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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1년 1월2일 주일예배설교: 꿈을 회복합시다 - 요 21:15-23

by Peartree 2012. 12. 24.

꿈을 회복합시다

요 21:15-23

 

주일예배에 어느 목사님이 '용서' 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됩니다. 혹시 이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한 분도 없는 분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이렇게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더 큰 목소리로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 이중에 단 한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분 계십니까?" 그때, 맨 앞자리에 앉은 교회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어찌나 감격스러웠던지 "할아버지, 어떻게 하면 한 사람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우리에게 말씀해주실수 있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응, 많았었는데... 다 죽었어."

 

우리는 이 '미움' 이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가 못합니다. 아무리 천사표 성도라 할지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 미움이라는 것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즘 이 시대는 남편과 아내들이 애정과 신뢰의 관계에서 불신과 원망의 관계로 왜곡되는 시대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사랑과 존경의 관계에서 증오와 불순종의 관계로 변질되는 시대에 살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사탄은 오늘도

이 관계를 깨트리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파괴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대에 가장 시급한 일은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7:11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죠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의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관계를 회복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과의 관계가 무너진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다음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에 열두 제자들 가운데, 가장 예수님과 관계가 좋았던 제자는 누구였겠습니까? 베드로였습니다. 화끈한 남자, 남자중의 남자, 베드로.

그는 출발부터가 범상치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로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며 부르실 때,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눅 5:11절은

그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그뿐 아닙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너무 명쾌하게 주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정답을 던졌던 사람.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병사의 귀를 칼로 베어버릴 정도로 충신이었던 사람.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 장담했던 사람. 주님과 최고의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 베드로.

 

하지만 이토록 좋았던 주님과의 관계는, 빌라도의 뜰에서 처참하게 희롱

당하시는 주님을 나는 모른다고 세번씩 부인하고 돌아서는 사건에 의해서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사람 낚는 전도의 사명' 또한 망각해 버린 채

옛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물고기를 잡고 있는 실패자의 모습으로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물고기나 잡고 있어서 실패자라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어부라는 직업이 실패자가 같는 직업으로 들릴 수 있으나, 그런 말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실패는요. 꿈을 잃어 버렸다는데 있습니다. 진정한 실패는 회사가 부도나고, 사업이 안되고, 하는 일 마다 되지 않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꿈을 잃어버리는 것이 실패입니다.

주님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거닐며, 영혼구령의 그 꿈은 어디로 갔냐는 것예요.

세상의 소외된 사람을 돌봐주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며 꾸었던 그 꿈은 어디로 갔냐는 거예요.

 

여러분 꿈은 이루며 살고 있습니까? 혹시 그 꿈이 있는데, 여러 가지 환경에 부딪혀 꿈을 접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 일어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이루고 싶은 소원 말고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 말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말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비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실 때는 목적 없이 보내시지 않습니다.

이 땅에 필요 없는 존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존재의 목적이 있고,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그것이 꿈입니다.

이 꿈은 우리 각자가 다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분들에게 이 꿈들을 한 분도 빠짐없이 다 주셨습니다.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혹시 아직도 이 꿈을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새해에는 이 꿈을 발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혹시 베드로처럼 주님과의 관계가 깨어지신 분이 계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요.

이 관계를 회복하고자 주님께서 더 열심이라는 것 아십니까?

물고기 잡는 이 바닷가에 주님이 먼저 찾아 오잖습니까? 지금도 우리 주님의 열심이, 주님의 사랑이 저와 여러분들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꿈을 상실하고 실패자의 모습으로 서있는 베드로를 찾아가 주님께서 그를 어떻게 세우시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사랑의 확신으로 다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을 보시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실패하고 고기나 잡으러 가겠다고 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랑을 전재한 말씀입니다. 즉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하는데 너도 아직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베드로는 아마 실패한 자기를 주님은 포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으니…… 나 같은 것을 아직도 사랑할 리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그 예상을 깨시고, 생선을 숯불에 구워 요리하시고 빵을 준비하여 아침식사에 제자들을 초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베드로에게 한 마디의 비난도 하지 않았습니다. 꾸중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밤새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헛 그물만 던지느라 수고

많았다 12절 보시면 "조반을 먹으라" 하시죠. 경상도 말로, '아침 묵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표현할 때, 꼭 말로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이 사용하신 방법도 좋은 것입니다. "얘들아 고생 많지, 나는 아직도 너희들을 사랑한다" 이런 말보다는, 제자들을 위해서 열심히 아침을 준비해놓고, "아침먹자" 이 말이 어쩌면 더 감동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 식사나 같이 합시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주님을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베드로는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 깊은 사랑이 베드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요 13:1절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은 나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떠날지라도 주님은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내가 주님을 떠나서 문제가 되는 거지요.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사랑을 믿고 일어나십시오. 주님의

사랑을 믿고 잃어버린 비전을 다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2) 두번째는, 새로운 꿈을 주시며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15절 보시면,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하자 주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새로운 꿈을 주십니다.

          

처음 베드로를 부르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낚는 전도의

사명에서 어린 양을 먹이는 것은 양육의 사명으로 새로운 사명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이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성도를 보살피고, 먹이고, 성도의 마음을 이해해줄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으니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은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한 번의 실패로 '없었던 일로 하자'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셨다면 우리는 지금쯤 나가떨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실패는 죄가 아닙니다. 실패는 특별히 잘못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는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술 취하여 수치를 드러낸 사람이었고, 야곱은 거짓말쟁이였습니다.

모세는 살인자였으며, 기드온은 두려워했고, 삼손은 긴 머리에 바람둥이였고, 라합은 기생이었습니다. 다윗은 간음하고 살인하였으며,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갔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이러한 실패 가운데도 다시 일어나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잡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2010년은 나에게 실패와도 같은 삶이었어, 하는 분 계십니까? 그렇다면, 올해는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기회, 그 꿈을 다시 붙드시기 바랍니다.

 

3) 세번째는, 사명을 재 확인 시키며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19절 하반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나를

따르라" 이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3년전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주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여전히 실패자의 모습으로 서 있는데도 주님은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시고 있다니.

          

 본문 18절을 보시면, 베드로가 어떻게 죽을 것이지 주님께서 예고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19절에, "나를 따르라" 고 하시죠.

 

3년에 '따르라'고 할 때, 베드로는 죽는 것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 능력 많으신 주님을 따라다니면,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이 분이 왕이 되면, 나는 한자리 차지하는 거야 그 정도로 알았습니다. 그러니 그때는 따라갈

만 했습니다. 주님을 따라 다니니까, 끼니걱정은 없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죽은자를 살리시는 분인데, 완전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죽을꺼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을 것이다' 라고 까지 예고 하면서 따라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주님을 다시는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는데까지 따라갑니다. 실패가 이렇게 위력이 있습니다.

실패가 이렇게 신앙적 성숙을 가져옵니다.        

 

얼마전 한국에 호주출신의, 닉 부이치치라는 한 청년이 온누리 교회에서 집회를 했었습니다. 태어 날 때부터, 팔 다리가 없이 없이 태어 났습니다. 겨우 있는 거라곤 왼 발이 달발처럼 조금 생기다 만것 말고는 머리와 몸통밖에 없습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실패자의 모습으로 태었났다고 하며, 부모를 원망하며, 세상을 비관하고, 자살기도도 여러 번 했습니다. 한번은 하나님께 따지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팔 다리 중에 하나라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 팔 하나 주시는 것이 그렇게도 아까우셨습니까? 하나님 팔 하나 주시기 그렇게 아까우셨습니까?" 그때 주님의 음성이 가슴을 때렸다고 합니다. "나는 너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십자가에 갈기 갈기 죽지 않았느냐" 그후로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은 이유가 있다" 이유가 있다

 

여럽분, 희망이 없는 사람, 꿈이 없는 사람이 실패자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꿈의 성도 여러분, 2011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의 발견하고, 성취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