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합시다
야고보서 5:7-11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신앙은 크게 부활 신앙과 재림신앙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모진 고난과 핍박속에서도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육체는 죽어도 영원히 천국에서 살 소망을 가지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활 소망을 가진 성도는 기꺼이 순교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재림 신앙을 가진 성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 우리의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나, 중세시대의 심한 박해 속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이 기꺼이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재림신앙 덕분입니다. 재림신앙을 성도의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7절에 '참으라'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기다리라' 라는 말이 나오죠. 8절에도 '길이 참고' 라는 말이 나오고, 10절에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그리고 11절에 드디어 '인내' 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 모두가 '인내' 라는 말의 다양한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참아야 하는 것' '인내' 의 한계는 어디까지입니까? 오늘 본문이 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7절에 "예수님께서 강림하시기까지" 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우리의 생명이 끝나거나, 주님이 오실 때까지 입니다. 여기까지 참아야 온전한 인내를 이루는 것입니다. 한 5년쯤 참다가, '내가 지금까지 참았지만 이제는 도저히 못 참겠다!" 라고 팔을 걷어 부치고 나오면 인내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벼르고 있었던 겁니다.
일본의 주부들이 남편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인내하면 한평생 아내의 도리를 다 하다가, 자식들 다 시집 장가 보내고, 남편이 퇴직할 때쯤 되면, "이제 헤어집시다" 라고 하는 주부들이 많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 퇴직금의 반을 챙겨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분노를 품고 벼른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까? 주님이 오실 때 까지 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야보고 기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인내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방법으로 인내해야 하는지 본문에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무엇이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 첫째는, 농부가 비를 기다리는 것 같이 기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른비와 늦은비를 기다리라고 말씀하는데, 당시에 이른비는 10월에 오는비입니다. 이 이른비가 와야 땅이 부드러워지고 씨를 파종할 수 있습니다. 늦은비란 4월에 오는비입니다. 이 늦은비가 와야 수확 바로전에 열매들이 풍성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라서, 농사를 짖기 위해서 비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비가 올지 안올지 모른다고 해서, 밭을 갈지 않고 있으면 안되었습니다. 밭을 다 갈아 놓은 다음에, 비를 기다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인내를 말하는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몰르니까,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세월만 죽이고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준비를 하고, 비를 기다리는 것 처럼, 주님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인내' 란?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소망 중에 기다리는 것이 성도의 인내입니다.
- 두번째는, 형제들과 서로 원망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8절 보시면,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원망을 고난중에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고질적인 질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고난가운데, 원망하므로 해서, 광야에서 다 죽게 되는 사건을 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원망이 이렇게 큰 죄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고난중에도 아무 원망하지 않고 인내한 성경속의 인물을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데, 10절에 선지자들이 '오래참은 것' 본을 받으라라고 말합니다. 제가 몇번째 말씀드리는데, 선지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백성에게 전달하는 사람' 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선지자가 인기가 있겠습니까? 제자장이 인기가 있겠습니까? 제사장이 인기자 좋죠. 선지자는 늘 안 좋은 소식을 가져오니까, 선지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제사장은 백성들이 가져오는 성물을 먹고, 삶이 편했는데, 제사장은 소위, 월급도 없고, 삶이 힘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회개하지 않으면 다 죽습니다. 라고 선지자가 외쳤는데, 그중에서 그 말을 듣고, 회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 때문에라도 재앙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선지자의 예언이 어떻게 된것입니까? 빗나간 것이 되죠. 그래서 선지자를 죽이려고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선지자들은 형제를 원망하지 않고 인내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 욥의 인내를 말합니다.
욥의 인내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너무나도 잘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씀드리니까, 우리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 우리에게 고생만 주시고 참으라고 하시는 하나님, 이렇게 이해 하시면 안됩니다. 11절 마지막에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자시니라"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고 승리하시면 그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11절에 "욥은 결말을 보았다' 고 말씀하죠. 결말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말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 한국의 드라마처럼요! 그럼 고난중인 이 세상에서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결국에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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