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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0년 10월 13일 수요찬양 예배설교 : 주님의 전략 - 막 6:7-11

by Peartree 2012. 12. 24.

주님의 전략

막 6:7-11

 

여러분 전도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전도지를 나누어 주면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연상합니까? 아니면 대형 스타다움에 사람들을 가득 메워놓고 설교하는 빌리그래함 목사님 같은 분을 연상합니까? 이 모두가 전도자 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란 말과 전도자란 말이 헬라어로 동일한 단어라는 것을 아십니까? 전도자가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이 전도자입니다. 교회 안에서 전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가 전도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나를 따라 오너라" 그 다음에 어떤 약속을 하셨습니까?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니까 한 사람이 정상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어야 마땅합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 즉, 전도자가 되어야 정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모두는 전도자 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택하시고, 세상에 파송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파송은 완전한 파송이 아니라, 예비파송입니다. 진짜 파송은 마가복음 마지막 장 15절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라고 명령하시면서 파송하시는 것이 진짜 최후의 파송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파송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3년 동안 가르치는데 있어서, 현장실습기간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께서 현장 실습으로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어떤 준비를 시키시고 있는지 본문에서 몇 가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로,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7절 보시겠습니다. "열두 제자들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실 때 에는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부르셨습니다.

여러분들을 부르실 때도 개인적으로 부르셨습니다. 혹시 여기 단체로 구원받은 분 계십니까? 그런 사람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주를 영접해야 하는 것이죠, 단체의 대표 한분이 예수 믿고, 그 단체가 구원 받는 사실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은 파송하실 때에는 둘씩 둘씩 묶어 보내셨습니다. 기독교에서 한 사람과 두 사람은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두 사람이 모이면 교회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태복은 16장 18절에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약속하셨죠. 그래서, 두 사람이 모이면 사단이 감히 이길 수 없는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도 한 사람씩 부르시고, 교회 공동체에 속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천국 입성할 때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섭니까? 그때에는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처럼, 한 사람씩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이 땅에 살 때에만 교회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서로 의지하며 협력하며 사단의 권세에도 능히 일 길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한 사람씩 보내는 것과 두 사람씩 짝지어 보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혼자 나가서 전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전도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혼자 하다가, 지치면 뭐 혼자니까 집에 오면 그만이예요. 혼자 하면 언제든지 땡땡이 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둘씩 짝지어 놓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용기도 생기고, 지혜도 두 배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일단 두명이면, 교회가 되기 때문에 사단이 쉽게 방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명씩 전도하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두명씩 짝지어 보낸 여러가지 이유중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이 두명은 법적증거의 효율적인 숫자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19장 15절 보시면,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어떤 사람이 죄인으로 증명을 받기 위해서는 증인이 필요한데, 한사람의 증인으로는 죄가 성립되지 않고, 최소한 두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 두 증인이란 말은 신약성경에는 요한계시록에 단 한번 나오는데, 계시록 11:3절 보시면,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7년 대 환란중, 고통이 심한 후 3년반 동안. 1260일을 두증인이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예언입니다. 이 때에도 지금과 같이 두 명이 같이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둘이서 서로 의지하고, 힘을 얻고, 용기를 얻게 될 것이고, 또 죄인들을 법정에 세웠을 때 완벽한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텐테, 어떤 사람은 "하나님 저는 전도 받은 일 이 없습니다." 이렇게 핑계를 댈 수도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증인이 있느니라" 이 때 증인을 한 사람이 아니고 몇 사람 부르 실까요. 두사람. 그리고는 "그들이 너희에게 전도하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희들은 듣지 않았지"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두 증인을 세우시고,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발 뼘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증인을 세우기 위해서도 둘씩 짝지어 보낸 것입니다.

 

둘씩 짝지어 보내신 또 다른 의미는, 제자들의 인격 성숙을 위한 주님의 전략이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5절 보시면, 베드로와 안드레가 짝이 됩니다. 이 둘은 환상의 짝입니다. 형제였습니다. 자라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너무 잘 알았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짝지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4절 보시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짝이 있습니다. 시몬과 가룟유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둘을 짝지어 주시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시몬은 열심당원 출신입니다. 아주 열심이 많은 사람이죠. 그러나 유다는 배신자입니다.

늘 비판적이고, 돈만 보면, 슬쩍 슬쩍 자기 주머니로 빼 돌렸던 사람. 아마 시몬이 유다와 같이 다니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습니다. 이 유다를 어떻게 가슴에 품어야 할까, 생각하며, 기도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시몬에게 있어서 굉장한 신앙의 성숙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만 성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안 맞는 사람과 같이 있을 때 그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고, 그들 용서하는 것을 배우면서 성숙하게 되는 것이 우리 예수님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될 때 교회는 대단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1. 두번째는, 주님의 능력을 철저하게 신뢰하도록 하셨습니다.

 

8절 보시면,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외에는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9절에는 "신만 신고 두벌 옷도 가지지 말라" 하신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만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지팡이와 신발.

당시의 팔레스타인 지형을 이해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은 사막이 펼쳐져 있고, 지형도 험한 곳입니다. 이곳을 다니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지팡이와 신발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먹을 음식인데, 10절 보시면,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 까지 거기 머물라" 고 말씀하시죠. 주님께서 예비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전도자에게 너무 많은 것이 있으면 거추장스럽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은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제가 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사막으로 전도를 떠난다고 가정한다면, 참 힘들것입니다. 다니는 것은 둘째치고, 온유월 손님은 가까운 친척도 꺼려하는 법인데, 누가 저희들을 집에 들여서 음식을 주고, 잠을 재워주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사도바울처럼 혼자 살면서 전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가정을 가지고, 직장생활 하며,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도 참 힘들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직장에서 전도하려면 얼마나 힘듭니까? 직장생활 적당히 하면서 예수 믿으십시요, 하면 누가 그 소릴 듣겠습니까? 무슨 설득력이 있겠어요. 그래서 직장에서 전도하려면, 안 믿는 사람보다 배는 더 성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직장생활하면서 복음전하는 평신도들을 보면, 저보다는 훨씬 위대하게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신발과 지팡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사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신발과 지팡이 뿐이면, 주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것 모두 버리라" 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야 전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도우실 것을 철저히 믿고 의지" 하는 마음자세가 중요한 것이죠.

 

  1. 세번째는, 환영과 핍박을 함께 받을 각오를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10절 보시겠습니다.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 까지 거기 유하라" 이것은 대접을 받는 상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다 보면, 환영을 받는 수도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가 얼마나 용기를 얻습니까?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격려하시기 위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11절 보시면, "어느 곳에서나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이것은 핍박을 받을 때 상황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는 나머지 어느 집에 가 전도하다가 안받아 들이면 나오면서 신발에 먼지를 털고 떠난다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런 뜻이 아닙니다. 먼지라는 것은 세속성 죄악의 상징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은 영접하지 않고 복음을 거절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지만 숨겨진 가장 중요한 동기중 하나는 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안 받아 들이는 거예요. 그래서 발에 있는 먼지를 떤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죄악에 나는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냉대와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버리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을 향하여 심판날에 주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계속 촉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모습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