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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3년 3월 6일 수요설교 : 끊을 수 없는 사랑 - 로마서 8 : 31 - 39

by Peartree 2013. 3. 7.

끊을 수 없는 사랑

로마서 8 : 31 - 39

 

지난 시간에는 고난과 탄식과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다 고 말씀 드리면서 장차 나타날 소망을 바라보고 현재의 고난을 잘 통과하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판 이라고 하는 구절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판이 무엇입니까? 하나 밖에 없는 독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사건이 사랑의 결정판입니다. 이보다 더한 사랑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32절에 말씀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말씀합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것은 내가 잘나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련하기 때문에 구원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에 미련한 것을 택하여 지혜롭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와 우리 개신교의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종교는 신을 자신들이 선택을 합니다. 복권을 사듯 자기 맘에 드는 종교를 택하여 종교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선택 받은 사람들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처럼 말이죠. 바울처럼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 오신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찾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크리스천들을 잡으러 가는 도중에 주님께서 찾아와 만나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우리의 의지로 예수님을 믿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찾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경을 만들어 주셔서 결국 만나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그 부르심의 방법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바울처럼 강하게 부르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환난을 통해서 부르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전도자의 입술을 통해서 부르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성령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이셔서 주님을 찾게 하시기도 하십니다.

때로는 한없이 기다리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다가 죽기 전에 부르실 때도 있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믿음이고, 구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데도, 내가 거부하고 응답하지 않으면, 우리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강제로 믿게 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주님께서 사도바울을 강제로 믿게 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강하게 찾아 오셨지요 그러나 ,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은 바울 자신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대해서 반쪽만 아는 사람들은 무슨 말이냐, ‘구원은 선물로 받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도 맞습니다. 그러나 반쪽만 맞습니다. 구원은 철저한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 것을 받느냐 안 받느냐는 철저히 받는 사람 의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선물을 주면 무조건 받습니까? 물론 거의 다 받습니다. 선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받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뒷 바침 하는 구절이  에베소서 2:8절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습니다.

여기서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쉬운 말로, ‘구원이란 선물을 믿음을 통하여 받는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영어 성경은 더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God saved you by his special favor when you believed.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God saved you by his special favor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은혜로 당신을 구원하셨습니다. ‘When you believed’ 당신이 믿었을 때……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값없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 우리의 짧은 머리로는 상상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아들을 죽이시면서 까지 우리를 구원해야 하셨는지,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생각과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아니,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무 대가 없이 우리를 구원 하실 리가 없어, 우리가 구원 받으려면 무엇인가 하나님께 해야만 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저 불교쪽 사람들, 무슬림 사람들, 카톨릭 사람들입니다.

나름대로 지혜롭다고 하며 머리를 써서, 믿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려면, 머리가 좋으면 더 잘 못 믿습니다. 좀 미련해야 예수님을 더 잘 믿습니다.

왜냐하면,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입니다. 계산적으로, 인간의 이성으로 납득이 가야 믿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사람들이고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이성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다는 거예요.

아들을 죽이면서 까지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납득이 됩니까?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련한 사람은 다 개신교 쪽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전에도 말씀 드린 적이 있어요. 한국의 김용옥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석학입니다. 얼마나 똑똑한지 모릅니다. 공자에 대해서, 논어, 맹자에 대해서 이 사람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방면에 석좌 교수니까요.

신학은 어떻습니까? 저도 지금까지 책 한권 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기독교에서 어렵다고 하는 요한복음에 대해서 전집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지식적으로는 성경에도 박식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믿는 것은, 불교쪽입니다.

 

여러분, 미련한 사람이 예수님 믿는 것입니다. 제가 미련하다고 하니까, 기분 안 좋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말이 아니고요,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26-27절 말씀 보세요.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라고 말씀합니다

똑똑하다고 자신이 생각하시는 분들은 제게 말고 바울 사도에게 항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그 사랑을 의심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은 33절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분명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에서 구원을 받았는데도, 세상 사람들이나, 사단 마귀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죄인이라고 고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9절에,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는 어떤 때는 구원의 확신 가운데 찬송하고 기쁘게 살아갑니다. 또 어떤 때는 내가 정말 구원받았나? 내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내가 왜 이 모양으로 사는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믿음이 떨어졌을 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찾아오는 손님이 누구입니까? 어김없이 사단 마귀가 찾아 와서 고발을 합니다. ‘너 정말 구원 받은 사람 맞냐?’ 라고 고소를 합니다.

그때, 39절의 말씀을 통하여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라고 고백하면서 다시 일어나 믿음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며 승리하면서 사는 비결인 것입니다.

우리는 간신히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사람들입니다.

37절을 보세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사도바울이 얼마나 고난을 많이 받으며 살았습니까? 35절에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렇게 험난한 삶 가운데 사도바울의 믿음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그 믿음 가지고 승리했던 것입니다.

 

원하옵기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도, 오래 전에,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그 믿음 붙들고 있다면, 어떤 고난이 와서 넉넉히 이겨 낼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먼 훗날에,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천국으로 넉넉히 들어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