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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주일예배 : LG (Lord is Good) 를 맛본 자의 삶 - 베드로전서 2장 1-12

by Peartree 2012. 12. 23.

LG (Lord is Good) 를 맛본 자의 삶

베드로전서 2:1-10


요즘은 동호회가 아주 많습니다. 취미가 같거나 서로의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보를 함께 나누며, 기쁨도 함께 나누는 모임입니다.

'낚시 동호회', '등산 동호회', '털털한 모임'이라고 해서 털이 많은 사람들 모임이 있고, '대두 클럽'이 있어 머리가 큰 사람들의 모임도 있다고 합니다.

음식에 대해서도 보신탕만 먹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고, 복어만 먹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맛을 아는 사람끼리 모인 것입니다.

 

역시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맛보고,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증거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동호회. 그것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수많은 동호회는 잠깐 있다가 사라지고 조그만 어려움이 있어도 없어지지만, 이 동호회는 전 세계적으로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 모임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임을 갖습니다. 그뿐 아니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이 헌신되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맛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국의 여름도 투산의 여름 만큼 무더웠습니다. 제가 중학교 정도 되었을 때 저희 집은 과수원 안에 풀이 많으니까 염소를 길렀습니다. 염소를 묶고 있는 줄에 쇠 꼬챙이를 달아 아침이면 풀이 많은 곳에 쇠 꼬챙이를 땅에 꽂아 두기만 하면 염소가 도망가지 못하고 풀을 뜯어 먹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다른 장소에 꽂아 두고 저녁때 집으로 끌어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참 기르기가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늘이 있는 곳에 꽂아 두라는 저희 아버지의 말을 깜박하고 그늘이 전혀 없는 곳에 매 두었습니다. 저녁때 가보니 염소가 더위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저는 아버지한테 혼날 줄 알았는데, 저희 아버지는 염소 불고기를 해서 주는 것이었습니다. 염소 고기가 노린내가 난다는 말을 들어서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염소를 사망 시켰기 때문에,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염소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노린내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소고기랑 맛이 똑 같았습니다. 그 후로 여름이면 염소를 햇볕이 내리쬐는 들판에 종종 묶어 놓곤 했는데, 사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왜 그랬겠습니까? 고기의 맛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잘 나가던 직장 때려 치우고, 이억 만리 대륙에 가서 선교하는 선교사님들 보면 다른 사람은 이해 못할 것입니다. 섭씨 50도 이상 올라가는 아프리카에서 선풍기도 없이 생활합니다. 하도 더우니까 털 있는 새는 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도 없고, 유충도 살지 못해, 파리 모기도 없는 그곳에서 선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무엇이 저들을 그토록 미치게 만드는 것입니까?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도전을 주는 것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복음의 맛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한 사람이 주께 돌아오는 그 맛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3절 보시면,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 보았으면 그리하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주의 인자하심을 맛 본 자의 삶은 어떤 삶인지 본문에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 2절 보시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구원 받았다' 라고 하면 예수 믿는 순간 구원이 완성되었다 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는 순간은 구원의 완성이 아니고, 구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보통 '구원 받았다' 라고 표현 쓰지만 '구원을 완성' 했다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습니다. 즉, 이것은 새로 태어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듭났다' 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는 것, 이것은 새로 태어난 다음에 구원의 성장 단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생동안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는 구원의 완성의 단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 앞에 설 때에 완성되어 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언제 구원 받았는지, 자꾸 출생에 관한 것만 이야기 하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가 관심 가져할 것은 성장의 단계입니다. 성장하는 성도는 '아기가 엄마 배속에서 나오지 않고는 자라갈 수 없듯이' 당연히 출생한 성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3절에 말씀처럼 "너희가 주의 인자를 맛보았으면 지금 이 순간 자라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 훗날에 이제 완전히 구원의 완성을 이룰 때 주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의 말씀은 우리가 잘 성장되기 위해서 다섯 가지 죄악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일일이 제가 말씀 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는 것들입니다. 이 중에서 궤휼이란 말은 자기의 이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속이는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사모해야 합니까? '순전하고 신령한 젖' 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음식이 있다면 바로 아기를 위한 어머니의 젖일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음식이 타락해도 어머니의 젖은 타락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FDA 가 인정하는 음식이라 할 지라도 맘 놓고 먹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미국에서 유통하고 있는 왠만한 식품들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실험을 했는데,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콩을 흰 쥐에게 먹였는데, 사망률이 다른 쥐에 비해 6배나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을 먹어야만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씀도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

이어야 하지만, 정말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신령한 말씀은, 여러분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대할 때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심령에 전달하시는 말씀이

여러분에게 적합한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먹여주시는 말씀이 최고의 영양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말씀

을 사모하시고, 말씀을 많이 읽고 듣고, 묵상하고 지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둘째, 5절 보시면,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사람은 거룩한 제사장 같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굴속에서 숨어 지내던 크리스천 들이 이 구절을 읽고 얼마나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되었겠습니까? 당시 성도들은 로마 네로 황제의 핍박을 피해 세상에서 버리워진 돌처럼, 나그네처럼 유랑하며 흩어져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들을 향하여 너희들은 이제 버려진 돌이 아니고 머릿돌이 될것이다. 라고 위로 한다면 아마 좌절과 낙망 가운데 최고의 위로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위로를 해주시는데, 너희들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거룩한 제사장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택한 백성처럼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 중 손이 세 개인 사람이 있습니다. 아시지요! 삼손. 바로 그에게는 손이 세 개 있었습니다. 왼손과 오른손 그리고 하나님의 손. 이렇게 셋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나귀 턱뼈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블레셋 군인 1000명을 때려 눕히기도 하고, 여우 삼백 마리를 잡아 서로 꼬리에 꼬리를 역을 정도로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들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삼손의 실패는 그의 긴 머리가 잘려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겉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 합니다. 원인은 나실인의 서약 곧 자신의 거룩함을 깨트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비결은 바로 거룩함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성도들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셋째, 9절 보시면,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자랑하고 싶어하시는 분입니다. 아무리 봐도 별로 자랑할 것이 없어 보여도 하나님은 자랑하고 싶어하시는 분입니다. 9절 보시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극찬을 하시며 선전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제사장으로, 왕으로 삼아 주시고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왕입니다.

 

옆사람 보시고 이렇게 말하십시요.
   "예전에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셨군요.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욥기서 1: 8 보시면, 하루는 하나님 앞에 사단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이렇게 자랑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하나님은 욥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욥은 자랑할 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정직하고 순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들을 자랑하고 싶어서, 자랑할 만한 것이 뭐가 있나 찾아보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아무리 하나님께서 찾아보고 찾아봐도 없다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당황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당황케 만들지 맙시다.

 

여러분 욥기서 1:8절 찾아보시고, 욥의 이름 대신에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O O O 를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우리 꿈의 교회 성도들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께 자랑이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므로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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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도 여전히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생각 하십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평생을 일그러진 얼굴로 숨어 살다시피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심한 화상을 입어 자식들을 돌볼 수가 없어 고아원에 맡겨 놓고 시골의 외딴집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한편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자식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랐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라며 나타난 사람은 화상을 입어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손가락은 붙거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저 사람이 나를 낳아준 아버지란 말이야?" 자식들은 충격을 받았고, 차라리 고아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더 좋았다며 아버지를 외면해 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자식들은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혼자 외딴집에서 지냈습니다.

몇 년 뒤,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동안 왕래가 없었고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살았던 자식들인지라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별다른 슬픔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을 낳아준 아버지의 죽음까지 외면할 수 없어서 시골의 외딴집으로 갔습니다. 외딴집에서는 아버지의 차가운 주검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을 노인 한 분이 문상을 와서 아버지께서는 평소에 버릇처럼 화장은 싫다며 뒷산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아버지를 산에 묻으면 명절이나 때마다 찾아와야 하는 등 번거롭고 귀찮아서 화장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화장하고 돌아온 자식들은 다시 아버지의 짐을 정리해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덮었던 이불이랑 옷가지들을 비롯해 아버지의 흔적이 배어 있는 물건들을 몽땅 끌어내 불을 질렀습니다. 마지막으로 책들을 끌어내 불 속에 집어 넣다가 빛바랜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불길이 일기장에 막 붙는 순간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얼른 꺼내 불을 껐습니다. 그리곤 연기가 나는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일기장을 읽다가 그만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일기장 속에는 아버지께서 보기 흉한 얼굴을 가지게 된 사연이 쓰여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자신들이었습니다. 일기장은 죽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쓰는 편지로 끝이 났습니다.  

"여보! 내가 당신을 여보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 놈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그 날 당신을 업고 나오지 못한 날 용서하구려. 부르짖는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당신만을 업고 나올 수가 없었다오. 이제 당신 곁으로 가려고 하니 너무 날 나무라지 말아주오. 덕분에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다오. 비록 아버지로서 해준 것이 없지만 말이오..."

   

"보고 싶은 내 아들 딸에게. 평생 너희들에게 아버지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이렇게 짐만 되는 삶을 살다가 가는구나. 염치 불구하고 한가지 부탁이 있다 .

내가 죽거들랑 절대로 화장은 하지 말아다오.

난 불이 싫단다.

평생 밤마다 불에 타는 악몽에 시달리며 30년 넘게 살았단다.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은 이보다 더한 사랑입니다. 당신 자신보다 더 귀한 아들을 죽이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