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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주일설교 : 간구할 때 마다 - 빌립보서 1 : 3- 9

by Peartree 2012. 12. 24.

간구할 때 마다

빌립보서 1 : 3- 9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생활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입니다. 교회생활이 기쁘고 즐거우면 삶 전체가 기쁘고 즐겁습니다. 반대로 교회 생활이 힘들고 괴로우면 삶 전체가 힘들고 괴롭습니다. 좋은 교회만 다녀본 사람은 잘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좀 복잡한 교회에 잠시라도 다녀본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교회생활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교회 생활의 중요성. 두말 할 필요도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타문화권에서 사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이민 생활에서 내 나라 말로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신앙 공동체가 있다는 것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교회가 우리 성도들의 생활권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교회가 좋은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 믿음이고 목회 철학입니다.

 

오늘 바울도 우리의 이런 마음을 공감하면서 빌립보서를 쓴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1,2 절은 바울의 인사말이고, 이 인사말이 끝나자 마자 곧바로 첫번째

교훈으로 바울은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 합니다.

 

3,4 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 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 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며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한다. 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교회를 생각 할 때마다 감사할 수 있는 교회, 교회를 위해서 기도 할 때마다 항상 그들을 위해서 기쁨으로 기도할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런 교회는 정말 행복한 교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꿈의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빌립보 교회만 그런 교회가 되란 법은 없습니다. 우리교회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아니 목사님,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목회한 교회이기 때문에 가능하죠? 라는 분들 계실지 모르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빌립보 교회는 우리 꿈의교회보다 더 환경이 열악한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처음 설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도착하자 마자 일어난 일은 매 맞는 일이었습니다. 엄청나게 맞았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2절 보시면,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니라" 그리고 23절에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채찍으로 심각하게 뚜드려 맞고 감옥에 갇혀을 때 바울과 실라는 25절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옥문이 열리죠. 죽도록 두드려

맞았지만, 바울의 마음속에 그것이 쓴뿌리로, 상처로, 원한으로, 분노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찬송과 기도를 할 수 있는 영적인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또 있었습니다. 빌립보 4장 2절 가보시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여자성도 두 분이 싸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시면, 바울은 이 둘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는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아마 두 사람이 갈등관계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 교회에서 보면은 한 사람은 앞 문으로 다니고, 한 사람은 뒷문으로 다녔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두 여성도의 갈등과 불화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서에 결론을 맺으면서 까지, "너희 둘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고 권면 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가 겪고 있는 갈등을 여전히 2000년 전에도 겪고 있었고, 목회자도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이 교회를 향하여 감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성숙한 크리스천 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원리로 보면, 감사하지 아니하고, 불평 불만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성숙한 믿음을 가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감사가 저절로 나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애들 키워보십시요. 애들이 어렸을 때에는 아무리 퍼주어도 감사 할 줄 모릅니다. 장난감을 사주고, 젓을 먹여주고, 해도 감사가 없습니다. 혹시 아이 키우면서 2살 때 엄마 키워 줘서 감사합니다. 들어보신분 계십니까? 없습니다. 부모가 다 해주고, 쏟아 부어줘도 어릴적에는 늘 불평 불만입니다. 그러다가 점차 성숙해가면서, 어른이 되어가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죠. 성숙과 감사는 정비례 합니다. 같이 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음은 열심으로 표현되지 않고 감사로 표현된다. 여러분 교회 오시면 감사가 넘치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저희 교회 모 권사님은 그냥 교회 오시면 감사하다는 권사님 계십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보니까, 우리 교회는 한 분도 빠짐없이 성도님들이 다 감사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불평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희 같이 좋은 교회에서 불평하시면 뭔가 잘 못된 것입니다. 얼마나 좋아요. 목사 좋죠,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성도님들 좋죠. 정말 우리 삶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신앙 공동체라고 말 할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1. 5절 보시면, 복음의 교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교제라는 단어는 동역이라는 말입니다. NIV 성경은 'Partnership' 이라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위하여 온 성도가 동역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란 그냥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한 영혼을 위하여 함께 울고, 또 성숙해가는 한 영혼을 바라보며 함께 웃는 것, 이것이 복음 안에서 교제였던 것입니다.

다시 5절 보시면, "첫날부터 이제까지" 교회가 세워진 초기부터 계속해서 온 성도들이 복음을 위하여 동역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멈춘 적도

없고 방학도 없었습니다. 투산 지역에 많은 성도님들이 복음에서 떠나 방학중에 있는 성도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겐 방학이 없었습니다. 한 영혼을 세우는 사역에 매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통 성도들이 교회를 방학하는 이유가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는 경우입니다. 그 마귀의 이름이 섭섭마귀라고 합니다. 섭섭한 마음이 참 무섭습니다. 모든 교회의 문제가 섭섭한데서 시작됩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이런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섭섭한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바로 사람을 의지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에게 기대하고 있다가 그 기대가 못 기대에 못 미치면 그것 때문에 섭섭해지고 서운해지고 또 실망하고 화가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 성숙한 꿈의 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1. 두번째로, 6절 보시면, 착한일을 시작하신 이가 이루실 줄 확신했습니다.

 

여기서 착한일은 번역이 좀 서투르게 되었습니다. NIV 번역 성경으로는 Good Work 로 번역되었습니다. 좋은일이 시작되었는데, 그 일이 마지막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보시면,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는 모습이 아주 멋이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4절 보시면, 자주장사 루디아가 먼저 회심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16절에는 귀신 들렸던 여종이 떠나가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또 그런가 하면 감옥에 들어 갔을 때 간수가 그 유명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바울의 말을 듣고 온 가족이 구원을 받습니다. 한 사람은 아시아 사람, 한사람은 헬라사람, 한 사람은 로마사람, 한 사람은 비즈니스 우먼이었고, 한 사람은 노예였고, 한 사람은 군인이었습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 다양한 생활권에 있는 사람들로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참 멋지게 시작된 것입니다. 이 좋은 일을 하나님께서 시작 하셨는데,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까지 분명히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하노라.

 

바울이 시작 한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기에 확신이 있었던 것이고, 감사하고 기뻤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꿈의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꿈의 교회를 2년전에 시작하셨습니다. 복음이 이곳에 심겨지고, 복음을 통해서 귀한 하나님의 동역자들을 세우시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끌어 오셨고, 앞으로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좋은 일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 비전과 확신이 우리교회에 있어야 우리교회는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 미국땅에 들어와 사는 떠돌이 이민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곳에 오게 됐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는 역사의 현장에 우리는 우뚝 서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십시요. 세상은 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1950년에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예측을 했습니다.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1999년이 지나가지 전에 인간은 화성에 착륙할 것이라고, 그리고 뉴욕에서 동경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민간 항공기가 개발 될거라고… 근데 이 예측은 다 빗나갔습니다. 다 틀렸습니다. 아직도 못합니다.

그리고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그런 말도 했습니다. 2000년이 되면 미국 전역에 22만대의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될 것이다. 지금은 몇대가 있습니까? 아마 1억대로 넘을 것입니다. 예측이 다 빗나가 버린 것입니다. 아무도 예측을 못합니다. Future Shock, Third Way (제 삼의 물결) 같은, 탁월한 미래를 예견하는 책을 썼던, 최고의 매래 학자였던, 앨빈 토플러는 그의 책 마지막 결론은 항상 똑같습니다. "미래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그냥 짐작할 뿐입니다.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확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를 알아서가 아니라, 미래를 다스리시고, 미래를 붙잡고 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안에 좋은 일은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가득 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세번째는, 8절에 보시면, 빌립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서로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바울의 심장은 예수님의 심장으로 이식 받은 심장이었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끔찍이도 빌립보 교회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교회안에 이렇게 목회자와 성도간에 성도와 성도간에 극진한 사랑이 따뜻하게 넘치게 될 때,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안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꿈의 교회도 사실 참 따뜻한 교회입니다.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바람이

따뜻합니다. 이만 하면 참 따뜻한 교회입니다. 우리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이 있으시면, 얼굴 표정은 따뜻하지 않은데요? 하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저희 교회 성도님들이 얼굴표정과 마음이 좀 다릅니다. 속은 따뜻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겉 모습도 사실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기쁘면 기쁜 표정을 하고, 슬프면, 슬픈 표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해주죠. 그러한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9절 보시면, 바울은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이 점점더 풍성하게 되기를……

워낙 사랑이 많은 빌립보 교회였지만, 거기에 멈춰선 안되고 첫 사랑이 더 커지기를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사랑이 더 성숙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성도간의 성숙한 사랑은 별 것 아닙니다. 관심 가져주고, 이해해 주고, 격려해주고, 등 두둘겨 주고, 그런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을 사랑장입니다. 거기에 보시면, 사랑은 남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티가 내눈에 보이는 것은 내가 똑똑해 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담의 후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너 왜 선악과 먹었냐? 라고 하나님께서 물으실 때, 아담은 '죄송합니다' 하지 않고 금방 '저 여자가' 라고 하며 하와를 지적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당신이 만들어서 내게 주신 여자" 그러니까 하나님도 책임이 있습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죄의 특성은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해야 합니까? '아, 나는 엄청 똑똑하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아, 나는 죄인이구나' 이게 또 보이는구나 !

그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여주시옵소서.

그러면 그런 사람이 모인 교회 공동체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좋은 교회는 좋은 건물에 있지 않습니다 좋은 교회는 재정이 많음에 있지 않습니다. 좋은 교회는 좋은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꿈의교회가 이렇게

복음을 위하여 서로 동역하며,

이 귀한 사역을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확신하며,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서로 사랑하는 교회, 따뜻한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