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끝까지 따라가는 신앙 - 요한복음 18:15-27

by Peartree 2012. 12. 26.

끝까지 따라가는 신앙

요한복음 18:15-27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을 다른 말로 하면, 소신을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요. 주인으로 믿고, 따라 가기로 작정했다면, 끝까지 소신을 지키며 가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끝까지 가야 믿음이지, 중간에 그만 포기하면, 아니 간만 못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끝까지 소신을 지키고 간 사람을 가지고 '믿음을 지킨 사람'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포기한 사람을 '타락한 사람' 이라고 말합니다. 좀 부드러운 용어로는 '믿음에서 탈선한 사람' 이라고 말합니다. 탈선이 무엇이니까? 달리는 기차가 선로 밖으로 이탈해서 떨어지는 것을 탈선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기차가 아무리 좋은 기차라 할 지라도, 목적지 까지 갈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끝까지 소신을 지키지 못하면, 탈선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에서 탈선했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차를 다시 선로위에 올려 놓으면, 다시 달려가는 것 처럼, 믿음에서 탈선했을 지라도, 다시 회개하고, 선로위로 다시 들어오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회개' 라고 말합니다.

 

오늘 보문을 보시면, 끝까지 소신을 지키지 못한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이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 란 사람입니다.

 

이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까지는 소신을 잘 지킨 제자였습니다. 어느 정도로 소신을 지켰냐면, 한번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온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은 주를 다 버릴 찌라도, 저는 버리지 않겠습니다' 라고 호언 장담을 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주 소신이 굳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신념이 강한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5절을 보시면,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 갔다" 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의 말처럼, 정말로,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 이 두 사람만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른 제자' 는 요한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 제사장의 뜰 까지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베드로는 여기서 멈춰버립니다.

베드로가 지킬 수 있는 소신은 여기까지 였습니다. 더 이상은 감당 할 수 없었던 거예요. 혹시나, 저들이 나를 알아보기라도 하는 날에는, '나는 죽음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라는 두려운 생각에 더 이상 따라 갈 수 가 없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죽으시는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갔었는데, 이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토록, 소신 있었던 베드로의 발목을 잡았습니까? 주와 함께 죽을 준비도 되어 있다고 호언장담 했던 베드로였는데, 왜 그렇게 '힘없는 여종' 앞에서 조차, '나는 아니라, 나는 예수를 모른다. 예수가 누구냐 ? 라고 부인하고 돌아서게 했습니까?

 

오늘, 그 이유를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1. 첫째로, 베드로가 끝까지 소신을 지키지 못한 이유는요, 자만 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너무 자신만만했습니다. 자신만만한 사람들은요, 보통 자신의 약점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보면, 늘 잘난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연약하고, 자신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늘 하나님께 무릎 꿇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자만한 사람은, 도움의 손길을 구하지 않습니다. 나 혼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합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끝까지 소신을 지키지 못했던 이유입니다.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은 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라고 자신 만만하게 대답했을 때, 주님이 뭐라고 하신지 아세요?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에, 베드로가 겸손하게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상황을 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 내가 지금은 주님을 끝까지 따라 갈 것 같지만, 그때 가서 상황이 달라지면, 예수님을 부인할 수 도 있겠다.' 라고 생각하고, 성령님 의지하고, 그때가 되면, 담대한 마음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소신을 지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말을 귀담아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2:61-62절을 펴보겠습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Then Peter remembered" 라고 영어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경고의 말씀은,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자신 만만 했거든요. 주님을 부인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는 실패하고 나서야, 그때서야 '생각' 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넘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면서, 조심조심하며, 그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21세기 최고의 전도자라고 할 수 있는, D.L.무디 목사님이 미국의 어느 중소도시에서 전도대회를 인도하게 되어, 대회 며칠 전에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다음날, 무디가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을 보는데 머리기사로 '교만한 전도자 무디'라는 기사가 실렸 더랍니다. 왜냐하면,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해서 그렇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집회를 가시면,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일로, 화가 난 기자들이 그런 기사를 쓴 것입니다. 그 기사를 보고 무디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잘 모르는구먼. 나는 이 기사보다 훨씬 더 교만한데, 이만하면 잘 써줬데."

이렇게 자기 자신을 작고 연약하게 여기는 것이, 끝까지 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 엄청난 사도바울요도, 늘 자신은 작고 연약한 자라고 여기며,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쓰러질까 조심하라' '버림이 될까 조심하라' 라고 하면서, '나는 끝까지 경주했다.' 라고 그의 말년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끝까지 따라시려면, 첫째는,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롱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두번째로, 베드로가 끝까지 소신을 지키지 못한 이유는요, 미온적인 태도입니다.

 

미온적인 태도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태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가고, 말려면 말든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술에 물탄듯, 따라 가는 둥 마는 둥 했다는 거예요.

 

본문 16절을 보시면, "베드로가 문 밖에 서 있는지라"

지금 상황이 이런 상황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잡혀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따라가는데, 어디로 예수님을 끌고 들어가냐면, 대 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대제사장의 집안은 지금, 분위기가 아주 살벌한 상태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생각했을 지 모릅니다. '내가 지금 이 문 안으로 들어가면, 어쩌면 살아서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아마, 이런 생각을 계속해서 하며 따라갔을 거예요. 성경을 찾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2:54절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 갈 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그런 생각을 하며, 따라가니까, 발걸음이 느려진 것입니다.

오고 싶지 않은 교회 오려면, 억지로 끌려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라 가긴 가는데, 앞에서, 요한은 바짝 따라가고 있는데, 명세기 수제자인데, 도망가자니, 체면이 있고, 따라가자니, 죽을 것 같고, 그러니까, "멀찍이 따라가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할 때, 베드로처럼, '멀찍이 거리를 두고, 신앙 생활'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자니, 부담이 되고, 그렇게 안 하자니, 주님께서 징계를 주실 것 같고 하니까,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신앙 생활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18절을 보시면, 지금 베드로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불을 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따라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어울려 살면서,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습니까?

아마도, 미국 같은 경우에도,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라고 답하는 사람의 절반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몸은 세상에, 마음은 예수님께………

 

이런 사람들은, 마귀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공격을 합니다. 오늘 베드로를 향하여, 세번씩 공격하듯이, 넘어질 때까지 공격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 부인하고서는, 밖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가까지 따라간, 요한은 십자가 밑에가지 가고,

멀찌기 따라간, 베드로는, 더 멀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도, 미온적으로 하면, 넘어질 활률이 높기 때문에,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도,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롱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마귀가 틈타지 않습니다. 멀어질 때 마귀가 틈타는 거예요.

 

오늘 베드로는, 자만하지 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갔더라면, 실패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오늘의 실패를 발판 삼아, 요한 복음, 21장에서는, 물고기를 잡다가, 누가 '예수님이시다' 라는 소리에, 배가 육지에 닿기도 전에, 물로 뛰어들어, 예수님께 달려 나오는 열심의 사람으로 변화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엄청난 사명을 그에게 주시죠.

 

그래서, 우리 사랑하는 꿈의 교회 성도님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가까지 따라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