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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창고/ 비전나리의 설교

꿈과 비전 - 막4:30-32

by Peartree 2012. 12. 26.

꿈과 비전

막4:30-32

 

저희교회 이름이 꿈의교회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꿈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꿈이란, 한밤중에 꾸는 꿈이 아니고, 비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밤중에 꾸는 꿈은, 잠에서 깨어나면, 물거품처럼 사라지지만, 비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전이라고 하면, 비전 그 너머에, 성공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비전의 사람이 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전에 대해서 아주 초보적인 생각입니다.

성경에 대표적인 'visionary' 는 요셉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고, 부자가 된 것 만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비전은,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고, 부자가 되라는 비전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45:7,8절을 보시면, 요셉이 자기의 비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곳 이억 만리 타향 땅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부자로 살기 위해서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다만, 성공은,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꼭 성공하는 과정만 거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마다 이 과정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성공하는 과정 건너 뛰었어요. 그리고, 고난과 핍박만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항상 성공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비전을 위해서 살면, 성공하는 삶이 아닐 수도 있는데, 왜 우리가 비전을 따라가야 합니까? 물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그 해답으로, 잠언 29:1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묵시가 없으면, 방자히 행한다" King James Bible 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비전은 따라 살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야먕의 노예가 되어서, 세상의 헛된 것을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전을 따라 살면, 최후의 복은, 영혼의 복인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비전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건 하나님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진지하게 물어보십시요.

'하나님, 제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저를 통해서 어떤 일들을 하기 원하십니까?' 라고 물어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영적인 고민' 이라고 합니다. 이런 영적인 고민 한번 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예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해답을 찾으려고, 기도합니다. 기도중에 혹시 하나님이 말씀 하실까? 기대하면서요. 또 말씀을 보는 것입니다. 혹시 말씀을 읽는 중에 깨닫게 하실까?

 

세상에는 알파벳 'S' 자로 시작하는, 3단계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번째, 단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첫번째 단계는, Survival level 단계 - 생존을 위해 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그냥 무의미하게 하루 하루 쾌락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Success level 단계- 성공을 위해 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성공이 목적입니다. 재물과 지위 명예 쾌락을 삶의 목적과 가치로 삼는 사람이죠.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이 level 에 속합니다.

세번째 단계는, Significant level 단계-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요셉처럼, 감옥에 가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요셉처럼, 이억만리 타향 땅에서 죽어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누명을 써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비전만 이룬다면, 그런 것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바로 이 세번째 단계의 사람들입니다.

 

'윌리엄 패터'라는 사람이 쓴 글 중에 아주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인공인 소년은 어느 날 길에서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평생 땅 만 보고 살아가리라' 그리고는 정말로 땅만 보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일평생 동안 땅에서 주운 것이 단추 2만 9천 5백 19개, 머리핀 5만 1천172개 그리고 동전이 수 천 개였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줍느라고 그는 일생 동안 푸른 하늘이나, 아름다운 꽃들과 새들과 자연을 볼 기회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꿈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비극적인 일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겨자씨 하나가 땅에 심겨졌습니다. 그리고 그 겨자씨는 자라나서 나물이 됩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나물 보다 더 커다란 나무가 됩니다. 그래서 가지를 펼치게 되고, 결국엔, 울창한 나무가 되었을 때, 새들이 날아와서 둥지를 트고, 그래서 이 나무는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꿈꾸시는 비전이었고, 하나님의 비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 속에서 찾아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려면, 작은 사람이라고 부끄러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땅에 무엇을 심었습니까? 겨자씨 한알을 심었습니다. 겨자씨 두알도 아니고, 딱 한알을 심었습니다. 여러분 겨자씨 한알이 얼마나 작은지 아십니까? 보통 먼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유심히 관찰해야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 먼지 같은 이 겨자씨를 주님은 무시하지 않고 땅에 심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꿈과 비전이, 겨자씨 같이 작다 할지라도, 부끄러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나는 그렇게 작은 것도 심는다' 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주의 일을 할 때, 큰일을 하려고 합니다. 거창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일 그것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작은 것, 심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작다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업신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래 전 영국의 어떤 교회에서 5살 된 한 소년이 헌금 시간에 헌금을 하는데 1페니를 했습니다. 영국에서 발행하는 동전 중에 가장 작은 액수입니다. 그리고 이 소년은 예배가 마쳐진 후, 목사님에게 찾아가서, 오늘 제가 1페니 헌금을 했는데, 그 돈으로, 꼭, 신약성경을 사서 인도에 보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 5살 된 소년의 뜻이 너무도 귀하니까, 자신의 돈을 보태서, 아주 작은 신약성경 한 권을 사서 소년보고 사인을 해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그 책을 인도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 소년도 잊었고 목사님도 잊었습니다. 20년이 지난 후 이 목사님이 인도에 들러 어떤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참 진지하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이 마을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까 ?"

그때 뜻밖에도 한 선교사가 이 마을을 찾아와서 작은 신약성경 한 권을 건넨 것이 그 마을의 복음화의 기초가 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성경을 가져왔습니다. 다 떨어지고 남루한 자그마한 신약성경의 마지막 표지에서 20년 전 자기 교회의 5살 된 어린 소년의 사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역사는, 트럼펫을 울리는 거창한 선전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작은 겨자씨 하나로 인해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작은 것에 더 기대를 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 하였다.' 라고 말씀하시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과부의 두 렙돈 헌금에, 더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마 25:40절에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작은 것이라고 해서, 너무 우습게 여기지 마십시요. 주님은 그 작은것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거지 나사로를 귀하게 여기시고 , 간음한 한 여인, 문둥병 걸린 한 사람, 38년 동안 걷지 못한 한 사람, 작은 도시락을 들고 있던 어린 아이 하나. 실패하고 좌절한 어떠한 인생도 주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사람의 눈에는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주님의 눈에는, 우리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보이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열두제자들이 어떠한 사람들이었지 아세요. 앞에서 말씀드린, 세단계의 사람들 중에, Survival People 이었습니다. 하루 하루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비전은 꿈도 꾸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 모아놓고, 지금 '겨자씨 한알의 꿈'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 모아놓고, 비전을 말해야지, 전혀 가망성이 없는, 이 무식한 어부 열두명을 모아놓고, 비전을 이야기 하고 계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비전은, 너희들 처럼, 작고 연약한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의 비전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2000년 동안, 지금까지 이루어 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이, 작고 연약하다고 해서, 부끄러워 하거나,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갈 수 있나? 걱정하지 마십시요.

씨가 땅에 심겨지면, 자라나듯이, 그 비전 여러분의 마음속에 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고,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때로는, 필요한 것을 그때 그때 공급하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이라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요. 우리 주님의 눈으로 보실 때에는 그 작은 것이, 너무도 크게 보인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려 한다면, 그 비전을 통하여 우리의 이웃이 축복을 받는 것을 꿈꿔야 합니다.

 

오늘 본문, 32절을 보시면, 겨자씨가 심긴 후에는, 자라서 거대한 겨자 나무가 됩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큰 가지가 그늘을 만들고, 그 그늘에 공중의 새들이 날아 든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면, 그 사람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만 복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고 나니까, 누가 복을 받습니까? 온 애굽이 복을 받습니다. 7년 흉년으로 다 죽을 판이었는데, 요셉 한 사람으로 인하여 온 애굽 사람들이 생명을 건졌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고 나니까, 온 인류가 지옥으로 떨어져야만 했는데, 천국으로 들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알의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니까, 누가 덕을 봅니까? 새들이 덕을 봅니다.

 

옛날에 한국 사람들의 옷은 베옷이라, 아무리 껴 입어도 겨울이면 춥게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중국 원나라에서는 목화가 재배 되어서, 솜으로 된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외국으로 목화씨가 밀반출되지 않도록 국경의 검문검색을 심하게 했습니다. 한국의 문익점이라는 사람이 중국에 갔다가, 이 목화솜을 보고는 비전을 꿈꾸었습니다. '이 목화를 고국에서도 재배를 한다면, 고국의 백성들이 겨울에도 춥지 않고 지낼 수 있을 텐데.' 그리고는 목화씨를 몰래 짚신에 숨겨서 들여오다가 발각돼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붓 뚜껑 속에 목화 씨앗 3개를 숨겨서 들여와 고향인 경남 산청으로 내려가 장인과 함께 씨앗을 정성껏 심었습니다.

3개 중 하나는 죽은 씨앗이라 싹이 나질 않았고, 1개는 얼마 후 죽었습니다. 나머지 1개가 열매를 맺고 종자를 퍼뜨리기 시작해서 10년도 못되어 온 나라 안에 목화꽃이 만발하게 되었고, 겨울이면 헐벗고 추위에 떨던 백성들이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비전으로 인하여, 온 나라가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신다면, 왜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시는 지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만 잘 살라고 복을 주시는 건지, 아니면, 나로 인하여,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게 하시려는 건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겨자 나무가 자라나 울창한 나무가 될 때, 새들이 날아 왔습니다. 그들에게 쉴 곳을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비전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구원의 복음 전해주고, 연약한 사람들 세워주고, 위로하는 것이, 하나님이 꿈꾸시는 비전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성공관' 입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기독교의 성공은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적인 성공은 내가 열심히 벌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공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면, 그 축복으로 이웃을 섬기는 것이, 기독교의 성공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창세기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전무후무한 축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렇게 축복하셨는지 아세요. 아브라함이 잘나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 후손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그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되라" 고 말씀하신 것은, '너는 축복의 통로가 되라' 는 말씀입니다. 즉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너에게 복을 주면, 너는 그 복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흘러 들어가는, 그런 축복의 통로의 사람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삼중고를 겪었다고 하는 헨렌켈러, 그녀는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세가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축복과 성공과 전혀 거리가 먼 사람으로 태어났어요. 세상에서 정말 작고 연약한 사람이 이 여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헬렌켈러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 합니까?' 그 질문에, 헬렌 켈러는 이런 유명한 말을 합니다. '시력은 있으되 비전이 없는 사람이 제일 불행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꿈이 없는 사람입니다.

불행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비전에 없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말씀은,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인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심으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작다고, 하찮게 여기지 마십시요. 작은 일이라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그 작은 것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 계시고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작다고 부끄러워 하지 마십시요. 그 작은 것 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것을 큰 나무같이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새들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때, 아브라함처럼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원하옵기는, 저와 우리 꿈의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사람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는 사람들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혼의 안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작은 겨자씨 같은 우리들이지만, 이 작은 우리를 통하여, 큰 나무를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비전을 발견하고, 그 비전을 따라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