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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0년 11월 3일 수요찬양 예배설교 :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막 8:27-31

by Peartree 2012. 12. 24.

2010년 11월 3일 수요찬양 예배나를 누구라 하느냐?

막 8:27-31

 

교회 역사에서 최고의 그림이라면 레도나르도 다빈치가 그린"최후의 만찬"

일 것입니다. 우리교회 식당에도 걸려 있죠. 그 그림이 7년동안 그린 그림입니다. 처음 3년간은 그림의 초벌을 완성하는 단계였는데, 초벌을 완성한 다음,

다빈치는 친한 친구를 불러 그림을 보여주면서 소감을 물었습니다.

이때 다빈치의 친구는 예수님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그 잔을 가리키면서

'이 잔이 너무나 인상 적이고 사실적이다. 마치 살아있는 컵 같다' 는 코멘트를 했습니다. 그때 갑자가 다빈치는 붓을 들어 그 컵을 지워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친구가 당황하면서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다빈치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이 그림에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네"

 

이제 다음달이면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옵니다. 해마다 이 때가 되면, 크리스천보다 넌 크리스천들이 더 야단 법석입니다. 그래서 덩달아서 크리스천들도 세속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인거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인데, 왜 자기들끼리 선물을 주고 받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예수님을 탄생을 기뻐한다는 의미에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주인공 없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기 없이 돌잔치 할 수 있습니까? 죽은 사람없이 장례식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없이 그 자리에 산타 크로스 할아버지 앉혀놓고 기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여러 종교들은 그 교주의 가르침을 교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슬람교는 마호메트보다 코란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불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원래 원시불교는 석가보다는 석가의 가르침으로 자신들도 석가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석불했다고 하죠.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예수님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생입니다.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이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찬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에서 물을 수 있는 질문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질문이 있는데, 그 질문은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면, 영생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어느정도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에,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은 돌이켜 보시면서,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첫번째, 질문인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보편적인 견해가 어떤지 물어 보신 것이죠. 이 질문에 제자들은 세가지 답변을 예수님께 드리죠.

 

  1. 첫째는, 28절에, 세례요한이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이 대답의 배경속에는 당시에 요한은 가장 위대한 설교자였기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요한으로 본 것 같습니다. 얼마나 설교를 잘 하고 사람들에 깊은 감명을 주었나면, 세례요한의 설교를 들으려고 사람들이 세례요한이 사는 광야로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헤롯왕같이 악한 사람도 이 세례요한이 설교에 깊이 마음이 찔릴 정도로 위대한 설교자였습니다.

아마 당시에 예수님을 이렇게 설교 잘하는 세례요한쯤으로 보았다는 것이죠. 지금도 예수님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위대한 스승 정도로, 위대한 사상가 정도로 아는 평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오바마가 예수님을 '위대한 Teacher' 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예수님을 전혀 모르고 있다' 라고 혼자말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에 대한 나쁜 생각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이해하는데에는 결코 정답은 아닙니다.

 

  1. 두번째는, 더러는 엘리야 라고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능력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에 보시면, 엘리야가 한 번 기도하니까, 하늘문이 열리고, 비를 쏟기도 하고, 가뭄이 일기도하죠. 위대한

능력의 사람 엘리야가 열왕기하 2장 11절 보시면, 불병거 타고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갑니다. 그래서 그 엘리야가 다시 나타난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한번 기도하니까, 소경의 눈이 뜨이고, 귀먹어리가 듣게 되고, 저번주에 배웠죠? 5병이어 7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 수많의 사람들을 먹이시죠,

오늘날 예수님을 조금 이해하는 사람을 예수님을 초능력을 가진 수퍼스타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에 대한 나쁜 생각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이해하는데에는 결코 정답은 아닙니다.

 

  1. 세번째는, 선지자 중의 하나이니다.

 

이 대답은 앞에 두 개의 대답보다 훨씬 정답에 가까운 대답입니다. 하지만 이 대답도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대답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수가성의 여인 (우물가의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화중에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네 남편을 불러오라 하니까, 이 여인이 저에게 남편이 없나이다. 맞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남편은 네 남편이 아니니라 하시죠. 이 말에 이 수가성 여인이 "주여, 내가 보니 선지라로소이다" 하죠. 이 선지자란 말을 듣으시고도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여인과 대화를 하게 되죠.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답이 선지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신가? 라는 질문에 3가지 대답을 하지만 이 셋중에 정답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정말 정답을 듣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열두 제자를 향하여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었습니다. 이중에서는 정답이 나오겠지,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3년이나 가르쳤는데 정답을 말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기대 이상으로, 베드로가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대답을 했는데, 그것이 정답이 되고 말았습니다. 29절에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영어 번역본에는 "You are the Christ"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정관사 'The' 가 붙었습니다. '그 그리스도' 라는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 동안 기다려 왔던 그 메시야입니다.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대답을 듣고 싶어서 그들을 3년동안 훈련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고백입니다. 위대한 설교자도 아니고, 위대한 스승도 아니고, 초능력자도 아닙니다. 우리가 고백해야하는 말은 주는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발견한 사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 이런 사람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그리스도인 되는 것 아닙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 아닙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발견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자 이 고백을 받자,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비밀 하나를 밝혀주십니다. 이 비밀이 30절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계하시고" 31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밝히시죠.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죽으신다는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은, 우리의 주인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신 오신다는 말씀은 우리의 왕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나라 갈 때까지 늘 고백해야 하는 말은 '주님은 나의 구원자입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왕입니다" 라고 고백하면, 주님께서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 고백을 한 베드로를 예수님께서는 정말 업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질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자요, 주인으로 믿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주님을 믿을 수 있는지 오늘 본문의 사건과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을 찾아 보시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5절 -17절. 17절 보시면,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다른 말로 바꾸면, 이것은 네가 인간적으로, 이성적으로 진리를 깨깨달 안 것이 아니야, 하나님 아버지가 네게 알게 해준 것이야" 이 말입니다. 네가 예수님을 구원자요 주인으로 고백한 것은 하나님께서 도와 주신 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보통 성경공부 하다보면, 똑 같은 교재를 가지고, 똑 같은 시간에,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은 목자와 함께 성경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일정한 과정이 끝나갈 때 쯤이면, 예수님을 발견하고 믿고 삶이 바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투자하며 공부했는데,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자세가 진지하지 않았기 때문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말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어제는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피닉스에서 걸려온 전화인데, 대뜸 "저도 꿈을 가질 수 있나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희교회 이름이 너무 좋아서, 상담을 원하는 상담전화였습니다. 사연을 들으니까, 너무 딱했습니다. 부자로 남 부럽지 않게 살다가,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이혼을 하게 되고, 가진 재산 다 없어지고, 문득 문득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면, 깜짝 놀랬는데, 지금은 놀래지도 않고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 같은 사람도 꿈을 갖을 수 있나요? 새출발 할 수 있나요? 라고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일을 겪으면, 삶을 포기하고, 쉬운길을 택하는 사람도 있는데, 꿈을 가지고, 어렵더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것 역시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분이 어쩌면 투산에 이사오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을 보면서,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우리의 결단 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의 이성으로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사람에게, 구원 받기를 소원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도 이런 말씀 드린적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지옥가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찾고 두두려야 합니다.

 

이제 올해도 2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다른 기도도 중요하지만, 주님을 더욱 알기 원하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Teacher 라고 잘 못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생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꿈의 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제대로 알고, 믿는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