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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1년 1월5일 수요찬양설교: 막달라 마리아의 복음증거 - 막 16:9-20

by Peartree 2012. 12. 24.

막달라 마리아의 복음증거

막 16:9-20

 

오늘 드디어 마가복음 강해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주에는 십자가 지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십자가는 희생이며, 십자가는 사랑과 용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먼저,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마지막 지상 명령을 하시므로 마가복음이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복음의 새대를 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람들을 사용하신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비범한 사람들을 사용하실 것 같지만, 뜻밖에도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쓰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매우 평범한 사람들

과 함께 사역을 시작하신 것을 복음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어부들 같은

사람들이죠.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비범한

역사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좋아하

신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사람들 중에서 평범한 사람들

이 가장 많은 것을 보면,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이런 말을 했

습니다.

 

오늘이 마가복음의 마지막 장입니다. 복음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장입니다.

보통 일반 책들을 마지막은 The End 로 끝을 맺지만, 마가복음은 새로운 시대

를 Open 하면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제일 마지막 절 20절 보시면,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 이제부터 복음

이 시작 된 것입니다.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만들어 복음의

종말을 예고했지만,러나 우리 주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의 역사를 계속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하시자 마자, 복음의 위대한 역사를 시작할 사람들을 만나셨는데, 그 사람들이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평범한 나머지 부활 하신 후

최초로 만난 사람이 여자였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여기 중요

한 단어가 있습니다. '먼저 보이시니' 부활하신 주님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자

에게 먼저 보이셨습니다. 바로 이런 아주 평범한 여자를 통해서 복음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주님이시라면, 여러분 같으면, 주님께서 먼저 누구에게 나타나

셨을 것 같습니까? 저 같으면 베드로에게 먼저 나타나셨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세번씩 부인했지만, 그래도 수제자고, 연장자

고, 한 때 주님을 위해서 물불 안가렸기 때문에 당연 베드로였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평범한 여자였습니다.

 

그러면 이 평범한 여자를, 주님이 부활의 증인으로 쓰셨던 이유는 어디에 있습

니까? 무작정 평범하다고 해서 주님께 다 쓰임 받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여자가 쓰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오늘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몇 가지 본문에서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는, 이 여인은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체험하지 않고는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증인은 말하는 사람이죠.

그런데 그 증인은 본 것이 없이, 들은 것이 없이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본문 9절을 보시면, 이 여인이 전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일곱귀신이 들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쫓아 내 주셔서 고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에 누구도 쫓을 수 없었던 한 귀신도 아닌, 일곱 귀신을 쫓아 내 주신분이 주님이시신 걸, 몸소 체험한 사람입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값비싼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전장 15장 40절을 보시면,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바로전 39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는 그 자리까지 쫓아 갔던 여인이었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모두들 도망간 상태였습니다. 또 15장 47절 보시면, 예수님을 무덤속에 넣어둘 때도 막달라 마리아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주님을 끝까지 따랐습니까? 값비싼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인디아나주 출신의 미국의 대법관으로 있었던, 윌리엄 본트레이저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본트래이저. 이 분은 비교적 늦게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 속에서 살았습니다.

어느날 그가 재판을 하게 되었는데, 아주 여러 건의 죄질이 나쁜 강도질을

저질렀던 헤리 팔머라는 사람을 마지막 대법정에서 심의를 하고 판결하는 책임

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강도도 또한 교도소에서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그리수도를 영접하

게 되었어요. 같은 크리스찬으로서 본트레이져 판사는 이 팔머라는 사람의 회

심이 너무 진지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 사람이 정말 변했구나. 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어요.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는 판사로서

의 공인의 입장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그는 깊이 고민했습니

다.

정상적인 판결에 의하면 적어도 한10년 쯤을 언도 하는 것이 정상적인 언도였

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10 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다. 이 사람을 교도하기

는 커녕 이 사람을 망칠 수도 있다고 고민합니다. 그래서 그는 심지어 금식기

도까지 하고 나서 마지막 언도를 내릴 때 1 년, 그리고 몇 년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파격적인 것이고, 법쪽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부당한 판결이다는 여론이 들끌어 올랐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코너에 몰렸고, 어떤 법적인 제재를 받기 위한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때 본트레이저 판사는 주저하지 않고, 그는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고,

그는 사표를 냈습니다. 대법관의 자리를 미련 없이 그는 사표를 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그가 언도를 내렸던 헤리팔머가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나오던

그날 그는 마중을 나갔습니다. 그가 교도소를 걸어나올 때, 트레이저는 팔머라

는 죄수를 끌어 안았습니다. 죄수는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 이 본트레이져 판사

앞에 엎드리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판사님, 이렇게 까지 하실 필요는 없

었는데. 판사님, 이렇게 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는데. 그때 본트레이져는 그를

향해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렇게까지라니요. 주님은 형제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까지 주셨는데요. 이것은 값비싼 은혜였습니다.

그는 굵은 눈물을 떨구며, 일어나서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실망시

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최선을 다해서 사는 정말 변화된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이 것이 바로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막달라

마리아 에게는 이 은혜를 체험한 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증인

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두번째는, 은혜를 체험한 것 뿐 아니라, 부활을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8절 보시면,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믿지 않는 행동입니다.

11절 보시면,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13절 보시면,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역시' 라는 말에 엑센트가 있습니다. 역시, 내가 믿지 않을 줄 알았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야.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두려워 하지도 않고 의심도 하지 않고 쉽게 믿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은 복음을 새롭게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니까, 이 자리에 앉아 있죠. 여러분들을 통해서 주님은 복음의 강한 용사로 "표어" 처럼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을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가리켜 자유주의자들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도 의심하고,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주님은 그곳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위해 쓰임 받기는커녕, 16절 보시면,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지 않으면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위해 쓰임받기 위해서는 부활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세번째는, 복음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은혜를 체험하고, 부활을 믿고, 부활을 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을 보시면,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여기서 난데없이 나타난 이 청년은 천사입니다. 천사가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한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이 세여인에게 말하는데, 7절을 보시면, "가서…… 하라 하는지라" 영어 성경이 번역이 잘되있습니다. "Go and Tell"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서 전하라.

그러니까, 10절을 보시면, 마리아가 이 일을 고하는데, 영어 번역으로는 "She went and told" 하라는 대로, 순종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여 부활을 전하는 사람이 복음에 쓰임받는 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복음이 막 확산될 즈음에, 이 사람들은 엄청난 핍박과 고난을 당했습니다. 주님께서 전하라고 하니까, 목숨을 걸고 "Go and Tell" 한 것입니다.

왜요. 주님께서 살아나신 것을 전하지 않으면 안되겠으니까요.

이 복음을 믿고, 주임을 영접하면, 영원한 지옥에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 한 영혼이라고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전한 것입니다.

 

지금도 로마에는 카타콤이라는 지하묘지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당하자 폭 1m, 높이 3m 가량의 지하에 미로를 만들고 그곳에서 숨어 믿음을 지켜왔던 곳입니다. 현재 로마에 60개의 카타콤이 산재해 있고, 그 전체 길이는 합치면 600 마일에 달하고, 벽에는 약 700만명에 이르는 신자들의 시체가 매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곳에 숨어 믿음을 지키면서,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나가서 전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나가서 전하다, 그리스도인들이 마 말살되어 버리면, 나중에 복음을 누가 전하나, 딜레마에 빠진 것이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러나 이들에게 분명한 것은, 복음을 위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까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전하지 못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마지막 명령은 '가서 전하라' 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땅끝까지 전하라고 합니다. 이 복음을 오늘도 순종함으로 전하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