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기도
시편 5편
얼마전 일본 의사이자 컨설턴트인 사이쇼 히로시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을 통해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이 하루를 지배하고 하루를 지배하는 사람이 인생을 지배한다'고 역설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 책에 아침형 인간이 되기위해 몇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새벽 5시에 일어나라. 아침에 할 일을 만들어라. 아침식사는 되도록 풍성하게 하라.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성도님들은 아침형 인간입니까? 저녁형 인간입니까? 저는 아침형 인간인데, 저의 집사람과 아이들은 저녁형 인간입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은 새벽기도에 나오셨으니, 아침형 인간일 것입니다.
다윗도 '아침형 인간' 이었던 같습니다. 시편에 무려 21차례나 다윗은 아침을 노래하며, 새벽을 깨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사람들중에 아침형 인간이 좀 있습니다. 우리 지난번에 여호수아서의 말씀을 다룰 때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출애굽기 8장 9장에서도,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도 명령을 내리실 때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에게 가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5편은 '다윗의 아침의 드린 기도' 입니다. 믿었던 아들 압살롭의 배신으로 졸지에 광야로 도망온 다윗이 맞이한 밤은 어떠했을까요? 두려움과 걱정 근심으로 지새우는 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윗이 아침을 맞아 드리는 기도는 평안하고 여유로운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하루의 삶을 부탁하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우리의 40일 새벽기도가 이런 기도가 되기 원합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한밤에 드려지는 기도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하루를 악에서 지켜주신 주님을 묵상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침에 드려지는 기도는 전쟁을 목전에 두고 출전하기 직전의 기도여야 합니다. 이런 기도는 다급합니다. 간절합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직장에서'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악의 유혹에서'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라고 부르짖는 기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이 아침에 드리는 기도가 이런 기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도는 하나님께 어떠한 방법으로 드려졌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였습니다.(Consider)
- 보시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라고 시작합니다.
여기서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는 알겠는데,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라는 말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통촉' 이란 단어를 사극 드라마를 보면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사극을 보시면 신하가 왕 앞에 꿇어 엎드려 '전하, 통촉하옵소서' 라고 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이 통촉은 '다시 한번 신중하게 결정하십시요' 라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심사란 단어는 공동어 번역 성경에서는 심정이라고 표현 합니다. 즉 다시말하면, 나의 심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라는 뜻입니다. 나의 심정를 헤야려 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길 원했고, 자신의 마음을 좀 알아주셨으면 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떨 때는 지금 다윗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고 계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허공에 외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숨소리조차 아니 우리의 생각조차 다 들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시지만 듣지 않겠다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사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죄를 회개하지 않는 모습으로 기도할 때에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 할 때 에 먼저 우리의 죄된 모습을 회개 하신 다음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없어야 기도가 상달되는 것입니다.
- 기도 한 다음에 응답을 기대했습니다. (Wait in Expectation)
기도의 순서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한 다음에 "바란다" 라는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이 바란다는 표현은 멀리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도한 다음에 내 발앞에 바로 배달되는 응답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멀리서부터 하나님께서 환경을 조성하며 일을 이루시는 것을 지켜보는 표현이 강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기도응답'의 표현과는 사뭇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지금도 기도한 다음에 이런한 고백을 한다고 합니다. "주께서 허락하실 때 감사할 것이나 만일 거절하시면 참으리이다. 또한 주께서 연기하시면 나는 기도하고 기다리기를 계속할 것이며 결코 낙심하지 않으리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30장 18절에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습관중에 잘못된 기도 습관이 있습니다. 기도한 다음에 리뷰를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구해서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응답하셨는지 리뷰도 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기도 제목을 수첩에 적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응답이 됐으면 (0) 안됐으면 (X) 이렇게 표시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왜 기도를 한다음 리뷰를 하냐구요?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입니다. 리뷰를 하지 않으면 감사하고 싶어도 어떤 기도를 응답했는지 알 길이 없기에 감사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농부에게 구원을 받지 못한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농부는 매일 아침 들판으로 일하러 나가기 전에 헛간바닥에 꿇어앉아 두 아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온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두 아들도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가끔 보았으나 서로 팔꿈치를 툭툭 치고는 웃으면서 어디론가 말없이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농부가 죽었습니다. 그 후, 두 아들이 헛간을 청소하다가 바닥에 패여 있는 두 개의 홈 자국을 발견했습니다. 이 두 개의 홈은 그들의 아버지가 매일 아침 무릎을 꿇고 앉아 "하나님, 제 아들들을 구원해 주옵소서."하고 애타게 부르짖던 자리였습니다.
두 아들은 빗자루를 내던지고 아버지가 기도하던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참으로 오랫동안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살아 계실 동안 아버지의 기도는 응답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리스도께 바치고자 나아왔습니다." 바로 그 날 두 아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정말 하찮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까?
때로는 우리의 기도를 물리치시기도 하고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응답을 늦추시는 때도 있습니다만 분명히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도 가장 값지고 고마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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