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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3장 1-27
제가 10초를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본문의 느헤미야 3장을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요. 여러분의 눈에 무엇인가 보이실 것입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아무리 봐도 사람들 이름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어떤 소리가 들릴겁니다. 냄새도 납니다.
굵은 땀방울과 함께 검게 그슬린 얼굴로 성을 쌓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정으로 돌을 쪼는 소리, 삽질하는 소리, 망치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땀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열심히 일한 다음에 둘러 앉아 음식을 먹는소리, 음식을 준비하는 여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2500년전 황폐화된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했던 영광스런 75명의 이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 가족의 대표들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제사장도 있었고,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성벽을 다시 세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중수'라는 단어입니다. 무려 39차례자 나옵니다. 느헤미야 전체의 주제가 '중수' 입니다. 중수라는 단어는 '보수하다' 라는 뜻입니다. 허물어진 곳을 세우고, 망가진 곳을 다시 고치고, 뚫린곳을 막으면서, 벽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중수입니다. 그런데 오늘 느헤미야 3장의 중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몇 가지 배울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일을 분담해서 사역했습니다. 즉 다시 말해서, 은사대로 일하였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백성에게 일을 맡길 때, 독불장군식으로 밀어 부치지 않았습니다. 강제로 떠 맡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 일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10절 보시면 여디야는 기자 집과 마주대한 곳을 중수하였습니다. 23절 보시면 핫숩도 자기집 맞은편을 중수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아사랴가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 하였습니다. 28절에도 제사장들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루살렘성벽재건은 자신들의 집 가까운 부분부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부터, 눈에 보이는 일부터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나 개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기에게 주신 달란트대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신의 집 가까운곳에서 다음사람의 집 까지 중수하는데, 그 다음사람의 집이 멀경우에는 어떻게 했을까요? 20절 보시면 삼배의 아들 바룩이 대제사장 얼리아십의 집이 자신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을 돌아서 힘써 중수 했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이 일이 많다고 불평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준 일이기에 힘써 일했습니다. 내가 많이 하면 그 만큼 다음 사람은 일이 적어지는 원리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감동이 넘치는 현장입니까?
우리 꿈의 교회도 이러한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보다 남을 좀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충만하게 되시길 부탁을 드립니다. 이것이 팀사역입니다. 서로의 약한점을 보완해 주는 사역이었습니다. 약점을 덮어주는 사역이었습니다. 남의 사정을 이해해주는 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에게 유다가 맡고 있는 돈궤를 맡긴다면 복잡한 계산을 싫어하는 베드로는 아마도 머리에 쥐가 났을 것입니다.
아고보와 요한에게 안드레의 사역을 맡기면 예수님께 오는 사람들을 다 쫓아냈을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비서 같은 제자였습니다. 한영혼 한영혼에 관심이 많고 개인전도의 은사를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을 예수님께 소개하는 역할 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같은 성경의 요한과 야고보에게 그일은 맡긴다면, 아마 한 영혼은 커녕, 있는 사람마저 심험에 들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전도하다가 그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멸하시는 어떻습니까? 라고 예수님께 제안했던 형제들입니다. 그러기에 각 사람에게 달란트대로, 성품대로 예수님을 사용하셨습니다.
교회도 그런 교회가 건강한 교회 입니다. 공동체는 한 사람의 탁월함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맡은 사명을 성실히 감당할 때 세워지는 것입니다.
- 제사장들이 먼저 모범을 보였습니다.
본문을 보시면 예루살렘성에 문이 많이 있습니다. 양의문, 골짜기 문, 미문, 똥문, 샘문, 옛문, 어문.등 많은 문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중요한 문이 1절 보시면 양문이었습니다. 제사에 쓸 양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문이었습니다. 이 양문을 누가 중수합니까? 대 제사장 엘리아십이 그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건축합니다.
뒷짐지고 어른 행세를 할 대제사장이 그 바쁜 성전사역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일에 솔선수범하며 앞장섰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말이 성벽 쌓는 일이지 여러분 상상해보십시오. 당시에 제사장은 제사장 가문에 태어나면 평생동안 제사장입니다. 제사에 관련된 일만 하던 대제사장이 한번도 해보지 않은 문을 건축하고 문짝을 달고 망대를 세우는 일에 나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번도 손에 연장을 잡아본적이 없는 대제사장이 손이 돌멩이와 나무를 깎느라 물집이 잡히고 긁히고 벗겨지고 멍들고 심지어는 손톱까지 손상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험한 일에 기꺼이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자신의 지위와 사회적 체면, 자존심을 버리고 뛰어든 것입니다. 그러니1절에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동참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모범을 보이니까 다른 제사장들이 합세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이 동참합니다.
한 사람의 헌신이 이렇게 다른 이들의 헌신을 일으키는 불꽃이 되었습니다.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된 대제사장으로 인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자극과 동기를 부여 받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죽음으로 수많은 인류가 구원의 열매를 맛보게 되었듯이 하나님의 일은 헌신된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오산학교를 설립한 남강 이승훈 장로님이 명언을 남기셨습니다. "지도자가 없느냐? 그러면 네가 지도자가 되라".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문제가 보입니까?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헌신자가 없다,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 전도자가 없다라는 생각을 하십니까? 내가 헌신자요, 기도자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른 교회가 없다, 부흥하는 교회가 없다는 주위의 말이 들립니까? 바른교회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출처] 성경말씀주해강좌 9월10일 느헤미야 강해 3장 (3) |작성자 newink
- 최선을 다하여 일하였습니다.
12절 보시면, 살룸과 그 딸들이 중수 하였다고 느헤미야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살룸이란 사람은 아들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충분히 성벽 재건의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딸들과 함께 무너진 성벽의 한 부분을 담당합니다. 자원하는 심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사람에 의해 세워지는 것입니다.
앞에서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아름다운 헌신이야기는 우리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합니다. 또 살룸의 딸들 이야기 역시 우리를 흐뭇하게 합니다. 따라서 제 설교가 여기서 마치면 그 얼마나 멋진 해피엔딩입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는 한 가지 안좋은 소식을 여러분들에게 끝으로 전해야겠습니다.
5절을 읽겠습니다.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아하! 이게 웬일입니까? 대제사장과 여인들도 다 나서서 헌신하고 있는데, 드고아의 귀족들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귀족들은 권세와 힘있는 자들, 부자들을 가리킵니다. "아! 돌 나르는 그런 천한 일을 우리 같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한것입니다. 못 나고 못 배운 것들, 천한 것들이나 하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결국 이들의 게으르고 비공동체적인 삶이 가져다 준 쓴 결과는 무엇입니까? 첫째,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 전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의 이름조차 거론하고 싶지 않은것이었습니다. 하나님도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공동체를 헤치고, 자신의 교만에 빠져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지 않는 다면 그런 사람의 이름은 생명책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드고아의 귀족들 처럼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드고아 귀족들의 비협조가 낳은 두 번째 결과는 무엇입니까? 27절을 주목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내어민 큰 망대와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오벨 성벽까지 이르렀느니라"
놀고먹는 귀족들 까닭에 충성스러운 드고아 거민들이 이중부담을 지게 된 것입니다. 드고아 거민들은 이미 5절에서 밝히는 것처럼 이미 한 구역을 담당했으나 다시 왕궁의 망대에서 오벨의 성벽까지를 또 담당한 것입니다. 죽어라고 일하게 된 것입니다. 같이 하면 쉽게 될 일을 놀고먹는 사람들 까닭에 헌신된 사람들이 뼈빠지게 고생하게 된 것입니다.
'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 '성경적인 교회'는 놀고먹는 귀족이 없는 교회입니다. 모두다 일하는 교회입니다. 모두다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교회입니다. 줄다리기 때에 응원하는 자와 선수들이 한 마음 되어 '영차 영차' 박자에 맞추어 힘차게 줄을 당기듯이 그렇게 함께, 더불어 희생과 섬김과 헌신의 짐을 나누는 가족들이 모여있는 교회가 하나님이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꿈의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교회가 이렇게 자신의 역할을 분담하며, 모두가 참여하며, 충성하는 교회로 만들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모두다 드고아 귀족의 삶에서 드고아 거민의 낮은 삶으로 내려오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충성스런 모습을 보시고 예루살렘 성벽을 수리하신 것처럼 우리교회의 무너진 부분을 수리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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