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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새벽설교 : 복있는 사람은 - 시편 84편 전체

by Peartree 2012. 12. 23.

복있는 사람은

시편 84편 전체

 

지난번 시편 42편 말씀을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라고 시작하는 이 유명한 시는 다윗이 아니고 고라자손이 쓴 이었습니다. 오늘도 역시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라고 시작되는 이 아름다운 시도 고라자손이 쓴 시입니다.

이 고라 자손은 모세와 아론에게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만 말씀하시냐,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하면서, 하나님이 세우신 종의 권위에 도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키도록 형벌을 내리시죠. 그 후 고라 자손은이 땅에서 멸망되고 자취를 감춘 줄 알았는데, 수백년 후에 이 자손들이 명맥을 유지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들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았습니다. 떳떳하게 고개 한번 들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라 자손들의 찬양은 '십자가의 고난을 거친 찬양이다' 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작품을 보면, 모진 고난과 고통을 겪고 난 다음에야 정말 작품다운 작품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고난중에 시를 쓰니 그 시가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도 송명희 시인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그런 아픔의 세월을 보낸 다음에 작품을 쓰니 더욱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이러한 아픔을 겪고 일어선 고라 자손이 이 시에서 3 가지의 복을 찬양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4절 보시면,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9장 19절 보시면, "고라의 증손 에비아삽의 손자 고레의 아들 살룸과 그 종족 형제 곧 고라의 자손이 수종드는 일을 맡아 성막 문들을 지켰으니 그 열조도 여호와의 영을 맡고 그 들어가는 곳을 지켰으며" 고라자손이 모세를 반역할 당시에 이들이 모세와 사촌지간 이었습니다. 어느정도 이스라엘 나라에서 지위가 있었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반역 사건이후에 이들이 성막 문들을 지키는 자들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배울점은, 비록 성전 문지기가 되었더라도 성전에 거하니 너무나도 기쁘다는 것입니다. 교회와서 화장실 청소하고 배큠해도 너무 은혜가 되어 이 성전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1절보시면,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1주일 교회 한번 오는 것도 힘들어 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자주 온다고 해서, 절기때만 오는 성도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서 날 알아주지 않는다고 삐치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고라자손 보십시요. 성전 문지기는 문만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성전의 궂은 일을 다하는 직분이었습니다. 일주일 한번 오는 것도 아닙니다. 매일 같이 성전에서 살다시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성전이란 말만 들어도 지겨울 법도 한데, 1절에, 주의 성전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라고 고백합니다. 10절 보시면,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예배할 수 있는 교회건물이 있는 것이 복중에 복입니다. 성도들과 함께 교제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북한의 동포들을 보세요. 모여 예배할 장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기독교는 성도는 있는데, 교회는 없는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할 장소를 주신 하나님을 오늘 고라 자손은 찬양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기도시간에 우리교회의 이 건물 사용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람니다. 들어 주실 것입니다.

 

  1. 5절 보시면,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시온의 대로란? 시온으로 올라가는 큰길을 말하고 있는데, 다시 말하면,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성도들이 복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라자손은 성전에 매일 같이 일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갈급함이 없이 그냥 직업상으로 매일 같이 예배를 가까이서 보아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치 영적인 갈망도 없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기대도 없이 그냥 오늘도 시간이 됐으니까? 교회에 출석해야지 하며, 시간만 때우러 오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멀리서 순례자 처럼, 아들은 모리아 산에서 산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3일길을 걷고 있는 아브라함 처럼, 굳은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오는 성도들을 바라보며, 고라자손은 이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 5절은 고라자손들이 자신의 소원을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하나님 전에 나올때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자신들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나아오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간절한 마음 가지고 주님 전에 나올 때, 7절에 '하나님 앞에 설 때 까지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 그리고 8절 그런 마음 가지고 나올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1. 12절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왜 주님을 의지 합니까? 11절에,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나 자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고, 교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손내미는 자를 잡아 주십니다.

4복음서 보시면,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면서, 항상 물으시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일 일어날 줄 믿느냐? 네가 너를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나를 의지하고 있느냐? 고 묻는 것입니다. 그럴때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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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편 84편, 고라자손이 하나님을 갈망하며 쓴 시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들은 무척이나 하나님을 갈망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얼마나 그분을 갈망하면서 살아갑니까? 그분을 갈망한 이유가 혹시 나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주님을 갈망하지는 않았는지. 오늘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아무 사심없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하기를 소원한 고라자손 처럼 오늘도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며, 주님 얼굴을 뵙기를 갈망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우리보다 안 좋은 환경속에서도 주님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시며 주님을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부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