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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2013년 1월 23일 수요설교: 한 사람으로 인하여 - 롬 5:12-21

by Peartree 2013. 1. 24.

 

한 사람으로 인하여

 

5:12-21

 

톨스토이의 작품 가운데 돌과 여자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혜로운 노인에게 두 여인이 찾아와 가르침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이 두 여인 중에 한 여인은 젊었을 때에 이성관계로 인하여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며 일생 동안 무거운 마음으로 회개하며 사는 그런 여인입니다.

또 한 여인은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았노라고 자부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지혜로운 노인은 두 여인에게 각각 다음과 같이 지시합니다. 첫 번째 여인에게는 큰돌을 하나 주워 오라고 합니다. 그 여인은 노인의 말대로 힘껏 들 수 있는 아주 큰돌을 주워왔습니다. 그리고 또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기는 두 번째 여인에게 그 노인은 작은 돌을 가능한 한 많이 주워 오라고 명합니다. 그 노인의 명대로 그 여인도 작은 돌을 여기저기서 많이 주워왔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그 두 여인에게 모든 돌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합니다. 그러자 큰 돌을 주워온 여인은 아무리 무거운 돌이지만 어디서 가져온 줄 알기에 제자리에 갖다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돌을 많이 주워온 여인은 어디서 주워왔는지 기억할 수 조차 없었기에, 결국 제자리에 다 갖다 놓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죠. 이를 지켜 본 노인은 그 두 여인에게 다음과 같은 아주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깨끗한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죄를 기억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뉘우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죄 의식이 희박해졌다는 데에 있습니다. 큰 죄가 아니고는 죄 짓지 않았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역사를 보더라도 어느 사회, 어느 시대든지 죄가 없는 시대는 없었습니다. 언제나 죄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죄에 대한 의식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죄가 더욱 무서워지고 가혹해지고 잔인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죄의식이 사라졌기 때문 이예요. 죄의식이 희미한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 가운데 우리가 평소에 잘 안쓰는 생소한 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14절을 보시면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라는 말입니다. 왕노릇한다 라는 말은 당시의 사회를 보면 어떤 말인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는 군주사회였습니다. 이 군주사회란 왕이 백성의 주인으로 앉아 있는 사회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주인은 왕이고 나머지 백성은 모두가 노예였던 사회가 그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사망이 왕노릇 하였다 라는 말을, ‘사람들이 죄의 노예가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한번 죄를 짓게 되면 그 사람은 그 후로 계속해서 죄의 노예가 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죄에 대해서 가책을 느끼고 마음 아파 했지만, 점점 죄를 짓다 보니까, 죄의 노예가 되고 결국에는  양심의 가책도 둔해지고, 죄의식이 사라진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하면, 굉장히 듣기 싫어합니다. ‘내가 왜 죄인입니까?   라고 합니다. 그들의 그 말은 나는 큰 죄를 짓지 않았다 는 말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작은 돌을 주어온 여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죄를 짓기는 졌는데, 아주 작은 돌 같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어디서 죄를 지었는지 기억 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가지고 우리는 죄의식이 결여된 사람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여전히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세요.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 사망이 왕 노릇하였다 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지은 죄가 엄청 크죠.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온 인류가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14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 사망이 왕노릇 하였다 라고 말하죠. 아담의 지은 큰 죄 말고 아주 조그마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로 사망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해서 지옥 가기에 충분하지만,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하여 우리는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궁금하지 않습니까? ‘왜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해 내가 지옥에 가야 합니까? 아담만 지옥에 가야죠?’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아담의 죄로 인해서 얼마든지 우리가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대표성의 원리라고 하는데, 이런 말입니다. 한 가정에 가장이 잘못 살면 어떻게 됩니까? 가장 뿐만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까지 같이 힘들게 됩니다. 옛날에 한국은 아버지가 양반이면 아들도 양반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천민이면 당연히 아들뿐 아니라, 대대로 천민이었습니다. 이것이 대표성의 원리 입니다.

역사적으로 히틀러 한 사람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독일이 욕을 먹고 있습니다. 일본도요. 그들이 조상이 저지를 죄를, 그의 후손들이 사과해야 된다고 지금까지 그 난리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 얼마든지 그의 후손들이 그 죄의 영향력 아래 놓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표되는 그 한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죄를 가져온 대표를 아담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이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이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15, 17, 18절에도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 즉 이라고 말합니다.  

19절에는 한 사람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하여 우리가 죄의 종 노릇 하게 된 사실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도요. 여호수아서를 보시면, 한 사람 아간이 도둑질을 해서 보물을 자기집에 감추어 놓았지요. 그 일로 인해 전 이스라엘 전쟁에서 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대표성의 원리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 지옥에 가야만 합니까? 답은 네 그렇습니다.’ 입니다. 내가 받아 드리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정말 너무 하지 않습니까? 라고 하시겠지요. 내가 짓지도 않은 죄를 나보고 책임지라고요? 그런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도요 예수님이 짓지도 않은 죄를 우리들 때문에 책이지셨습니다. 예수님 뿐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책임을 지셨습니다.

 

그래서 너무한 하나님이 아니라, 정말 사랑 많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대표성의 원리 때문에 내가 죄인 된 것이 속상합니까? 그렇다면 그 대표성의 원리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신 그 대표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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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아담은 죄를 세상에 가져온 대표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예수님은 은혜를 가져온 대표라고 15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아담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 사망이 왔는데,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생명이 왔다고 17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아담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었는데, 신약의 예수님께서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고 19절에 말씀합니다.

21절에도. 아담의 죄로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었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아담 때문에 우리가 지옥에 가게 되었다고 너무 억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된 것을 믿고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할 수 있고,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한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가? 원하옵기는 여러분 한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교회가 복 받기를 소원합니다.

 

이 세상에서는요,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사람만 감옥에 보내거나 그 사람만 벌을 줍니다. 이것이 세상의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가 그의 후손에게 전가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메릴린 히키 라는 분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러면 너무한 하나님 아닙니까? 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내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만대 까지 복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0:5-6절을 보시면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 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죄는 3.4대 물으시지만, 은혜는 천대  만대까지 베푸시는 하나님이시죠.

 

그렇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담 때문에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하나님 원망하지 마십시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원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아담이 가져온 죽음과 전혀 상관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만대 까지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이 아니라, 영원토록, 끝도 없이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 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사랑 많으신 하나님이신걸 깨달으시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