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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새벽예배 : 참되신 하나님 - 로마서 3장 1-8절

by Peartree 2012. 12. 23.

참되신 하나님

롬 3:1-8

 

지난주에 우리는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을 비교하였습니다. 율법과 할례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겉모습만 신자 같이 보이는 표면적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면적 유대인 즉, 진정한 크리스천은 말씀을 지키며, 할례는 마음에 하는 자가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도들은 사람에게 칭찬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칭찬 듣기를 즐겨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바울로부터 이 말을 들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크리스천들, 즉, 율법과 할례를 하나님에게서 받았다고 목에 힘을 주고 있는 표면적 크리스천 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습니까?

 

오늘 1절을 보시면,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라고 반문할 것이라 사도 바울이 미리 짐작하고 그들의 예상 질문을 기록해놓은 것입니다. 쉬운 말로 이봐요! Pastor Paul. 그러면 우리가 유대인으로 태어나, 율법을 받은 것이 아무것도 아니란 말입니까? 할례를 받은 것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까? 이렇게 바울을 향하여 반박했을 것입니다.

 

2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율법과 할례를 받은 것은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유익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은 단순히 율법을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말씀을 전파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복음의 기초로 삼으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유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렇게 복음을 맡은자로 사용하시려고 말씀을 맡겨주셨는데, 말씀을 지키지 않고 목에 힘만 주고, 교만하며, 이방인들을 무시하기만 한 것입니다.

 

진실로 말씀이 들어가면, 겸손하게 된다고 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오는 가장 큰 유익은 내가 죄인 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겸손하게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유대인에게 맡겨주신 복음이 이방인에게 넘어온 시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말씀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 말씀을 나에게 비춰보니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고백이 나올 때, 그 때부터 말씀이 능력이 되며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자신들에게 비추지는 않고 남에게 비춰서, 남의 약점을 드러내며, 허물을 잡아내며, 비판하며,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는데,

3절 보시면, 다시 바울의 예상 질문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어떤 자들이 말하길,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는데요?" 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 대답으로 4절에 "그렇지 안습니다" 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기에 하나님을 잘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되고, 성경에도 "주의 말씀은 옳고 주의 심판은 정확합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어떻게든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되있습니다. 아주 재밌습니다.

홀수절은 바울의 예상질문들, 짝수 절은 답변들입니다.

 

5절에 다시 예상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우리의 악한 행위가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운 행위를 분명히 드러낸다면, 그 일로 우리는 오히려 칭찬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바르지 않은 일을 하신다면, 어떻게 그분께서 세상을 바로 세우실 수 있겠습니까?

 

7~8절에, 유대인들이 심사가 더 뒤틀려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거짓됨이 하나님의 참되심을 더욱 영광스럽게 드러내 준다면, 왜 내가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하나님한테 좋은 일을 하는 것인데. 그들은 우리가 "악을 더 많이 행할수록 하나님은 선을 더 많이 행하시니, 악을 더 많이 행하자!"고 말하며 다닌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살인자가 법정에서 당신들이 나 때문에 먹고 사는 것이니 나는 당신들 앞에서 영웅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이 1976년 이집트의 한 골동품 시장에서 고문서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그 문서가 '유다의 복음서' 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사탄의 책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가룟유다의 배반이 없었다면 인류의 구원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계획도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 가룟유다의 배반을 합리화하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룟유다가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 보십시요. 또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하나님은 참되시기에 악을 이용하여 영광을 나타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들의 악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가 더 명확해 졌다 할지라도, 악은 무조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선한 일을 했을지라도, 믿음 없이 하는 것은 헛수고 입니다. 믿음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