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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자 시편 146편 전체

by Peartree 2012. 12. 23.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자

시편 146편 전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은 시편 146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마치고 있습니다. 시편 150편의 시중에서 마지막 146편에서 150편까지 다섯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마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다섯편을 가지고 할렐루야 시라고 합니다. 할렐루야라는 뜻은 하나님을 찬양하라 라는 뜻이기에, 시편의 주제에 맞게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끝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부터 10절을 보시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있어서 무엇을 찬양해야 하는지 여러가지 목록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6절에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7절은 공의의 하나님,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 8절은 사랑의 하나님, 9절은,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10절은 영원하신 하나님. 이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의 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지 1절부터 5절 까지 살펴보겠습니다

 

1)  첫번째는,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만든 목적은,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하시려고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 무엇 하러 왔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반 농담으로 먹기위해서 산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정말 먹기 위해 산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일하기 위해 산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소나 말도 일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요즘은 자녀들 때문에 산다라고 하는분들 계십니다. 그런데 고슴도치도 제 자식을 끔찍이도 아낀다는 속담이 있듯이 짐승도 제 자식을 사랑합니다.

 

지난주에 영국인지 미국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도시에서 길가는 행인을 새가 날아와서 머리를 찍어대는 방송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새끼새가 둥지에서 떨어져 길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끼새를 보호 하려고 새끼새 근처만 가면 사람에게 달려들어 공격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짐승과 구별되는 것은 하나님의 찬양하는 존재로 부름 받았다는 것입니다. 짐승도, 곤충도, 세상의 어느것도 사람말고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 얼마나 복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귀한 특권이 너무도 감사해서, 본문 2절 보시면,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표준새번역본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번역하고, 공동번역본은 이 목숨 있는 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찬양이 우리가 이땅에서 반드시 해야할 본분이라는 것입니다.

 

 

2)  두번째는, 영원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3, 4절을 보시면, 시편기자는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며,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 그날로 소멸되어 없어지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아무리 방백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5절에,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끝이 있습니다. 태어난 날이 있으면, 끝을 맺는 날이 반드시 오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만큼은 독특하게 만드셨습니다. 죽을 수도 있고, 영원히 살수도 있게 만드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영원히 죽지 않는 복 있는 자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지 않고, 방백을 의지하고, 자기의 인생도 전혀 두울수 없는  사람들을 의지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알지도 못하고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루는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같이 놀고 있었습니다. 저녁 때가 되자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말을 합니다.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 그때 하루살이가 묻습니다. “내일이 뭔데?” 그러자 메뚜기가 대답을 합니다. “이제 곧 캄캄한 밤이 지나고 저 멀리서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밝은 날이 오는데 그때가 내일이란다.” 하루살이는 그 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메뚜기와 개구리가 함께 놀게 되었습니다. 개구리가 말합니다. “내년에 다시 만나서 놀자.” 메뚜기는 묻습니다. “내년이 뭔데?” 개구리가 대답을 합니다. “추운겨울이 지나고 다시 따뜻한 봄이 오는 게 내년이란다.”메뚜기는 도무지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살이는 하루의 꿈만 꿀 수 있습니다. 메뚜기는 일 년의 꿈만 꿀 수 있기 만드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영원토록 꿈을 꿀 수 있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루살이와 메뚜기처럼 이땅에서 살동안만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천국에서 만나자고 하면, 천국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공중에서 주님 만나자고 하면, 더 이해를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없이는 우리 인간이 천국을 이해 할 수 없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까?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은 다 변해도 하나님은 변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대로, 하루를 찬양하시며, 입술로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시는 하루 되시기를 소망하며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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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감사합니다. 영원히 죄와 허물로 지옥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는 저희들은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영원한 소망을 갖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늘 주님을 찬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하나님께 소망을 품는 존재로 만드신 그 목적대로 우리가 주님만을 찬양하며, 소망의 삶을 삶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믿음더하시고, 소망을 더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출처] 여호와를 찬양하라-2(80)|작성자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