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마 6:9-16 , 마18:21-22
옛날에 시어머니가 너무 못살게 굴어서, 정말이지 도저히 견딜 수 없던 며느리가, 너무 답답하고 견딜 수가 없으니까, 친정 어머니에게 와서는, 시어머니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겠다고 하며,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친정 어머니는, 너의 시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어냐고 물었습니다. 며느리는 '인절미' 라고 대답했습니다. 친정 어머니는, 앞으로 백일동안 하루도 빼놓지 말고 인절미를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드리면, 백일 후에는, 시어머니가 이름모를 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신이 나서 돌아온 며느리는, 그 다음날 부터, 찹쌀로 정성껏 인절미를 만들어 시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시어머는 처음에는, '이년이 곧 죽으려나, 왜 안하던 짓을 하고 난리야!" 라고 했지만, 시어머니가 죽는다는데, 욕먹어도 좋았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보기 싫던 며느리가 몰랑몰랑한 인절미를 해다 바치니까, 야단도 덜치게 되었습니다. 두달이 넘어서자, 입만 열면 며느리 욕을 하던 이 시어머니가 며느리 자랑을 하게 됩니다. 석달이 지나자, 야단치기는 커녕, 며느리를 웃는 낯으로 대해주고 칭찬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죽이려고 하는 자신이 무서워졌어요. 이렇게 좋은 시어머니가 정말로 죽을까봐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 며느리는 친정으로 달려 와서는, 친정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죽으면 안되니까,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정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예전의 시어머는 벌써 죽었단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항상 상대적입니다. 내가 싫어하면, 상대방도, 나를 싫어 합니다. 겉으로 표시내지 않아도, 이것은 영적인 것이라,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이 용서의 문제입니다. 교회에서도요, 사랑을 베풀고, 도와주는 것은 어느 정도 잘 합니다. 그런데, 이 용서만큼은 잘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하죠. "나는 절대 그 사람 용서 못해"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않습니다.
왜냐하면, 용서를 하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천국에 갈 것인가, 가지 못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은 것도 기적이지만, 남을 용서하는 것도 기적인 것입니다.
'목사님,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서,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그건 제 말이 아니고, 우리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4, 15절을 보시면,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여러분,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예수님께서, 없는 소리 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겁주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우리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진리입니다.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농담하셨다손 치더라고, 그 말은 그대로 이루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이라고 하는, 모범적인 기도입니다. 이 기도보다, 더 좋은 기도문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주기도문에도, 12절 보시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시자, 제자들도 아마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지 몰라요. "설마, 그럼,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정말 나를 용서하지 않을까?"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는 14-15절에, 용서에 대해서, 정확하게 집고 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는다." '이 말을 빈 소리가 아니고, 진짜다.' 설마 그럴리가, 정말 그런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용서하기 참 힘드시죠? 세상에 용서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해야 되는 것이 바로 이 용서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 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 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기 힘든 용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용서하는 방법을 찾아 보기를 원합니다.
- 첫째로, 용서는 기도로 시작해야 합니다.
아무리 용서하기 어려운 상대라 할지라도요. 용서하기를 원하신다면 그를 위해 기도하기를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의 시작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용서에 관한 말씀을 하시기 전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12절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용서의 기도' 를 해 보신적 있으세요. 없으시면, 오늘 집에 가셔서 무릎 꿇고 두손을 모으고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그동안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람, 나에게 사기치고, 내돈 떼어 먹고 도망간 사람, 나를 배신하고 도망간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내가 지금 그들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여전히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증오하고 미워하고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보십시요.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어느새, 증오가 용서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 영혼이 불쌍하게 보일 거예요. 그의 영혼 구원을 걱정하게 될 거예요. 그렇게 해서 용서가 시작 되는 것입니다.
처음엔 잘 안되겠지만, 용서하기로 맘 먹고, 그를 위해 기도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엔 그 용서가 누구를 위한 것이 됩니까? 나 자신을 위한 용서가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용서하지 못하는 감정 그대로, 천국에 한 발국도 들여 놓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나를 위한 용서를 하라는 것입니다.
수년전에 미국에 있었던 일이예요. 한 살인범이 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형수의 형은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분이며 고위직에 있으면서, 나라에 크게 공로를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형은 동생이 사형당하게 될 것을 너무나 걱정한 나머지, 염치 불구하고, 평소 친분이 있던, 대통령을 찾아가, 동생의 사면을 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가 지금까지 나라를 위해 세운 큰 공적들을 감안하여, 동생의 사면을 허락한다며, 법원에 가서 수속 절차를 밟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형은, 뛸 듯이 기뻐하며, 대통령의 사면 허가증을 안 주머니 넣고, 감옥에 있는 동생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야, 네가 만일 대통령의 사면을 얻어 사형을 면하고, 석방이 되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겠니?"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동생은 형의 눈을 뚫어져라 보면서, 증오의 눈빛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형, 내가 만일 사형 당하지 않고, 이 감옥을 나간다면, 첫째로, 나에게 사형언도를 내린 판사를 찾아 그 놈을 죽일 것이고, 그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던 놈을 찾아서 그 놈을 쏘아 죽일거야." 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자, 형은 말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교도소를 나와서는, 양복 안주머니 있던 사면장 꺼내, 찢어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형은 동생의 입에서, '용서' 라는 한 마디 듣고 싶었던 거예요. 사형을 사면 받았는데, 용서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나는 용서함 받았는데, 내가 용서하지 못하면, 용서함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죠.
우리 주님께서는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면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 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미워하고, 증오하고, '용서할 수 없어' 라고 했던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면, 증오의 마음 사라지고, 어느새 용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두번째로, 용서는, 계속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8:21절을 보시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번입니까? ' 그러자, 예수님은, "아니, 그 일곱번을 일흔번씩 용서해야 된다"
우리는 보통 이런 말을 자주합니다. "이번 한번 뿐 이야. 다음 번엔 국물도 없어" 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속에는 '두번째는 용서가 없다' 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오늘 베드로에게, '일곱번 뿐 아니라, 일곱번 곱하기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라' 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해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얼나다 자주 용서해 주시는지요.
우리는 살아오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용서함을 받고 있다는 거 아십니까? 그리고
그 용서가 언제까지 계속되는지 아세요? 우리가 천국에 들어 갈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짓습니다. 이러면 안돼지, 이러면 안돼지, 하면서도 똑같은 죄를 짓고, 또 짓고는 주님 앞에 찾아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은 이유를 묻지 않고, 또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자신있게,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용서는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한번은, 광산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동네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한 아이가, 이 아이의 가슴을 푹 쥐어박습니다. 교실에 앉으면 한 아이가, 또 등을 확 쥐어박습니다. 또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영락없이, 다른 아이들이, 이 아이를 괴롭힙니다.
그 동안 참고 용서한다고 했는데, 그날 따라, 이 아이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고, 어디서 구했는지, 광산에서 쓰는 다이나마이트를 몸에 감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누구든지 나를 치면 이 다이나마이트 터진다. 그리고 너 죽고 나 죽자.' 라고 말합니다. 그 후로, 아무도 겁이 나서 그 아이 곁에 가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 덕분에, 주변에는 친구가 되어주는 아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상처를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없기에, 늘 외로왔습니다.
여러분, 용서하지 않으면, 내 곁에 사람들이 떠나갑니다. 내 곁에 사람만 떠나갑니까? 하나님도 떠나갑니다.
그래서 여러분, 용서를 하려면, 끝까지 해야 합니다. 중간에, 다이나 마이트 같이, 한번 증오해 버리면, 지금 까지 용서했던 마음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나 예전에 그 사람 용서했어!' 가 아니라, 지금 이순간 용서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현재형이며, 진행형이어야 합니다.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움과 증오의 감정이 없어질 때까지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혹시, 이 친구가 다시 와서, 나에게 상처주고, 날 배신하고, 나를 힘들게 하면, 그를 다시 품고 용서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유 없이 가끔 토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대게 그런 사람은,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또, 육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손과 발이 마비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병이 원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몸에는요, 하루에 8,000-12,000개의 암세포가 만들어 진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은, 백혈구가 이 암세포를 다 잡아 먹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 암세포는 백혈구를 만나면, 백전 백패입니다. 그런데, 의사들이 실제로, 실험을 했는데요. 증오하고 분노의 감정이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이 암세포가 몇배는 더 많이 만들어 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백혈구라도 감당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만 보아도, 우리의 마음속에, 이 분노의 문제, 갈등의 문제, 이 용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이 용서해야 되는 사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은 나 자신을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증오 분노 없애야,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는 것보다, 더한 축복은, 우리가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신다는것이, 더 큰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 주님 앞에서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는데, 용서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용서받는 일입니다.
인터넷에, 나미비아에 사는 빅토리아 라는 여성이 2005년 지옥을 보고 온 간증이 있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분의 간증 말고, 많은 사람들이, 용서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지옥에 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간생략하고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수를 어림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저를 동쪽에 있는 그룹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분이 저를 보며 말씀하시길, "빅토리아! 이곳에 있는 그룹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이란다. 나는 여러 방법을 통하여 수도 없이 용서하라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거절 하였다. 나는 그들의 모든 죄들을 용서해 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 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시간이 다 지난 후, 그들이 이곳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이곳에 영원히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맺은 열매를 영원히 먹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진리는요,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용서'입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용서요 복음의 핵심이 용서입니다. 십자가의 의미가 용서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용서를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십자가로부터 용서를 제하고 나면 나무토막만 남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용서로 시작해서 용서로 마쳐지는 종교입니다.
누구나 다 교회에 처음 찾아 나오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생을 마감하고 천국 문이 열리면, 그때에 우리는 용서의 문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꿈의교회 성도님들은, 이 땅에 살아갈 동안에,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 하나 없이 살다가, 모두가, 넉넉히 천국에 들어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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