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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수요설교 : 성전 봉헌식 - 느헤미야 12:27-43

by Peartree 2012. 12. 23.

성전 봉헌식
느헤미야 12:27-43


우리는 '잔칫집' 하면 왠지 모를 기대가 있습니다. 잔칫집에 가면 무엇이든지 풍성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배부르게 먹을 것이 많고, 웃음이 많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잔칫집에는 음악이 있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잔치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처음 기적을 베푸신 가나의 혼인잔치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생애는 풍성한 잔칫상 앞에서 사람들과 교제하시며, 많이 가르치시며, 교훈을 하고 계시는 모습이 참 많이 나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묘사 하실 때도, 마 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라고 말씀하시며 천국은 잔칫집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탕자가 돌아왔을 때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 비유, 또 잔치를 베풀고 손님을 청하는 임금님 비유, 또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도 결혼식이라는 잔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잔치는 사람의 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의 생활에서 잔치가 없다면, 재미도 없고, 즐거워하는 기쁨도 없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교제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상당히 삭막할 것 같습니다.


어떤 집은 항상 잔칫집 같이 웃음이 넘치고, 기쁨이 충만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집이 있습니다. 그 집에 가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고, 먹을 것이 있을 것 같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집은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고 자꾸만 가고 싶습니다. 그런 집은 마치 천국 같은 집입니다. 이 땅에서 이미 천국을 이루고 사는 집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범 국가적인 차원에서 큰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바로 예루살렘 성벽 완성을 기념하여 모든 백성이 즐겁게 성전봉헌식을 행하는 날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는 교회 건물을 건축하고 성전헌당예배 또는 성전 봉헌예배 들 드리는 날 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7절부터 43절까지에 나타난 이 성전 헌당예배는 오늘날 우리에게 참 예배가 무엇인가 라는 모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참 예배는 어떤 것인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로, 참 예배자는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잔치든지 즉흥적으로 갑자기 이루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큰 잔치일수록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합니다.

오늘 이 봉헌잔치를 하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습니까? 이들은 성벽을 완성하고 나서도 바로 성전봉헌 잔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건물을 지었다고 바로 헌당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헌당예배드리기 전에, 8장 9장에서는 온 백성들이 모여서 두 차례의 영적 대각성기도회를 가졌습니다. 10장에서는 백성의 지도자들 (84명)은 하나님 앞에 헌신된 삶을 고백하는 결단 선언문을 작성하여 서명날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1장에서는 새롭게 건설된 예루살렘성에 거주할 사람들의 명부를 만들어 그들을 예루살렘 성안에 살도록 하여 성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 드린 내용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12장에서는 그들의 총독,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낙성기념 봉헌예배를 드린다고 선포하고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예배를 위해서 철저히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27절 보시면, 민족의 영성을 책임진 레위 인들을 원근각처, 사방팔방에서 불러 모읍니다. 즉 다시 말하면, 교회에 예배를 담당할 예배 사역자들을 모은 것입니다. 사회를 볼 사람, 설교를 할 사람, 찬양할 찬양대, 기도할 사람, 주방에서 봉사할 사람 등등등…… 그들을 불러 모았을 때, 그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27절 보시면, 그들은 "감사가 충만하여 노래하며, 제금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합니다. 즉, 감사함으로 기꺼이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된 예배는 하나님께 찬양할 뿐 아니라, 감사 드리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1절 보십시요.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무리" 38절에, "감사 찬송하는 다른 떼" 40절에 "감사 찬송하는 두 떼" …… 모두가 감사의 찬송을 하나님께 올리며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꺼이 나아가야 합니다. 억지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에서 지금까지 원수의 손에서 보호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그 은혜와 사랑에 감격해서 감사의 찬양을 드리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참예배자는 즐겁게 예배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들의 봉헌식은 잔칫집과 같은 축제의 예배였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기쁨과 즐거움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예배드릴 때, 마치 어둡고 침침한 장례식에 참여한 것 같은 인상을 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발 우리교회는 얼굴의 근육을 펴고 웃으며 예배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교회는 장례식장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는 결혼식장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결혼식장에 와서, 사람들은 세상의 골치 아픈 이야기로 잔칫집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를 골치 아프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얼마나 많습니까?

스트레스의 시대, 무표정의 시대, 일중독의 시대, 생존경쟁의 시대, 실망의 시대, 부정부패의 시대, 절망의 시대, 혼돈의 시대…… 등등. 이런 말이 더 이상 교회에서는 떠돌아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제발! 교회 안에서는 세상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을 내려놓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교회 안에서는 서로 위로하고, 축복하고, 격려로 잔칫집에서 누리는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웃음은 행복의 푸른신호등입니다)

(울음은 불행의 천둥소리입니다)
(분노는 만병의 뿌리입니다)


사람의 행복지수는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 가정의 행복지수는 그 가족의 얼굴에 나타나고, 그 교회의 행복지수는 그 교회 성도들의 얼굴에 나타납니다.
여러분들의 얼굴이 "행복의 수표입니다."

옆사람 얼굴을 보십시요. "제가 행복하게 보입니까?" 라고 옆사람에게 물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밖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는 행복의 전달자입니다. 나를 따라오시면 행복해 집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나오십시오. 내 얼굴에 행복이 쓰여 있지 않습니까?" 라고 하며

우리 교회 나오면 저처럼 행복합니다. 자신있게 권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오만 가지 인상을 써가며, 전도해 보십시요. 도망가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여러분의 모습을 보시고, 사람들이 나도 그 교회 나가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수 있도록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30년 동안 웃음과 건강을 연구한 스탠포드 의대 윌리암 프라이 교수는 웃음의 효과에 대해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크게 한번 웃을 때 평상시 움직이지 않던 근육 중 230개 이상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혈액순환이 활발해져 산소와 영양분이 피부 곳곳에 전달돼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으며, 사람이 1분 동안 마음껏 웃으면 10분 동안 에어로빅, 조깅, 자전거를 탈 때 일어나는 물리적 화학적인 긍정적 변화를 몸 안에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웃음은 '마음의 조깅'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웃음 생리학 연구자들은 배꼽을 잡고 실컷 웃는 웃음은 육체적 운동과 비슷한 효과가 내는데, 몰핀보다 200배나 엔돌핀 분비를 촉진시켜서 각종 통증을 가라앉힌답니다.
사람은 여섯 살 때 하루에 400번씩 웃다가 40대가 되면 하루에 평균 14번 정도 웃는다고 합니다. 한 번 폭소를 터트릴 때마다 엔돌핀이 나오고, 그 엔돌핀이 유지되는 시간은 5분입니다. 그래서 5분마다 배꼽을 잡고 웃으면 병이 생길 틈이 없다고 합니다. .

그러므로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마음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웃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꾸 웃으면 우리 몸 속에 한의원을 하나 차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스개 소리로 자꾸 웃는 정신병자에게는 암환자가 없다고 합니다. 웃음은 우리의 스트레스를 녹여버리고, 골치 아픈 일을 싹 내 쫒습니다. 또한 미움과 실망과 절망을 연기처럼 사라지게 합니다. 교회 와서는 좀 많이 웃는 이야기를 합시다. 그리고 많이 웃고 삽시다.

 

  1. 셋째로, 30절 보시면, 참예배자는 정결하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거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케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을 정결케 하였습니다."

잔치 집에는 깨끗한 옷과 그 분위기에 맞는 옷을 입고 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결혼식에 가면서 상복을 입고 가는 사람, 돌잔치에 속옷 바람으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잔치집에 가기 전에 먼저 정신병원부터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에도 그에 합당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 예복은 바로 '정결하고 거룩한 옷' 입니다.

이 예복은 어떻게 준비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우리의 행실을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회개라고 합니다. 이것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설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적마다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정결의식입니다.

우리 주일날 찬양이 끝나고 대표기도 하기 전에 잠시 기도 하는 시간이 있죠? 그때 이 시간을 결코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기억되는 모든 죄악을 토설 하며, 하나님의 거룩 앞에 서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삼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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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우리 성도에게 가장 귀한 특권이고 의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예배를 너무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가를 돌아봅니다. 오늘 레위인들이 예배드릴 때, 원근각처에서 예루살렘으로 몰려왔듯이 우리도 원근각처에서 몰려왔습니다. 이들이 즐겁게 봉헌예배를 드렸듯이 우리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결한 마음을 갖고자 회개기도도 드렸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43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 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즐거워 하는 소리가 어디까지 들렸다고요? 멀리까지 들렸습니다.

세상사람들의 귀에 까지 들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믿고 즐거워 하는 소리 행복한 소리가 그들의 귀에 까지 들려 교회로 찾아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진정한 예배는 예배드리는 현장 뿐만 아니라, 바로 예배를 마치고, 이 문을 떠나면서 나의 삶의 현장에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경배하며, 즐겁게 될 때,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고, 우리의 삶은 행복하고, 세상을 우리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도 돌아 올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