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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수요설교 : 마가복음 개론

by Peartree 2012. 12. 24.

오늘부터 앞으로 몇 달 동안, 수요 예배 시간에 마가복음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마가복음은 4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기록된 책입니다. 이 책은 특히 다른 복음서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예수님의 사역과 기적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고,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는 물음에 분명하게 답변해 주고 있는 책입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무엇을 제일 먼저 언급합니까? 보통 고향이 어디인지 묻기도 하며, 어느 학교 나왔는지 묻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구의 아들인지 묻습니다. 이 세 가지를 학연, 지연, 혈연이라고 하는데, 이 세가지만 알면 어느 정도는 그 사람에 대한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보시면, 예수님의 혈연은 '하나님의 아들' 입니다. 본문 11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 오라 올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재차 거듭 확증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확증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3장 11절 보시면,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의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귀신들로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15장 39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장면은 백부장 (1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는 사람, 십부장, 10명의 군사, 천부장은 천명의 부하들) 이 보고는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이 백부장이 누구 였나면, 마태복음 8장에 보시면, 그의 신하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신하를 고쳐달라고 간청을 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고쳐 주겠다고 하시자, 주여, 오시지 마시고, 말씀으로만 하시면, 하인이 낫을 것입니다.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는데, 저들보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데, 이것을 하라, 하면 하는데, 예수님 오시지 마시고 말씀으로 명령만 하시면 낫겟습니다. 마태복은 8장 10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놀랍니다. " 이스라엘 중에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믿음에 관해서는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 이 백부장이 었습니다. 여기 성도님들도 백부장 같은 믿음의 사람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이 마지막까지 믿음 있는 말을 하는데,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고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아니 예수님의 제자들 조차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왕이 될 줄 기대하고 있었는데, 힘없이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니까, 모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이 힘없이 죽으신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하는 것은 대단한 고백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반란을 일으켜, 헤롯왕을 숙청하고, 로마로부터 해방을 이루고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신다고 가정해보면,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보고 무엇이라 부를 것 같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 이라 부를 것입니다. 제자들도 도망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 옆에 달라 붙어 한 자리 차지 할려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는 그런 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여 주님이 왕이 되시면, 나의 한 아들은 주의 좌편에, 한 아들은 주의 우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 부탁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 보십시요. 십자가에 힘없이 죽어가는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 이라 부른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할 때, 늘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릴 때에는 '나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고백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고, 일도 잘 안 풀리고,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십자가에 죽으신 것 처럼, 나의 삶 속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예수님같이 보일 때 이런 고백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럴때라도 예수님을 헌신짝 버리듯 뒤로 하고 도망가지 마시고, 그 어려운 순간이라 할 지라도 여전히 예수님은 '나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백부장 처럼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3절 보시면,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주의 길을 예비하는 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당시는 초림 예수님이 오실 때 입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은 재림 예수님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초림때 오신 예수님의 상황과 재림 예수님의 상황이 같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늘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큰 일을 하기 전에 선지자들을 보내 회개하고 준비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홍수심판 전에 노아를 보내 준비하게 하시고 백성들이 회개하도록 촉구하셨습니다. 출애굽 할 때도 모세를 보내 가나안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지난주 까지 느헤미야를 살펴 보았습니다. 70년 포로에서 돌아오기 전에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게 하시고, 모두가 회개하고 입성 준비를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의 준비는 누가 했습니까?

오늘 본문 3절 보시면, 세례요한이 그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사명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 이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복음의 씨가 사람들의 마음 밭에 뿌려지기 직전에 굳어진 그들의 마음을 갈아 엎어서 옥토로 만드는 역할' 이었습니다. 이 옥토로 만드는 작업은 오직 '회개'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기에 그는 거침없이 회개를 외쳤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설교의 주제는 어제도 회개, 오늘도 회개, 내일도 회개였습니다. 교회 성장이나, 축복에 관하여 설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진 유대교의 가르침과는 사뭇 대조가 되는 설교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한국과 미국교회의 강단에서 나오는 메시지의 대부분은 '축복'과 '성공' 에 대한 메시지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인가 사람들이 축복과 성공을 갈망하다 보니까, 메시지도 변해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단 한번도 '축복' 과 '성공' 에 관하여 설교하신 적이 없는데, 우리 목회자들은 예수님과 반대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유명한 산상수훈, 즉 여덟가지 복에 관한 팔복설교를 하실 때,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애통하는자, 온유한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마지막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 이런 자들이 복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이 복받은 사람이다. 라고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1절에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 보다 큰 이가 없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눈으로 볼 때에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제일 크게 보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눈에 크게 보이기 원하십니까?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우리 구한 성도님들 되기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주님 다시 오실 재림 때에도, 주님은 세례요한 처럼 주님 다실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 길을 예비하는 사람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이 길을 예비하는 것은 돈으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많이 배웠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을 보십시요.

6절보십시요.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 (벌꿀) 을 먹더라" 이 문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거지입니다. 한국의 집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노숙자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불가능한 것 같지만 하나님은 가능케 만들었습니다.

 

9년전, 2001년 한국의 기독교 영화 제작자, 김우현 감독님이 만든 '맨발 천사 최춘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책으로도 나왔습니다.

이분은 맨발로 평생을 걸어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언뜻 보기에 거리의 미친 할아버지 정도로 보여집니다. 그는 겨울에도 맨발로 아스팔트 바닥의 길을 걸어다닙니다. 발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의 발이 아닙니다. 언뜻 사람의 눈으로 보면, 노숙자 미친 노인네의 모습인데, 이분은 30년전에 목사 안수를 받은 목사님이셨습니다. 자제분들은 학교 교장 선생님, 의사 등등. 일본 와세다 (세계에서 제일 센대학) 대 나오시고, 5개국어를 능통하게 하셨답니다. 광복 운동도 하시고, 독립유공자 입니다. 대대로 엄청 부자여서 김포 공항 땅이 다 이분 소유였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찾아와 도와 달라고 하면, 떼어 주고 떼어 주고 해서 하나도 없습니다. 기자가 묻습니다. 할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이분의 말을 항상 간단한 대답뿐이었습니다.

'내것이 아니고 다 예수님꺼니까" 기자가 묻습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대답합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마지막에 지하철에서 전도하시다, 앉아서 주무시면서 편안하게 아버지 나라로 가셨다고 합니다. 마지막엔 현충원 국립묘지에, 국가 독립 유공자로 안치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분은 지위고하 빈부를 떠나 담대히 회개를 선포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을 찾으십니까?

7절 보시면, "나보나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주님을 높이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5절 보시면,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2000년 전과 지금의 영적인 상태가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만약에 지금 이시대에 세례요한 아니더라도 이와 비슷한 사람이 복음을 전한다고 상상을 해 보십시요. 이런 사람의 말 잘 듣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의 겉 모습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진 배경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까, 그에게 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6장 17절-20절 보시면, 헤롯왕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자기의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요한이 18절에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라고 말하니까, 이 동생의 아내가 헤롯을 죽일려고 하는데, 죽이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20절 나와 있습니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 달게 들음이러라"

한 나라의 왕도 헐음한 광야의 걸인 같은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보지 않고 그가 드러내는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전도 할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나는 부족하지만, 우리가 전하는 그 예수님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전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내가 완전해진 다음에, 어느 정도 사람들이 보기에 그럴 듯 해 보일 때 전해야 말이 설득력을 얻지 않는가'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도해서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교회안에서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고, 예수님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죄인 것 발견한 다음에 실족하여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생활 신앙생활 하는데, 명심해야 할 것은, 여기 서있는 목사를 비롯해서 다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고관대작들에 복음을 맡겨 주시지 않고 세례요한 같은 사람 그리고 12 제자 같은 무식한 어부들을 택하여, 개 취급 받던 세리들을 택하여 복음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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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우리가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해야 하는 이 시대에, 정치인, 경제인들, 이 아니고 우리와 같은 서민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초림때와 같이 복음을 맡겨 주실 것입니다. 거기에 딱 적합한 인물이 누구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은 자를 들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하나님은 직원을 채용하는데 있어서 보는 안목이 없으신가봐'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상황에서 세례요한 처럼 불평하지 않고,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예수님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분명히 들어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