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1년 1월12일 수요찬양설교: 서로 다른 꿈 - 행 1: 1-11

by Peartree 2012. 12. 24.

서로 다른 꿈

행 1장 1-11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졌고, 대부분은 자포자기하고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옛날 직업으로 또 어떤 이들은 옛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믿기 어려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다시 사신 주님에게로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모여든 이 제자들을 이 땅에 40일을 머무시면서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떤 가르침이었냐면, 놀랍게도 그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다시 말씀하시고 있었습니다.

본문의 3절 보시면,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실 때, 그의 첫 번째 설교의 주제가 하나님 나라이었다는 것을요.

막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십자가의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은, 또 다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꿈을 끝까지 포기하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과 우리들의 차이점입니다. 베드로 보세요, 사람낚는 어부의 꿈을 주셨는데, 주님이 죽으셨다니까, 그 꿈을 바로 포기해 버리죠.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절대 그 분의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의 꿈은 하나님의 나라였어요. 그런데 제자들의 꿈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본문 6절을 보시면,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제자들의 꿈은 조국인 이스라엘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되는 꿈이었습니다.

 

3년전에 로마제국으로부터 짓밟히고 신음하고 있었던 유대민족에게

한 젊은 예언자, 나사렛 예수가 등장한 것입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메시지는 권능이 있었고, 약한자를 사랑하고, 병자를 고쳐주고, 죽은자도 살렸다는 소문은 제자들에겐 복음으로 들린것입니다.

'저 예수라면, 능히 우리 민족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이 제자들의 꿈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꿈과 제자들의 꿈이 사뭇 다르지 않습니까?

제자들의 꿈은 유대민족의 회복이 꿈이었지만, 예수님의 꿈은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이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꿈꾸었던 나라는 이 땅에서 평화롭고 자유롭게 사는 지상의 나라였지만, 예수님께서 꿈꾸셨던 나라는 영원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도 사탄이 있는 지옥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이 땅에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것이 주님의 꿈이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으로 실현 가능하겠습니까? 칼입니까? 아니면 무력입니까? 주님이 사용하신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번째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도로 이루길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전쟁이라는 것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시몬 같은 열심당원 출신들은 아주 과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런 모든 기대를 접었다가, 부활의 소식을 접하자, 이젠 됐다. 죽었다가 살아난 불사신 같은 이분이라면 충분히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유대인의 독립을 이룩할 것이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어떤 제자라고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열심당 (지금으로 말하면 독립투사) 시몬이 물었을 것 같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지금 우리가 칼을 들고 나가 싸울때가 지금 이때입니까? 이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소위 '사회 복음'(social gospel)을 기독교의 본질로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기독교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행동을 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죠.

물론, 기독교를 통하여, 사회가 건전하게 되고, 마약, 매춘,낙태, Shooting, 동성연애, 이런 문제는 줄어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을 보십시요. 크리스찬 인구가 절반이나 되는데, 세계적으로, 나쁜짓은 여기서 다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북한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퍼주면 뭐합니까?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데요. 그 방법은 오로지 주님이 사용하신, '복음전도', 로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증인의 삶이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입니다.

초대교회 제자들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전도를 최 우선순위'에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신 후 이 복음이 전파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으로 믿고 죽도록 복음 전했다는 것이죠. 금새 세계 복음화기 될 주 믿었는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그 귀한 사역이 저와 여러분에게 바톤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1. 두번째는,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이룰 수 있습니까? 성령의 권능으로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본문 1:8에 의하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누가복음 눅24:49에서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예루살렘 성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라 이말입니다.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보낼 때 까지'

그 약속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성령님이죠.

그러니까, 성령님 없이 복음전도 하지 말라 이말입니다.

전도도 성령님이 주시는 힘으로, 전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하기 위해 먼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본문 5절에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이 '성령의 세례'가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치열하게 토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세례'라는 책을 쓰신 R. A. 토레이 목사님은 성령세례 받은 사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첫째, 성령세례 받은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는 것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둘째, 성령세례 받은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신령한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셋째, 성령세례 받은 사람은, 회개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이 기도할 때 각종 은사들이 나타나게 되죠.

그러나 성령세례는 이 은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세례는 내안에 계신 성령님이 나를 통하여 충분히, 마음껏 일하 실 수 있는 상태가 성령세례죠. 그렇게 되면, 9가지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삶가운데 열매 맺힙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갈:5:22)

 

이런 것들이 삶가운데 나오면, 저절로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령의 세례를 받기 위해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인 것입니다.

본문 1:14절을 보시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더라" 이렇게 회개하고 기도하고 성령을 체험한 그들이 바로 초대 교회의 세상 변화의 주역들, 하나님 나라의 증인들이 된 것입니다.

 

3. 세번째,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루어야 합니까? 예루살렘에서부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대로 우리의 최고의 목표는 땅 끝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잘 못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복음화가 되고, 그 다음에 유대, 그 다음에 사마리아, 그 다음에 최종적으로 땅끝까지 가야 한다. 그렇게 이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화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이 순서를 고집한다면 복음이 가장 전해지지 않은 곳이 지금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출발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되죠.

 

이 말씀은 순서가 아니라, 우리의 관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저 멀리 지구의 땅끝에도 관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이죠. 그래서 우리는 예루살렘을 전도하면서 동시에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을 전도 하면서도, 땅끝에 사는 미전도 종족에게 관심을 가지고 선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의 기독교 인구가 800만 미만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작년 공식적인 집계가 8백 몇십만이지만, 실제로는 600만으로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보통 교회가 성도수를 집계하는데, 정확하게 집게하는 교회는 없다고 봅니다. 어떤 곳은 두배로 보고하기도 하죠.

 

세계에서 최고의 복음화 율을 자랑하는 곳이 어디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전라도 신안군 증도라는 곳입니다. 증도는 90의 복음화 율을 자랑하는 섬입니다. 이 섬은 섬 특유의 미신도 투전판도 놀음도 없고, 사찰도 굿당도 점집도 하나도 존재하지 않고 주말이면 모든 식당이 문을 닫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섬 인구 2,200명 거의 전부가 주일에 교회에 나갑니다.

 

이 섬이 이렇게 복음화가 된것은 목사님도 선교사님도 아닌 한 불행했던 여인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기독교 방송 기자가 섬에 찾아가 할머니를 붙들고 물었습니다. "할머니, 이 작은 섬에 왜 이렇게 교회가 많지요?" 할머니는 주저 없이 대답합니다. "아, 그거야 다 문준경 전도사님 덕분이제"

 

1891년 신안군 암태도에서 태어난 문준경이란 여인은 나이 17세에 증도로 시집을 오게 됩니다. 그러나 신랑 얼굴 한번 못보고 혼례를 치른 첫날밤부터 소박을 맞습니다.

이후 20년간 남편에게 버림받은 생과부가 되어 모진 시집살이를 하던중 우연히 집을 찾아온 어느 부인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후 유명한 이성봉 목사님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 나라에 헌신합니다.

그녀는 경성 성서학원에 입학하여 전도 부인이 된 후 다시 고향 신안에 내려와 섬들을 나룻배를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주민들의 부탁으로 짐꾼, 우체부, 약사, 의사 노릇을 하며 1년에 고무신을 아홉켤레나 바꾸어 신고 이 섬 저 섬의 돌짝밭 길을 다니며 아이, 병자, 어른을 막론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찬양을 불러주고 기도를 해주며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그 섬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죠. 이 분의 영향을 받은 목사님들이 김준곤 목사, 이만신 목사, 정태기 목사, 신복윤 목사, 이봉성 목사등 30여명의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생겨납니다. 그녀의 나이 59세 되던 해 6,25전쟁 중 공산당원이 몽둥이를 내리쳐서 순교하게 되죠.

 

그녀의 장례식에는 당시 가장 큰 장례였던 김구 선생의 장례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모였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전도 받은 사람들, 그녀에게 성경을 배운 사람들, 기도 받은 사람들, 사랑 받은 사람들, 도움 받은 사람들, 그녀의 손으로 눈물을 씻김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이 섬은 기독교 성지일 만큼 90% 이상이 예수를 믿는 천국의 섬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만일 지금 투산에도 이러한 증인들이 일어날 수 있다면, 아니, 우리 꿈의 교회가 이런 전도자 한사라만 키워만 낸다면 사도행전의 부흥은 또 한번 이 투산 땅에서 멀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 비전을 실현하는 주인공이 되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하겠습니까?

오늘 지금 우리의 삶이 이러한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