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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주일예배 : 허리를 동여야 할 이유 - 벧전 1:13-25

by Peartree 2012. 12. 23.

허리를 동여야 할 이유

벧전 1:13-25

 

혹시 지난 주 설교 기억 나시는 분 계십니까?

이 베드로전서는 누구에게 쓴 편지입니까? 핍박을 피해 굴속으로 숨어 들어가 고난 당하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서 우리가 이 고난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속에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면, 현세의 삶만 생각하고 살아있는 동안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 이후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야고 보서 4:14에 "내일 일을 너희 알지못하는도다  너 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고 말 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 반드시 이 땅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그네와 같이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13절 보시면,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말씀이 출애굽기 12장에 11절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기 직전의 아주 긴급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시는데,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급히 먹고" 출발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빨리 떠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중동 지방에 가시면, 그들의 옷은 통으로 짠 옷입니다. 푸대 자루 같은 옷입니다. 그러니까 활동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활동을 하거나 전쟁터에 나갈 때는 허리에 허리띠를 동여매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 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은 가만히 풀어두면 상상의 날개를 펴게 됩니다. 가만히 두면 내 좋을 대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사단이 합세하면, 마귀가 좋아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죄악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베드로는 고난 가운데 마음을 굳게 먹으라는 표현으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허리를 동이고 살아야 할 이유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허리를 동여야 할 이유 :

 

  1. 첫째는, 13절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를 온전히 바라보라.

 

사실 고난 중에 주님을 바라보는 것보다 큰 소망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바라보고 사십니까? 남편을 바라보고 사십니까? 아니면, 자녀들을 바라보고 사십니까? 세상의 성공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무것도 바라보는 것이 없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만 바라보았던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다시 오실 예수님만 바라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막 13:14 보시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제자들의 말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산으로 도망가 굴속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26절 보시면,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바로 이 말씀이 그들의 소망이었던 것입니다. 이 소망을 끝까지 온전히 바라보고 살라고 사도베드로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유월 아프리카 케냐에서 데이빗 오워라는 목사님이 한국에 부흥집회를 하러 오셨습니다. 이분은 주님의 경고를 전하는 선지자와 같은 목사님입니다.

아이티에 지진 나는 환상을 보고 아이티에서 집회를 한 목사님이기도 합니다. 이분이 첫날 한국에서 집회 하는데, 한국의 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전쟁이 난다고 하니까, 듣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심각하게 들어 달라고 하며, 다시 한국과 한국의 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전쟁이 나는 환상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다고 전하는 것을 영상으로 본적이 있습니다.

은혜를 사모한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경고의 메세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이 시대는 롯의 사위들 처럼 농담으로 여기는 시대입니다. 행여나 환상을 잘못 보고 전달할 지라도 그분은 회개하라는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비웃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시대는 어떤 시대인줄 아십니까? 이미 12시가 넘어가고 있는 초침을 예수님께서 손으로 붙들고 있는 시대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웠다고, 사방에서 외쳐대지만, 그 말씀이 가슴에 와 닫지 않는 시대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시대를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시대라 말합니다.

이 땅에서 천년 만년 살 것처럼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설계하지만,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는 전혀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 13절의 말씀처럼, 허리를 동이고, 급히 어디론가 가야할 할 사람처럼, 주님이 오실 때 미련 없이 떠날 채비를 갖추고 사람처럼,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사도베드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소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소망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1. 두 번째는, 15절 보시면,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모습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 이라는 말은, 단순히 깨끗한 삶을 말하는 것 뿐만 아니다. 구별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별하는 것은 따로 떼어 놓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10불짜리라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고 따로 떼어 놓으면 그것을

구별된 헌금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하나님께 따로 떼어 드리기로 작정하면 그것은 구별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연합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따로 떨어져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것이 거룩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은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성경에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히브리서 11:10절 보시면, "이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라고 아브라함의 삶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소망이 하늘에 있었기 때문에 이 땅의 것을 별로 연연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땅을 택해야 했을 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조카 롯은 그의 소망을 이 땅에 두었습니다. 그에게는 땅이 전부였습니다. 그리하여 에덴 동산같이 보였던 소돔땅을 선택한 것입니다.

거룩한 사람과 거룩하지 않은 사람을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16절보시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찌어다"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거룩하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아빠를 닮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해져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1.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또 하나 이유가 있습니다. 18-19절에, 우리를 구속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구속한 것이 아니고,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였기에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다시말하면, 구원받고 깨끗하게 된 것으로 끝나지 말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 목적이 있을 텐데, 그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방에서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 놓습니다. 그런데 단지 그릇만 씻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그릇을 씻어 놓은 목적은 그 그릇에 깨끗한 물건을 담기 위해서 씻어놓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를 씻음 받은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되고, 깨끗한 그릇에 거룩한 삶이 담겨져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 세번째는, 22절 보시면, 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유명한 다락방 설교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5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다음에,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프란시스 쉐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일한 특권은 사랑이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한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은 감동 받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밤새워 기도했습니다.' 하면 세상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사랑을 할 때 그들은 충격을 받는 것입니다. 22절에 피차 사랑을 하는데, 어떻게 사랑하라고 합니까? 거짓이 없이 사랑하라고 합니다. 가식이 없이, 겉으로만 말고, 진심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고난이 오면 자기 자신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이웃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1년 동안 900만 단어의 말을 하고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500만 단어가 '나' 라는 단어라고 합니다. 이 시대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사는 시대인 것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크리스찬은 어떻게 생활한지 아십니까?

그들의 삶을 평가하고 있는 한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은 믿는 자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 가운데 하트리안 이란 황제가 있습니다. 이 황제가 한번은, 기독교인 공동체에 관하여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니까, 예를 들어, 요한 복음 6장에 '예수님께서 인자의 살을 먹지 않으면,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이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기독교인들이 서로 잡아 먹는다, 피를 먹는다 라는 소문이 들려 온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공동체가 대체 어떠한 공동체인지 알아보려고, 자신의 정보원을 파송합니다. 아리스트 티데스라는 사람을 파송하며, 그에게 명령을 주었습니다.

크리스찬이라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인지 조사하고 오라. 그가 조사한 보고서가 남아 있습니다. 그는 황제가 크리스천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았기에 칭찬할 수 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정탐꾼의 보고처럼 초대교회는 이렇게 사랑하는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 꿈의 교회가 서로 피차 사랑한다면, 교회가 변화되고, 투산이 변화되고, 세상이 변화 될거라는 것을 믿습니다. 마틴루터킹 목사가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직도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은 모든 것을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우리를 죽음과 저주에서 구원하였습니다.

 

우리 꿈의 교회가 이런 사랑의 힘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피차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사랑이 넘치는 곳에 마귀는 얼씬도 하지 못합니다. 마귀 역사가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영만이 운행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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