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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받는자 밖에 요한계시록 2장 12-17

by Peartree 2012. 12. 23.

                                            받는자 밖에

요한계시록 2 12-17

 

오늘도 마지막 때 시리즈 5번째 : ‘받는자 밖에는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이 소아시의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형식은 어떤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까? 처음엔, 칭찬과 격려, 그다음 책망, 마지막으로 약속과 소망의 순서로 되어 있다고 세번째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도 이런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그리고 마지막때 이단사상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메시지는 책망의 대한 메시지를 전할텐데, 좀 어렵고 딱딱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 우리 교회도 수준이 상당히 올라와 있을 거라 믿고, 전합니다.

요한복음 6장은 53절은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은 하늘에서 온 떡이며, 피는 음료수라 말씀하시고,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정말로 말씀중에 핵심의 말씀을 전하시는데, 60절 보시면, 이 말씀이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66절 많이 물러갑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67절에 너희도 가려느냐?” 여러분 오늘 말씀이 어렵다고 중간에 돌아가지 마십시요. 조는거 까지 봐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성경도 많이 찾아 보면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정신 빠짝 차리시고, 성경도 빨리 찾으셔야 합니다. (옆사람과 인사)(빨리 성경을 찾읍시다)

 

그럼 버가모란 도시가 어떤 도시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버가모는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였습니다. 그래서 정치, 경제,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도시의 높은 곳에는 제우스 신전과 디오니소스 신전, 아테네 신전, 아크로 폴리스 신전 등등 신전이란 신전은 다 들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버가모는 가장 이교적이고,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사단의 본거지였습니다.

그러니 우리 예수님께서 13절에,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너희들이 사단의 본부가 있는 그 도시에 사는 고충을 내가 잘 알고 있다 라고 주님이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아마 다른 교회 성도보다 이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가장 믿음을 지키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렵게 신앙을 지키는 버가모교회에게 또 다른 큰 시험은, 13절 중간쯤 보시면, 충성된 증인 안디바란 성도가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로마의 관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안디바를 잡아와서 로마황제의 신상 앞에 세우고 로마의 황제 신상에 절을 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러자 안디바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예수님 외에는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로마 관리는 화가 치밀어 '안디바야, 온 세상이 너를 대적하고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라고 소리쳐며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안디바는 '그렇다면 나 안디바는 온 세상을 대적하여 예수님을 만주의 주로 시인하노라.'라고 단호히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격분한 로마 관리는 가마솥의 끓는 물에 안디바를 넣어 죽이게 됩니다.  

이 사실은 접한 같은 교회 성도들의 마음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이렇게 사단이 시범 케이스로 안디바를 죽였는데, 다음엔 내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13절 하반절에 안디바가 죽임을 당 할때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 하였도다할렐루야. 극도의 두려움속에서도 믿음을 지킵니다. 이것이 순교를 각오한 믿음인 것입니다.

 

마지막때에는 이러한 믿음이 요구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과거의 다니엘 선지자가 황제신상에 절해야 하든지 아니면 사자굴속에 들어가야 하든지, 둘중의 하나를 택해야 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황제신상에 절해야 하는지, 아니면 타는 풀무불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결단의 문제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그림자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계시록 13 15절 보시면, 앞으로 다가올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가 성도를 어떻게 괴롭히는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10절 보십시요.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마지막때에 성도의 인내와 믿음을 죽음으로 증명해야 할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4 21-22절 보시면,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겠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 그냥 두면 모두가 적 그리스도에게 경배하고 다 지옥에 갈 것 같으니까, 그 환난의 날들을 조금 깍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환난은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저의 바램도, 이러한 환난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준비는 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준비해야만 합니까? 이 믿음이란 것은 하루 아침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이 믿음은 다니엘 처럼 매일 매일 기도하는 훈련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할 때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어떻게 자신의 믿음을 증명합니까?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하므로 믿음을 증명해 보입니다. 독자아들을 죽이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시의 아브라함도 순교의 신앙으로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 버가모 교회가 이 믿음을 지키는 것은 너무 잘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님께 두어가지 책망을 듣게 되는데,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14,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 몇 명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럼 발람의 교훈이 어떤 교훈이기에 주님께서는 이 교훈을 미워하셨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수기 2211절에 보시면,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시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부탁을 합니다. 그때 12절 보시면,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발람은 금 은 보화가 탐이 나 가고 싶어서, 하나님께 이들을 따라 갈까요? 말까요? 하며 다시 재차 물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가지도 말고, 저주하지도 말라고 하셨는데, 그 분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그들을 결국에는 따라갑니다.

그리고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막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발락과 발람이 민수기 24 25절 보시면,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갔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서로 헤어집니다. 그후에, 성경은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발람이 떠난후 25 1 보시면, 이스라엘에 큰일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리고는 2절에 여자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절을 합니다. 3절에는 이스라엘이 바알 브올에게 부속된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발람이 발락으로부터 돈은 받아죠, 돈 값을 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저주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자꾸 막으시죠, 그러니 모압 여인들을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접근하게 하여 성적으로 타락하게 만들라고 헤어지기 전에 살짝 귀뜸을 해주고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락은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아마 발람은 아무도 모르게 완전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가 없습니다. 민수기 31 16절 보시면,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쫓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이 발람의 꾀에서 나온것이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발람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음행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음행은 이방여인들과 간음한 사건은 물론 간음한 여인들이 가지고 온 신들에게 절하는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염려했던 것은, 민수기 25 3, “바알 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즉 다시말하면, 하나님과 이방신을 혼합시켜서, 짬뽕을 만들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도 아니고, 이방잡신에 예배하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종교행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상)

하나님은 이런 것을 가증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독교도 아니고, 힌두교도 아니고, 이슬람도 아닌, 이상한 교회를 만들어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행위가 발람의 교훈입니다. 교회안에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들여놓고, 세상과 연합하는 것이 발람의 교훈인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버가모교회는 믿음하나는 잘 지켰지만 순수한 교회의 본모습을 지키는데에는 약했던 것입니다.  

 

2)  15,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 몇몇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럼 니골라당의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니골라라는 사람은 사도행전 6 5절 보시면, 초대교회 때, 일곱집사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초대교회가 박해를 당할 때 은둔 생활을 하며, 기독교의 교리를 따로 정립합니다.

 

이 사람이 정립한 교리는 이렇습니다. 구원받은 자의 영은 천국으로 가고 육신은 땅에 묻혀서 썩어지므로 썩어질 육신은 정욕으로 써도 된다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예수만 믿기만 하면 구원은 받은 것이고, 육신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이 니골라당의 교훈입니다.

당시에 이 가르침을 고린도교회가 받아 들여서,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는 성도의 행위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습니다.

 

오늘 버가모 교회에 이런 가르침을 따르는 성도들이 몇몇 있었고, 주님은 이 가르침을 책망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대판 니골라당은 무엇입니까? 오늘날에도 믿기만 하면 구원 받았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하면서 성도의 경건한 행실을 부정하고 있는 가르침이 현대판 니골라당의 교훈입니다. 오늘 주님은 이 가르침을 책망하고 있습니다이 거짓가르침을 교회에서 가르치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버가모 교회에 몇몇이 자신을 구원받았다고 공공연히 말하면서, 이제는 어떠한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믿는 사람이 있었다는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육신으로 짓는 죄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회개라는 것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16절에 주님은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대신 나가서 그 거짓 교훈과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2:22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그리고 이 거짓 가르침과 잘 싸워 이기는 자에게는 17절에 역시 소망과 약속을 해 주시는데, 새 이름을 기록한 흰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법정에서 재판을 할 때, 법정에 선 사람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 흰 돌을 주었고 유죄 판결을 받으면 검은 돌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 당시에 어떤 사람을 잔치에 초대할 때 흰 돌에 초대받은 사람만 알 수 있는 이름을 적어 초대장으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잔치에 들어갈 때 이 흰 돌을 보여주면 통과 그렇지 못하면 밖에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는데,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흰 돌을 받는자만 알기에 얼마나 그 기쁨이 충만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은혜를 받고, 너무 기뻤던 시절이 있었죠? 너무 좋아서 가슴이 벅차오르고, 받은 은혜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나오고, 그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면 실성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저 사람이 무슨 충격을 받아서 정신이 이상하게 되지 않았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때도 있고, 그랬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맛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이 기쁨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 하지도 못할 뿐더러, 이해 하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믿고 나의 이름이 생명록에 기록된 것에 대한 그 기쁨은 받은자 밖에는 알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꿈의 교회 성도님들이 마지막 때 이런 거짓 가르침에 잘 싸워 이기셔서, 흰돌을 받고 받는자 만이 누리는 이 기쁨을 깊이 간직하셨다가 주님 오실 때 그 감추었던 흰 돌을 주님께 내어 놓는 축복받은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