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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1년 3월 6일 주일예배설교: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 행14:8-22

by Peartree 2012. 12. 25.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행14:8-22

 

아리조나주에서 농장을 하고 있는 사무엘이란 분의 집에, 어느날 강한 태풍과 우박이 떨어지면서 그곳을 완전히 덮쳤습니다. 이분이 새벽녘에 얼마나 큰 피해가 났는지 농장을 돌아보는데, 자기가 가꾼 정원이 초토화되어 버렸고 지붕은 군데군데 나가버렸고, 마당은 완전히 쓰레기 파편으로 깔려있고, 닭을 많이 키웠는데 닭장은 날라가 버리고 죽은 닭이 널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엉망이 되고 황폐화된 농장을 망연자실하면서 보고 있는데 무너진 닭장 속에서 뭔가가 꿈틀하면서 움직이는데 보니까 그 장애를 헤치고 수탉 하나가 올라오는데 몸은 물에 젖어 물이 떨어지고 깃털은 빠지고 그러면서 기어코 위로 올라오기에 신기해서 보고 있는데 태양이 떠오르니까 거의 빠진 날개를 퍼득이면서 목청을 돋우면서 꼬끼오~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텐데, 나 부상당했다고 치료해 주기를 바랄텐데 그 장애를 뚫고 올라와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데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본성이구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14장을 보시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쳤는데,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라고 해서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이 옷을 찢으며, 나도 당신들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며, 오직 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니,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못 마땅하게 생각한 유대인들이 멀리서부터 원정을 와서는 바울을 돌로 치고, 죽은 것 같으니까, 성 밖에 던져 버렸습니다. 바울의 제자들은 우리 선생님이 죽었다고 하며 빙 둘러 서있는데, 그때 사도바울이 아리조나의 수탉 처럼 거진 다 죽어가면서도,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시 성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면서 격려 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그의 제자들을 격려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모습이 사도바울의 본성이었습니다. 죽어가면서도 해야 하는 것, 할 것이 그것 밖에 없는 것 그것이 본성입니다. 우리 크리스찬 들에게는 이것을 '사명' 이라고 말합니다.

사명이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사명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사도행전 20: 24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 이라고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명을 알고 있습니까? 한 번 옆사람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사명은 각자 다 다릅니다. 여러분들 스스에게 하나님께 서 말씀해 주시거나, 깨닫게 해 주실 거예요. 누가 그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사명을 발견한 사람' 이라고요.

돼지는 먹는 것이 사명입니다. 개는 짖는 것이 사명이예요. 아리조나 에 방울뱀이 많은데, 이 뱀의 사명은 무는 것이 사명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돼지가 먹지 않고, 개가 짖지 않고 있으면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방울뱀이 건드려도 물지 않고 있으면, 더위를 먹었거나, 잘못된 것입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는 우리 크리스찬들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 않으면, 성도로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리조나의 닭처럼, 바울처럼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지 말씀속에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22절을 보시면, 바울이 거의 초죽음의 상태에서 다시 살아나,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이냐면,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굳게 하였다는 것은 자칫 핍박으로 인해 잊어버릴 것 같은 제자들의 사명을 다시 일깨워 주고, 확실히 붙들도록 하였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제자들에게 또한 현재를 사는 우리 크리스찬들에게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지 몇 가지만 찾아 보겠습니다.

  1. 첫째로,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믿음에 거하여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도 우리 꿈의 교회성도님들에게 반석 같은 굳건한 믿음을 소유하기를 권면합니다. 그 누가 무슨 말을 할지라도, 무슨 유혹을 하고,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 흔들지라도 시험에 들지 말고 믿음을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내 믿음은 내가 지켜야지 남이 지켜주는 게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여러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한다 할지라도 믿음을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내가 주저앉았을 때 일어서는 것을 남들이 도와 줄 수는 있지만 일어서는 것은 내 자신의 몫입니다.

국민일보에 실린 '재밌는교회 이야기' 에, 오늘날 교인들의 유형을 몇 가지로 나누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고양이 신자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신자는 목사가 항상 등을 도닥거려 주어야 하는 신자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덜 보이면 서운한 감정을 여지없이 노출시킵니다.

둘째는, 럭비공 신자가 있습니다. 어느 방황으로 튈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신자입니다. 그래서 이런 교인들과 무슨 일을 하다 보면 언제나 가슴이 조마조마 하다고 합니다.  

셋째는, 목회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신자가 있는데 "고무풍선 신자" 라고 합니다. 바람이 잔뜩 들어 있어 언제 폭발할지 알 수가 없는 신자입니다. 화가 나면 '펑' 터집니다. 

넷째는, 그네 신자라고 합니다. 반드시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주어야만 움직이는 신자들입니다.  

다섯째는, 연같은 신자입니다. 연줄을 붙잡고 있지 않으면 언제 어디로 날아갈지 알 수 가 없습니다. 끈을 놓으면 곧바로 세상 속으로 곤두박질 치는 신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신자들이십니까? 앞에 다섯가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다고 한다면 굳것한 믿음에 서 있는 신자입니다.

요즘 세상처럼 믿음을 지키기 좋은 세상은 없을 거예요. 목숨을 위협할 만한 핍박도 없죠. 배고파서 끼니 걱정하느라, 예수 믿기 보다는 생활이 더 염려되는 시대도 아닙니다. 교회가 멀어서 몇 시간 걸어가는 시대도 아닙니다. 만약 초대교회 성도들이 지금의 우리의 신앙생활을 평가한다면, '너희들 예수 믿는 것 맞냐?"라고 물을 것 같습니다. 너희들이 하는 것이 종교생활이지, 신앙생활이냐? 라고 물을 거예요. 종교생활은 시간있을 때 교회 나오면 되는 것예요. 바쁘면 나오지 않아도 되요. 기도 생활 하지 않아도 되요. 성경을 읽지 않아도 됩니다. 시간 많을 때 교회에 한번 나와서, 얼굴 한번 보이면 되는 거예요. 이것이 종교생활입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그분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 우선입니다. 가정도, 직장도, 사업도 주님이 원하시는 기준에 의해서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예요. 이러한 삶을 살아 드릴 때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교회 직분자들이 새벽예배 마치고, '직분자 세미나' 를 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8명이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고자, 마음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직분,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해야 할 것이 있지만 그중에서 저는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22절의 말씀을 영어버전은 "Remain true"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다른 사람들 다 떠날지라도 너희들 만큼은 네가 있는 그 자리에 남아 있어라' 바울의 제자들에게 부탁한 말씀이 이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1. 두번째로,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환난 없는 신앙 생활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영적인 전쟁과 같습니다. 그래서 악한 사단은 끊임없이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끝이 나는 싸움입니다. 이 땅에 살 동안에는 쉴 세 없이,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오해하는 한가지가 있는데, 신앙 생활을 하면 곧, 만사형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 때문에 축복 받고, 형통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환난도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는 것이예요.
신앙 생활하지만 사업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믿지만 하는 일이 잘 안 풀릴 수도 있습니다. 질병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런 환난이 오지만,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겪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편안하게만 생각하고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사도바울도 22절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여러분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애굽의 왕자였습니다. 왕궁에서 일생을 편히 보낼 수 있는 권리와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 라고 소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세가 왜 그토록 고난 받기를 즐겨했습니까? 다름이 아닙니다. 애굽에서의 생활이 그의 육체를 편케할지는 모르지만은 그것은 죄악의 날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영원한 심판과 멸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당하는 고난에는 가나안 땅, 천국에 대한 약속이 있었기에 그는 환난 중에 기뻐했던 것입니다.

모세에게 사명은 300만이나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사명 감당을 잘했던지, 가나안 땅 앞에 백성들을 인도한 다음에, 자신은 비스가 산에서 죽고, 여호수아에게 바톤을 넘긴 다음에 사명은 끝을 맺었습니다. 이것이 사명 감당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의 인생길과 같은 광야에서, 수 많은 환난이 찾아 오지만, 맡겨진 사명 때문에라도 기뻐하며 통과한 것입니다. 끝가지 달려간 것입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도중하차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환난 중에도 사명을 위해서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1. 세번째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3절에 보시면, 바울이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당시의 장로는 지금의 목사와 같은 직분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장로들이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그들과 함께 금식하고, 기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사명 감당한다는 것은, 훈련하지 않고, 링 위에 올라가는 Boxer와 같습니다. 칼을 갈지 않고, 생선을 만지는 스시맨과 같습니다. 전도서 10장 10절을 보시면,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기도해야 사명감당하기가 쉽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힘을 공급 받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나의 연약한 부분을 하나님께서 대신 채워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성령으로 만 가능한 것' 이기에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능히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 기도 하는 방법을 몰라서 기도를 못하겠어요. 하는 분도 있습니다. 기도는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기가 젖 달라고, 고상한 말 하지 않고, 울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이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여러분에게서 돈 타갈 때, '전능하신 우리 엄마, 우리 엄마의 지갑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엄마의 사업이 잘 됨 같이, 이 아들에게 일용할 용돈을 공급하시옵소서' 이렇게 말하며 타가지 않습니다. 그냥 맡겨 놓은 거 찾아가는 사람처럼 달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줄려고 손에 주머니를 넣고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그냥 무릎만 꿇어 달라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때로는 왜 기도를 안 들어주시나요? 라고 물으실 거예요. 그 이유는 복잡합니다. 하나님만이 아세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모와 대화하는 자녀가 잘 자라듯, 하나님과 마주하기를 자주 하면, 여러분의 믿음은 성장한 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더 원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장성한 사람처럼 믿음이 자라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믿음에 굳게 서야 하고, 환난도 거뜬히 이겨내야 하고, 하나님과 늘 마주하며, 기도할 때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 보시면,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어디에서 온 사람들입니까? 아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지방이죠. 21절 보시겠습니다. 바울이 간신히 살아나서는 어디로 갑니까? '루스드라와 안디옥과 이고니온으로 돌아가서' 이것이 사명 맡은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하는 것, 죽어가면서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는 것, 이것이 사명입니다. 오늘 우리 꿈의 성도님 한분 한분에게 하나님께서는 천사도 부러워 할 만한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서 믿음에 굳게 서며,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승리하며, 주님과 늘 기도하는 습관에 젖어 사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