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여호수아 1: 1-9
돌다리 밑에 사는 거지 아들이 어느 날 동냥하러 다니는 동네에 밤중에 불이 났습니다.훤하게 비쳐오는 불길을 보면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우리는 불날 집이 없어 좋다" 하니 아비가 하는 말."애비 덕인 줄 알아라" 라고 했다는 거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출애굽한 이래로 40년 동안 집도 없이 광야에서 천막 하나에 의지해서 살았습니다. 그들의 평생의 소원은 내집마련이 그들의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눈앞에 있는 요단강만 건너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1절 - 가나안 입성을 앞에 두고 그들의 지도자 모세가 죽은 것입니다. 40년을 앞에서 이끌었던 큰사람이 지금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리더가 죽어도 하나님의 계획은 전혀 차질을 빚지 않습니다. 한사람이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해서 또 다른 사람을 통하여 계속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사명은 요단강 앞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통과 하면서 수많은 전쟁도 치루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한 리더는 목자다운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는 40년 이스라엘의 광야에서 그들을 돌보기에 아주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그전에 이미 40년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요단을 건너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서를 읽어 보시면, 가나안 땅에 사는 모든 부족들을 다 쫒아내야 하는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엄청난 전쟁들을 치뤄야 하는 운명에 남았습니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여호수아는 장군이요, 위대한 전략가였습니다. 그 시대에 꼭 필요했던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모세의 사명은 백성을 돌보는 사명이었다면, 여호수아의 사명은 땅을 빼앗아 12지파에게 그 땅을 나누어 주는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은 바뀌지만 변함이 없습니다. 3절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뭐라구요? 모세에게 주었던 하나님의 계획이 여전히 여호수아에게로 이어 진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몇가지 약속을 해 주시면서 요단을 건너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약속을 해 주셨을 까요?
1. 5절 –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 하리니”임마누엘의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 이 축복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모든 것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빠와 어린 두 자녀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큰아이가 동네 구멍가게를 발견하고 아빠에게 돈을 달라고 졸라댑니다. 아빠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자, 큰 아이는 돈을 들고 손살같이 구멍가게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빠의 손을 잡고 가는 작은 아이는 평화로워 보입니다. 아빠가 묻습니다. 너는 오빠처럼 가게로 가고 싶지 않니? 그러나 그아이의 대답 “ 저는 아빠만 있으면 되요”그리고 천천히 아빠의 손을 잡고 구멍가게로 들어간 작은 아이는 큰아이보다 더 많을 것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아이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하나님 같은 존재 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모든게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에스더가 어렸을때 우리 아버지는 다 잘한다고 자주 말함, 슈퍼맨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환상에서 깨어 났습니다. 제가 못해주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발견 한 것입니다.)
우리의 아빠들을 그렇습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못하실게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 같은 축복의 약속을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만 이런 축복의 약속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39장 보시면 요셉이 이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창세기 39장 23절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음모에 의해, 간통죄라는 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니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 28:20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들과 아버지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말씀 하시고 파송할 때 이들이 이제 세상으로 나아갈 때 얼마나 불안해 하겠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기한은 세상 끝날까지 입니다. 여러분 참 든든하지 않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이 약속이 우리를 세상에서 능히 이기는 자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개 키우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큰 개들보면 무섭습니다. 그러나 그 개들이 자기의 주인과 함께 있을때는 잡아 먹을 듯이 짖어댑니다. 그런다가 자기의 주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손살같이 도망갑니다. 하물며 개도 그러는데, 우리 뒤를 봐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잊지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약속하신 땅을 얻게 하신다. (물질의 축복)
가나안 땅은 430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으면 그 소유권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430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지체되었습니까? 두려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로 있을 때 하나님은 가나안땅으로 가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살이 할 망정 광야고 나가 죽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모세 선지자를 보내 애굽에서 그들을 빼내 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도 너무나 두려워 그들은 다시 우리를 애굽으로 보내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우니 하나님은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두려움은 여전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정탐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냅니다. 정탐하고 온 그들이 뭐라 보고를 합니까?” 민수기 13장 32-33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때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40일 탐지한 날을 계수하여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하여 40년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 요단강 앞에 서기까지 40년이 걸린 이유는 바로 두려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명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히브리어로 ‘하마츠’ – ‘무릎에 힘이 있는 상태로 있어라’ 라는 뜻입니다.
기도온이 300 용사를 뽑을 때 하나님은 두려워 하는자를 먼저 집으로 돌려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용사들로 시냇가에가서 물을 마시우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물을 손으로 떠서 먹은자는 300명 나머지는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릎을 꿇고 마신자는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전쟁에 나가기 앞서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여 무릎이 힘이 있는 상태로 있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1967년 이스라엘에 6일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제 3차 중동 전쟁이라고도 합니다. 중동의 모든 국가들이 연합으로 이스라엘과 싸움을 했는데,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6일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죠. 그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탈환하면서 그 중앙에 있는 무슬림들의 3대성지라 불리는 황금돔 사원 없애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황금돔 사원을 없애면 중동의 국가들이 다시 쳐들어 올까봐 통곡의 벽까지만 차지하고 바고 그 안쪽의 황금돔 사원은 내어 주었습니다. 그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그 땅을 정복했어야 했습니다.
이 땅은 영적인 전쟁터 입니다. 주님은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들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마시고 주님이 주신 땅을 차지하는 즉,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람들로 이 땅을 채우는 역사에 쓰임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3. 네가 형통 하리다 (형통의 축복) : 그러기 위해서는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하며,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켜 행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일고, 묵상하고,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지키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씀을 꼭 지키겠습니다 라고 다짐한 후, 오늘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까? 하며 성경을 딱 펼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마태복음 27장 5절 “가룟유다가 스스로 목메어 죽은지라” 이사람이 깜짝 놀래서 다시 한번 펴보자. 그리고는 다시 펼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가복음 10장 3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그러니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오늘은 재수가 없는가 보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보자 하고 성경책을 펼쳤습니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요한 13장 27절.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말씀은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일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이들이 왜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합니까? 말씀을 지키려다가 목베임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짐승과 우상에 경배하지 말라니, 그 말씀을 지키다가 죽은 것입니다. 손에 표를 받지 않으려다가 죽어서, 천년동안 왕노릇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제일 마지막 장은 “계 22:7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결론은 맺겠습니다.
오늘 여호수아가 들어가야만 하는 가나안 땅은 영적으로 천국이라 말합니다.
요단강은 죽었다 살아나는 침례를 상징합니다.
40년 광야 생활은 우리의 이 땅에서의 나그네 삶을 말합니다.
성도라면 반드시 건너야 할, 그리고 차지해야만 할 그 가나안, 꿈에도 그리던 주님계신 나라 천국……….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은 항상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약속하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대로 지켜 행하면 여러분의 삶가운데 형통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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