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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3년 1월 30일 수요설교: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 로마서 6:1-14

by Peartree 2013. 1. 31.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로마서 6:1-14

                    

남태평양 한가운데  타히티란 섬이 있습니다얼마나 아름다운지 남태평양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섬입니다. 지금도 이섬을 프랑스 지배하고 있는데, 이 섬이 관광지로 유명하게 된 것이 섬이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이 섬에는 깡패나 도둑도 없고 섬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사는 모습으로 관광객을 감동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 섬은 프랑스에서 예전에 죄인들을 유배시키는 감옥으로 쓰인 섬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800년까지는 지옥과 같은 섬이요 도덕도 윤리도 없고 살인과 마약과 절망이 가득한 땅이었습니다. 그때 그곳에 폭동을 일으켜 체포된 불란서인 죄인 몇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들 역시 그곳에 들어와 아무렇게나 살다가 5명이 죽고 남은 한 사람이 절망 중에 자기 가방을 정리하다가 성경을 발견하게 되었고 성경은 읽는 중에 방탕하고 타락한 자신을 뉘우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그곳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인 1810년에 그 섬에 사람들은 놀랍게 변화되었고 그 섬은 낙원으로 변했습니다. 그 후 도둑이 없는 섬, 싸움이 없고 감옥이 없는 섬이 되었고 온 섬의 주민들은 주일이면 예배하는 축복된 섬이 되었습니다. 섬 전체가 완전히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를 변화의 종교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이렇게 변화된 사람을 가리켜 거듭난 사람 또는 새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전에 거지왕자 라는 영화를 보신적이 있으실 거예요.

옛날 어느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자 왕의 가족이 피난을 가는 과정에서 어린 아기 왕자를 잃어버리게 되죠. 그 후 어린아기 왕자는 어느 빈민촌에서 거지로 자랍니다.

빈민촌에서 거지처럼 10년을 살아온 왕자를 수소문 끝에 찾아서 왕궁으로 데려 왔지만 모든 행동은 거지 그대로였습니다. 왕자의 옷을 입혔으나 겉모습은 왕자인데 말과 행동과 생각은 전부 거지 그대로였습니다. 밤낮 거지처럼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걱정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자의 그 화려한 옷을 입고 마음껏 먹고 싶은 것 먹으면서도 그 얼굴은 항상 우거지상이었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왕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그것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과 습관을 바꾸고 이제 왕의 생각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그는 절대로 왕의 행세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거듭난 후에 새사람이 되었으면 그 신분에 걸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자녀의 걸맞는 신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지 않는 성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한가지 있습니다.

이 순서가 바뀌면 안 된다는 거예요.

먼저는 주의 자녀로 신분을 바꿔야 하고, 그 다음에 그 이름에 걸 맞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자녀로 신분을 바꾸지도 않고, 주의 자녀처럼 살려고 하면, 헛수고입니다.

 

거지가 왕자처럼 살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왕자가 된 다음에 왕자처럼 사는 것입니다. 왕자가 된 다음에는 왕자가 거지처럼 살면 안되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순서를 오해해서 자기의 노력으로 자기의 공로로 주의 자녀가 되려고 했던 적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사람들이 자기의 노력과 행위나 열심으로 구원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노력 행위 열심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서를 잘못 오해한 사람 중에 그 대표적인 인물이 종교개혁자 마틴루터 였습니다. 그는 문학과 법학을 공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을 받기 위해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남들보다 열심히 구원을 받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는 하루에 일곱 번씩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사람보다 예배를 많이 드린 사람은 세상에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머지 시간에는 기도와 금식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지나는 동안 몸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확신이 없었고, 죄의식 때문에 마음은 한없이 괴로웠습니다. 그의 본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그는 거지가 왕자로 신분이 바뀌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날도 어김없이 로마에 있는 스칼라씽따 라는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무릎은 매일 이같이 하여 낙타 무릎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계단을 기어오르다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는 로마서1:17절 말씀에 의해서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뛰어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그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 낙타무릎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결코 인간은 인간적인 공로를 쌓는다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탑돌이를 일만번 한다고 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백번, 천번, 돌부처에게 절을 한다고 구원 얻는 것 아닙니다.  

인도의 고행종교를 보면 숯불을 피워놓고 맨발로 그 위를 걸어가고, 찌는 듯한 햇볕아래 못이 박힌 널빤지 위에 누워있고, 일생 동안 벙어리로 지내기도 합니다.  

성경 어디를 살펴보아도 사람이 이렇게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2:20절을 보시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게 무슨 말씀이냐면  십자가는 주님께서 죽으신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는 십자가와 함께 따라 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다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거듭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이 계속해서 같은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4절에 보시면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라고 말씀합니다. 같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5절에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말씀합니다.

주와 함께 죽은 사람들은, 주와 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으려면 우리의 모든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계속해서 이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8절을 보세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왜 자꾸 너희는 죽었다 라는 표현을 쓰냐면, 우리 안에서 죄가 살아나기 때문에 그런거예요. 11절에도 너희 자신은 죄에 대하여 죽은자 라고 말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너희들이 왜 죄를 살리려고 하느냐? 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왕자의 신분으로 바꾼 너희가 어째서 거지의 신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냐? 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옛날 우리나라에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출가 외인이라 하여 친정에 오는 것을 금기 사항으로 여겼던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이 악습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아 결혼한 딸이 친정에 오거나, 또 가는 것을 별로 좋게 여기지 않는 집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집을 가는 딸을 앉혀 놓고 어머니는 너는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을 하곤 했습니다.

 

예수 믿어 의롭게 된 우리도 이와 매우 흡사합니다. 예수 믿는 순간 시집간 딸과 같이 나의 옛 사람은 죽었습니다. “죄”씨 집안의 사람은 죽고 “의”씨 집안의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죄”씨 집안의 딸이 “의”씨 집안으로 시집 갔으면 이제는 “의”씨 집안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꾸 옛날 씨 집안에서 하던 일이 생각나고 하고 싶어 지면 성경은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죄와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밖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신분을 바꾼 다음에, 신분에 걸 맞는 삶을 살기 위한 몸부림인것입니다. 거지가 왕자로 살기위해서, 거지였을 때 하던 습관과 생각을 버리기 위한 과정과도 같은 것입니다.

 

예전에 한국에서는 검찰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으로 범죄 단속에 들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나를 무너뜨리는 죄와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적 전쟁이라고 하죠.

 

우리는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나태함에 대해서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와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는 미움에 대해서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불신앙과 원망에 대해서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다시는 거지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깨끗하게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주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걸 맞는 삶을 살기 위해서 말이죠.

 

13절에 보세요. “저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마라” 14절에도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라

왜냐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라.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사는 사람들은, 다시는 예전의 거지 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고, 주의 자녀로 왕자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자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산 자라는 하나님을 기뻐해 드리는 삶을 삽니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되지는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비틀거리지만 다시 일어나고 또 다시 일어나서 산 자로서 죄와 싸우며 하나님을 향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이것이 성도의 신앙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에 옛 사람을 못박고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으로서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죄와는 결별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