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를 세우는 기준
행 6:1-7
하늘을 날라가는 기러기 떼를 보신적 있으시죠? 이들이 날아갈 때는 꼭 V 자 형태를 그리며 날아갑니다. 왜 그렇게 날아갈까 연구를 해봤더니 혼자 나는 것보다 71%를 더 날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떼를 지어 날 때 힘이 덜들고, 덜 지친 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협력이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 협력의 원리가 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여러명이 함께 협력하여 교회를 세워나가면 71%는 힘이 더 나고,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어서 그 힘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성도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만큼 교회가 힘이 있다.’ 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소수의 무리가 모였을 지라도, 그 모인 무리들이 함께 협력하고 있는가를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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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떼 이야기를 더 하려고 합니다. 기러기 떼 중에 어느 포지션이 가장 힘이 들 것 같습니까? 그야 물어보나 마나, 제일 앞에 나는 기러기가 제일 힘들다고 합니다. 제일 앞에 나는 기러기를 ‘인도자 기러기 또는 지도자 기러기’ 라고 부르는데, 참 재미있는 사실은, 그 인도자 기러기는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앞에 나는 인도자 기러기가 힘이 빠지면, 바로 그 뒤에 나는 기러기가 앞으로 나오고, 또 제일 앞에 나는 기러기가 힘이 빠지면, 그 뒤에 나는 기러기가 앞으로 나오고 해서, 목적지까지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어디입니다. 주님 계신 저 천국입니다. 교회는 저 천국으로 함께 협력하며 날라가는 기러기 떼 같은 그룹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러기 떼도 인도하는 기러기가 여러 마리가 있듯이, 교회에도 여러 명의 리더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은 ‘제직’ 또는 ‘직분자’ 라고 부르는데, 그 포지션은 인도자 기러기 만큼이나 힘이 드는 포지션인 것입니다.
그래서 직분자란? 말 그대로 일하는 자리고 힘든 자리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교회 생활하기 아주 편하고 좋습니다.” 하는 직분자가 있다면, 일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신경 쓸 일도 많고, 챙겨할 할 일도 많다면, 직분을 감당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렇게 열심히 사명 감당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열심히 일하며 사명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아픔을 겪는 일들이 생겨나는데, 왜 그렇습니까?’ 라고 궁금해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건요, 지상의 모든 교회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요. 완벽한 목사도 없고, 완벽한 장로 집사도 없고, 교회도 없습니다. 모두가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교회에 분쟁이 생길 수 있고,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거의 완벽하다고 하는 예루살렘 교회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그렇게 은혜롭던 예루살렘교회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분쟁이였냐면, 당시의 예루살렘교회 안에는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이 참 힘든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구제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기껏 해봐야 먹을 양식과 입을 것을 나누어 주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1절을 보시면 “헬라파 과부” 들이 구제의 대상에서 자주 제외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아니 교회 안에서도 인종 차별이 있냐? 왜 우리는 이방인이라고 해서 구제도 안 해주고 히브리 사람들만 사람이냐?’ 그러면서 교회 안에 원망과 불신과 분쟁이 가득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교회 안에 기도 많이 하는 사람 10 명만 있으면 교회가 평화롭고 은혜스러워 지지만 반대로 교회 안에 원망하고 불신하고 분쟁을 일삼는 사람 10 명 아니라 3명만 있어도요. 교회에 은혜가 떠나 가면서, 썰렁해 지며 결국엔 교회가 흔들흔들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은혜로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곳에서는 성령님이 떠나가시기 때문입니다.
갈 5:15 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째서 사도들이 목회하는 예루살렘 교회에 이런 분쟁이 일어나게 되었냐면, 한 마디로 일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의 수를 6만-10만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당시에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 딱 하나였습니다. 하루에도 회개하고 3000명씩 돌아왔다고 사도행전에 기록하고 있는데, …생각해 보세요. 제자들 12명이서 감당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 준비하랴, 기도하랴, 예배 준비하랴, 이것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성도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 까지 하다 보니까, 양식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나오게 되고, 서비스가 좋지 않느니, 음식 맛이 좋지 않느니, 불평이 점점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 2절에 사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다” 라고 말합니다. 안되겠다. 일할 직분자들을 세워야 겠다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운 것이 7집사입니다. 이들이 직분자들이고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초대교회 시대에 세워진 직분자들을 살펴보며 어떤 직분자가 되어야 하는지 살펴보며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3절에 보시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세웠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혜로운 행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는 사람을 세웠나면, 지금 교회 안에 불평이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분쟁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는 거예요.
‘누구는 쌀 한부대 주고, 누구는 두 부대 주고, 아니 목사님은 저 사람들만 신경써주고, 우리에게는 무관심하고, 우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런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말이 많으니까, 차라기 구제사역 없애는 편이 낫다’ 라고 하며, 그 돈으로 다른 사역을 하자,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사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시끄럽다고 중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불평을 잠재우며, 원망의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이 일을 전담할 지혜로운 집사들을 세운것입니다. 이것이 원래 집사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는 사람이 제격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집사들은요, 교회 안에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을 것 같으면, 다가가서 말씀으로 권면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사랑으로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직분자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성도들보다 직분자 분들이 더 시험에 들고, 소리를 높이며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물론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직분 맡으신 분들의 입에서 ‘아, 힘들다.’ 라는 말이 나오면 참 열심히 하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주님 힘들어요’ 라고 하며 힘든 심정을 말해도 괜찮습니다. 그것까지 말하지 말라고 하면 공산당이죠. 그런데 직분 감당하다가 시험에 들고, 넘어지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다시 보세요. 우리는 이 십자가를 피할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직분자들을 어디에서 택하라고 말씀합니까?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서 택하라고 하지요. 세상의 잘하는 사람 데려올 생각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지식이 많거나, 유명한 사람 찾아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택하여 세우라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세우라는 거예요. 성도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교회와 성도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는 사람을 세워, 교회안에 있는 분쟁을 잠재우며,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산 교회는 든든히 세워갔다는 것입니다.
2) 두번째로, 초대교회의 직분자들은 칭찬 받는 사람들 중에 세웠습니다.
한국어 성경은 ‘칭찬 받는 사람 일곱’ 이라고 번역해 놓았는데, KJV 은 ‘Honest report’ 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정직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는 ‘Good men’ 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니까, 선한 사람, 착한 사람 중에 택하였습니다.
당시의 사도들이 왜 이런 기준을 정했냐면, 양식과 입을 옷을 골고루 잘 나누어 주기 위해서 그렇게 정한 거예요.
당시에, 과부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는 역할로 시작된 것이 집사의 직분이었는데, 평소에 친한 사람이라고 해서 더 주고, 또 친하지 않다고 해서 덜 주고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직하고, 선한 사람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차별하지 않을 사람들 일곱이 당시의 집사님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헬라파 과부들이 원망을 하게 된 것이, 차별을 당해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직분자들은 성도를 똑 같이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사람들이 왜 교회로 많이 오게 되었냐면, 특히 여자들이… 당시의 사회는 차별이 심한 사회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괄시 천대 받고, 상류 1% 지배하는 사회가 그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 보니까, 가난한 사람도 귀한 사람이고, 어린아이, 여자들, 특히 오늘 본문의 과부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펴고, 섬기는 것을 보니까, 너무나 좋은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는 집사님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섬기니까, 천국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우리 직분자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렸는데, 성도들님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리기 원합니다.
당시에 헬라파 과부들이 차별을 당해서 사도들을 원망하고, 그래서 교회 안에 분쟁이 일어났는데, 왜 교회에서 이런 분쟁이 일어나야 합니까?
은혜가 떨어져서 그런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는 구제라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생겨나고, 교회에서 구제 사역을 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쌀 한 주먹 줘도 감사, 때로는 받지 못해도 감사, 양식을 얻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말씀 들은 걸로 만족하며 기쁨으로 집에 돌아가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 .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니 교회에서 이것 밖에 주지 못하나, 나에게 더 큰 것을 줄 수 있을 텐데, 어! 나보다 저 사람이 더 많이 받아가네,’ 그런 생각이 들어오면서 은혜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불평거리가 보이기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김치 깍두기에 밥만 주어도 점심이 참 맛있었는데, 불고기가 나와도 시쿤둥 합니다. 예전에는 반찬에 머리카락이 전혀 안 보였었는데, 은혜가 떨어지니까, 머리카락은 왜 그렇게 잘도 보이는지,
여러분 ! 은혜가 떨어진 사람 찾으라면 찾을 수 있습니까?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매사에 불평이 많은 사람이 은혜 떨어진 사람입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려면 쓰레기통 같은 성도가 많아야 한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쓰레기통은 모든 더러운 것들을 먹어 먹어버리죠. 그래서 쓰레기통 주변엔 더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쓰레기 통이 많은 교회가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은혜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쓰레기통이 없는 교회. 그 주변은 온통 원망과 불평의 쓰레기로 가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여러분은 지금 우리 교회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은혜가 떨어져서 원망과 불평만 만들어 내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교회에 쓰레기통이 되어서 사람들의 원망과 불평을 가슴으로 주어 담아 하나님의 교회를 은혜롭게 하는 은혜 받은 성도입니까 ?
여러분 아무리 은혜로운 교회라 할지라도,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그 대단한 예루살렘 교회에도 은혜가 떨어져 원망과 불평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꿈의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원망과 불평이 보이기 시작하면, 아 ! 내가 은혜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구나! 생각하시고, 처음 믿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은, 이런 성도님들이 보이면 말씀으로 권면하고, 사랑으로 위로하며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목적지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죠.
오늘날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세상과 마귀는 어떻게든지 교회를 흔들어 허물어 버릴려고 방해를 하고, 흩어 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어떻게 했습니까? 원망하고 불평을 통해 교회를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혜롭고, 정직한 집사들을 세웠습니다.
이 집사님들이 천국에서 상급이 클 것입니다. 한 영혼을 세우는 사역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한 영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 일을, 이어 받아서 하는 사역이 한 영혼 세우는 사역이고 그 사역을 집사님들이 이어 가는 것입니다.
원하옵기는, 이렇게 주님 보시기에 칭찬도 아끼지 않으실 만한 직분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래서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왕성해 가고, 제자의 수는 심해 더해가는 축복된 일들이 교회에 많아 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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