기 1:6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

여러분 제발, 하나님 두려운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자꾸 사랑의 하나님 찾지 마세요. 사랑하니까,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았잖아요.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완성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악행도 눈감아 주시는 사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무서운거 알면 그렇게 하지 못하죠.

일본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전쟁의 소문이, 굶주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죠. 하나님께서 왜 이런 사인을 주십니까? 지옥은 이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곳이기에 이런 것 보고, 두려워 하여 나에게로 돌아오라는 징조로 보여주는데도, 전혀 두려움도 없으면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오늘은 신앙생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많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는 많지 않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상, 신앙생활의 규칙을 지키며, 바른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주신 목사님을 꼽는다면 당연 주기철 목사님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에서 49세의 젊은 나이로 죽기 전에 다섯가지 기도문이 있습니다. 그중에 첫번째 기도문의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무서워 예수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지는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이보다 두려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번 죽어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얻는다면 이보다 즐거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주 목사가 죽는다고 결코 슬퍼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주님 밖의 다른 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 수는 없습니다. 더럽게 사느니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 향한 정절을 지키려 합니다. 나에게는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르르고 백합도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세례요한은 33세, 스데반도 청장년에 뜨거운 피를 뿌렸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나에게는 오로지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