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8:1-21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머리 속에 두 개의 방이 있다. 하나는 기억의 방이고, 다른 하나는 망각이라는 방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은 기억의 방 속에 집어 넣고, 또 잊어 버리고 싶은 것은 망각의 방 속에다 집어 넣는다." 이 말이 일반적으로는 진리인 것 같지만, 때로는 진리가 아닐
때 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잊어 버리고 싶은데, 잊어 버려지지 않아 계속 괴로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꼭 기억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데,
쉽게 망각해 버리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14절도 그런 것입니다. '제자들이 먹다 남은 떡 가져오는 것을
잊어 버리지 말아야 하는데, 12제자 모두가 깜빡한 것입니다. '
오늘 본문의 1절부터 10절 까지의 사건을, 신학자들은 칠병이어의 기적 사건 이라 부릅니다. 칠병이어 들어보셨습니까? 오병이어만 (막 6:35) 있는 것이
아니라 칠병이어 사건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 두 사건을 아주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두 사건 사이에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해가 저물 때 까지 굶어가는 것을 보고 먹을 줘야겠다고 문제를 제가하는데, 오병이어 사건 에서는 열두 제자들이 먼저 문제를 제기합니다. '예수님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집에 보내서 먹을 것 먼저 해결하고 그 다음에 와서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데, 오늘 칠병이어 사건에서는 2절보시면, "내가 저희를 불쌍히 여기노라" 여기에는 주님께서 문제를 먼저 제기하시죠.
장소도 그렇습니다. 오병이어는 벳새다지역인데, 칠병이어의 사건은 갈릴리
동북편의, 이방인들이 많이 사는 데가볼리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시간적으로도 차이가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하루 동안에 일어난 사건인데, 칠병이어의 사건은 2절 보시면,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사흘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숫자적으로도 차이가 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몇 명을 먹였습니까? 5000명 장정만 5000명(2만명 추산), 그리고 먹고 남은 것이 몇 광주리? 12 광주리.
칠병이어 사건은 모두다 합해서 사람이 4000천명, 그리고 먹고 남은 것이 7 광주리였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거의 비슷한 기적을 두 차례 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뭐냐 하면, 예수님의 두 차례 기적 행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현장에 있었던 제자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저 같으면, 예수님께서 이런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모습을 제 눈으로 한 번만이라도
확인했다면 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뀔 것 같은데, 그런데 두 번씩 보고도 제자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가요?
자, 오늘 본문 14절 보시면, 제자들에게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자들이 떡 가져오는 것을 잊어 버린 것입니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죠! 더 큰 문제는
배안에 떡 한 개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짤막한 항해지만 그래도 항해는 항핸데 도시락 챙겨 가지고 가는 것을 잊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 보시면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며,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자, 두 차례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과 칠병이어의 기적의 현장, 거기에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기적을 행하시지 두 눈으로 지켜 봤습니다.
그리고 이 두 기적의 명백한 렛슨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문제의 해결자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모든 필요의 공급자이신 것을 기적을 통해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또 걱정하고 있단 말이죠.
자, 그래서 예수님 어떻게 말씀 하십니까? 자, 17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 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들 떡 때문에 걱정하는 구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내가 두 번씩 기적을 행하여 너희들의 필요를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를 신뢰하지 못하느냐? 아직도 내가
너희들의 문제에 대한 정말 해결자요 구세주요 그리고 주님이라는 사실을 너희들이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그러면서 너희 마음이 둔하냐? 요즘식으로 말하면 그렇게 너희 대가리가 돌대가리냐? 뭐 이런 말이예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여기서 깨닫지 못하느냐는 말씀이 단순히 예수께서 제자들이 기억력의 문제만 문제시 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너희 자꾸만 기억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구나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원인, 두 번씩이나 기적을 경험하고도 아직도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예수께서는 지적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를 우리는 15절에서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복음서에서 누룩은 나쁜 영향력의 상징으로 거의 쓰였습니다. 누룩은 빵을
만들 때 사용하죠. 옛날에 베이킹 소다, 베이킹 파우더라고 했는데, 이것을
넣으면, 빵 속이 비게되고 부풀어 오르죠, 그리고 이 누룩을 넣으면 안 넣은
것에 비해 부패되고 썩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지만 실제는 않좋은 경우가 많아 예수님께서는 나쁜 영향력을 말할 때 이 누룩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자, 다시 말하면 제자들이 지금 염려하고 있는 이유, 아직도 걱정하고 있는
이유, 주님을 신뢰하지 못 하는 이유는, 나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 다.
두 가지 영향, 첫째는 무슨 영향 이예요? 바리새인의 영향, 또 하나는 헤롯의 영향 때문이다. 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럼 첫째로, 누룩의 영향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2장1절에 보시면 우리는 바리새적 누룩의 정체, 그 영향의 정체를 알수가 있습니다.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 하라" 너희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곧 바리새인의 누룩은 곧
뭐라고 했습니까? 외식이다 그랬습니다. 외식주의. 이 바리새주의를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외식주의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 읽다가 외식하지 말라 이 말씀을 보고서 외식을 안하신대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외식은 그런 외식이 아닙니다. 바리새인의 외식이란 것은 겉만 꾸미는 것. 안의 내용에 대한 관심 없고, 바깥으로만 관심을 갖는 것, 이것이 바리새 주의의 특성입니다. 한 마디로 형식주의라고 우리는 정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종교의 형식, 이 틀을 갖추는 데는 열심이 있었지만 내용을 갖추는데 열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 인들을 책망하실 때에 회 칠한 무덤이여 라고 하셨습니다. 무덤 안에는 썩고 있습니다. 죽어 있는 뼈다귀들이 그리고 냄새와 부패함이 그 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겉만 꾸미는 거예요.
저는 바리새인들의 최대의 문제가 뭐냐면? 그들은 변화의 의지가 없이 종교 형식을 수호하는 데만 열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영수 박사님의 '성령을 소멸하는 자들' 이라는 책을 보면, 현대판 바리새인이 아직도 있다는 것입니다. 신양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 정치에 관심이 많고, 외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자, 예수님의 제자들의 신앙이 자라나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오히려 그들이
바리새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입니다. 주님을 따라서 어느 정도의
찬송과 기도에는 익숙해 졌지만 아직까지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 가는
일에 관심이 없었던 제자들. 신앙의 형식과 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신앙의
진지한 변화된 삶에 대한 의지가 없는 너희들이다. 라고 주님을 책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두 번째는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 라고 말씀하십니다.
헤롯의 누룩. 당시에 돈에 대한 욕심 이 많았던 것이 대표적인 모습이 헤롯왕입니다. 바리새주의가 형식주의, 외식주의를 대표한다면 바로 헤롯주의는 세속주의,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물질주의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이 헤롯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 물질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 증거를 볼 찾아 수가 있는데요 자, 다시 15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삼가 바리새 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 경고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을 때 이건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이죠?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신앙적인 깊은 고민을 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동문서답이예요.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헤롯 의 누룩을 주의하라"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는데, 누룩 소리가 나오니까 제자들은 얼른 마음 속에서 무얼 떠올렸어요? 누룩과 연관된 떡. 떡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아! 예수님도 떡 얘기하시는구나. 하고 착각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대답으로 16절에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제자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물질에 대한 관심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오늘 이 시대의 최대의 우상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황금 앞에 무릎을 꿇고 있죠.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아주 위기에
처하거나 어려움에 처하면 우리가 누구를 불렀습니까? 우리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찾지만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은 어머니를 찾죠? 어려운 일에
처하면 어머니 이북 출신들은 오 마니. 요즈음은 어려움에 처하면 오 마니를 찾는게 아니라 오, 머니 하고 찾는 대요. 시대의 풍자 일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셨을 까요? 두번씩이나
비슷한 기적을 체험하고도 여전히 필요를 공급하시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지 위해서는 물질은 필요합니다. 성경은 물질의 필요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물질이 우상이 되는 것은 죄라고 말하고 있죠. 그러면, 어떻게 저와 여러분이
이 시대의 물질주의를 극복할 수가 있을까요?
저 유명한 요한 웨슬레가 이런 말을 남겼습 니다.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의 회개는 신용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정말 변했다. 회개했다 라면 그것을 어디서 알 수 있느냐 하면 그 돈을 사용하는 용도를 보면 알 수가 있어요. 전에는 나를 위해서 내 욕심만을 위해서 쓰여지던 돈.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이웃들을 위해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또 미국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그러는데 미국의 어떤 침례 교회 에서 목사님이 지금 침례를 주는 거예요. 그런데 한 성도가 침례탕에 들어오질 않아요. 자꾸만 들어 오질 않아요. 그래서 왜 안 들어 오느냐 고 그러니까 목사님
나 지금 지갑을 갖고 있어서요 그 때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형제여! 당신의 지갑도 침례를 받으셔야 합니다
침례라는 것이 무얼 의미합니까? 이 침례이란 것은 물 속에 들어갈 때 내가
죽었다는 것이예요.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이예요. 물에서 나올 때
나는 주님과 함께 부활되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전에는 나를 위해서만 사용되던 이 물질에 대한 가치관이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사역을 위해서 사용되어 져야 한다는
것이죠.
오늘 제자들은 떡 안가져 왔다고 걱정하며, 서로 의논했습니다.
이제 어떡하지?
그러는 그들을 향하여 주님은 형식주의, 물질주의를 말씀하시며, 겉으로만
채우지 말고, 신앙의 내용을 채우기를 원하시며, 돈 걱정 하지 말고,
필요를 따라 공급하시는 예수님을 신뢰하시를 바라고 계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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